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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은 ‘난폭한 하나님’을 믿는가?신은 소돔을 멸하지 않았다
류상태  |  shalom77@ch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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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1월 04일 (목) 00:00:00 [조회수 : 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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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하늘 곧 주님께서 계신 곳으로부터,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소나기처럼 퍼 부으셨다. 주님께서는 그 두 성과, 성 안에 사는 모든 사람과, 넓은 들과, 땅에 심은 채소를 다 엎어 멸하셨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

구약성서 창세기(19장 24~26절)에 나오는 이 구절은 난폭한 신을 떠올리게 한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소돔 이야기’를 실제 사건으로 이해했다. 신이 죄악에 깊이 빠진 소돔에 대해 오래 참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위험수위를 넘어섰기에 단호하게 징계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을 신이 인간에게 경종을 주기 위해 실제로 일으킨 사건으로 보는 시각은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소돔 이야기’인가, ‘소돔 사건’인가?]

우선, 인간의 부도덕함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이, 왜 롯의 가족 이외에는 소돔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였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성경에 의하면 “그 도시에 의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는 답이 가능하다.

소돔 이야기 앞부분에는, 아브라함이 신과 담판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소돔을 멸해야겠다.”는 신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그건 부당하다.”고, “하나님답지 못한 처사”라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라면 공정하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따진다. 아브라함은 결국 “의인 10명이 있으면 소돔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신으로부터 받아내지만, 성서는 소돔에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혹 있을 수도 있었던 열명 미만의 의인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들은 다수의 악함 때문에 함께 희생되어야 하는 것일까? 구약의 하나님은 소수자의 인권은 외면하는 신인가? 이런 가정에 혹 불편을 느끼는 분을 위해 다른 가정을 해 보겠다. 소돔에서 10명이 안되는 의인은 롯의 가족이 모두 차지했고, 그 외의 의인은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 소돔에는 아직 선과 악에 대한 의식조차 없는, 죄에 대한 의식조차 없는 어린이와 아기들은 하나도 없었을까? 그들은 어른들의 죄 때문에, 부모의 죄 때문에, 함께 희생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소수자의 인권은 외면하시더라도 어린아이의 인권까지 철저하게 외면하는 신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만약에 소돔이야기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건’이라면, 우리는 기독교의 신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건전한 상식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일으키는 신적 존재가 결코 ‘사랑의 하나님’일 수는 없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이야기가 역사상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일으키신 사건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이런 현실이 매우 가슴이 아플 뿐 아니라, 성경의 기록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는 신앙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2년 전, 지진 해일 쓰나미가 동남아시아를 강타했을 때, 교인 수가 수만 명에 이른다는 큰 교회의 유명한 목사가 “그것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설교했다. 그는 2005년에 미국 남부지방을 할퀴고 지나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해서도, 그 지방에 동성연애자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태풍을 통해 징계하신 것이라고 설교했다. (나는 그의 설교를 인터넷으로 들었는데, 적지않은 교우들이 “아멘”으로 화답했다. 그의 설교보다 교인들의 “아멘” 소리가 어찌나 가슴을 아프게 파고 들던지...)

그 목사의 확신에 찬 설교대로, 쓰나미나 허리케인을 기독교의 신이 심판의 도구로 활용한다면, 자기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이방인의 땅에 태어난 어린 생명들, 또한 동성애자인 부모 때문에 허리케인에 함께 휩쓸려 피어보지도 못하고 꺼져가야 하는 가엾은 어린 생명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런 식으로 해석되는 신이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햇볕과 단비를 골고루 내려주시는 하늘 아버지”와 같은 분일 수 있는 것일까?

