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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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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3월 01일 (수) 23:34:10 [조회수 :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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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라

시편 73편 10-17절

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면 안 된다.

10절,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 본문은 신정론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 말씀이다. 악을 행하는 이들이 형통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악을 행하는 이들은 심판하시고 선을 행하는 이들에게는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즉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오히려 마음이 정결한 이들에게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 본문에서 ‘그러므로’는 악을 행하는 이들의 형통함 때문에 낙심하게 되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불평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2-9절의