[이성과 신앙이 조화된 눈으로 성경을 읽어야]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성경의 문자에 사로잡혀 읽지 말고, 그 뜻을 잘 헤아려 읽어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 신앙의 눈으로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성의 눈으로도 읽어야 한다. 이성과 신앙이 조화된 눈으로 성경을 읽어야 성경이 왜 그렇게 기록되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 저자의 의도,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나 역사적 환경 등, 성서 본문과 함께 그 본문을 탄생시킨 주변 요소들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학자들의 얘기는 필요 없고 오직 성경만 읽으면 된다는 생각은 성서의 진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다른 생명체에 없는 이성이 있다. 이성은 신이 사람에게만 주신 귀한 선물이다. 그 이성을 절대시해서도 안되겠지만 이성을 무시하는 신앙은 더욱 위험하다.

2~3천년 전의 고대 유대인들은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신과 세계와 인생을 이해하고 해석했다.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동성연애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생명의 탄생은 고대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중요한 노동력과 생산성에 직결된 문제다. 또한 외적과 싸울 때는, 나라를 지켜주는 국방력과도 관계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동성애가 만연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이 동성연애를 가정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회적 악’이라고 판단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굳게 믿었으며, ‘거룩한 문서’에 기록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경이적인 사건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돔 이야기 역시 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도시가 자연재해로 송두리째 멸망당하는 비극을 목격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소돔이든 아니든, 그들은 그 사건을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내기 위한 거울로 해석하려 했을 것이다. 소돔 이야기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설화였으리라는 것이 열린 신학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모든 인류, 모든 생명과 함께 누리는 천국]

만일 이런 현대 신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나를 잃고, 대신 중요한 다른 하나를 얻게 될 것이다.

성경만이 절대 진리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책이며,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으므로, 성경대로만 살면, 틀림없이 복을 받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순진한 희망과 기대가 무너질 수 있겠다.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된다는 확신도 무너질 수 있겠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천국행 티켓을 보장받았다는 확신도 무너질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대신,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들만의 천국’을 잃을 수 있지만, 모든 생명, 모든 인류와 함께 이루어내고, 함께 누리는 천국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와는 다른 종교, 다른 신념, 다른 가치관,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을 끝없이 정죄해 온 무서운 독선과 배타성에서 벗어나 모든 이웃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신나는 자유,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오늘날 동성애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웃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고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이웃으로 껴안을 수도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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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나누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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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노 (203.109.206.174)
2007-10-30 05:36:53
나도 하니님이 사랑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글을 읽으면 모든 것이 다-아 자유롭고 좋습니다.목사님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자유, 신나는 자유...란 무엇입니까? 그냥 막 자유로운것?..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저는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함, 예수님안에서의 자유함 즉 하나님의 법칙(공의 와 사랑) 안에서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하나님은 그 공의로움으로 인해 노아때는 전 인류를 죽이시기 까지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그래서 하나님이 잔인하신가요? 아니지요,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려서는 아니되지요.. 그 책임은 우리의 죄.. 즉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한.. 우리 인간들의 책임아닌 가요? 자유,자유 하다가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할까 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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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7
유평근 (211.239.136.97)
2007-01-19 01:33:49
당당? 굴욕!
관리자 양반!
왜 올린 댓글을 지우는가?
당당뉴스가 아니라 굴욕찌라시가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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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
김요한 (82.126.172.247)
2007-01-12 06:21:43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법 ... 사랑하기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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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
이 돌 (211.118.178.156)
2007-01-06 12:57:05
미혹의 영이란 ~~
원래 이런 것이다를 적나라 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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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한사랑 (218.209.188.20)
2007-01-06 10:33:19
이제 이런 글은 그만두시지요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글을 쓰고 또 게재하는 것입니까?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목적이라면 무모한 일입니다.
당신의 믿는 바를 선포하려면 그렇게 하십시오.

이런 내용은 안티들의 글들 속에서 지겹도록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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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하늘문 (124.80.224.33)
2007-01-06 02:23:46
하나님은 이성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성을 이용하여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아니 하나님의 사랑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습니다.

이성은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 데 아주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이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크게 세가지로 보고 싶습니다. 1) 신학교육의 잘못, 2) 자질이 않되는 목사, 3) 오직 현대의 세계관에서 성경을 이해하려는 목사와 평신도입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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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조심 (121.142.65.104)
2007-01-05 16:08:16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마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12: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유1:14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유1: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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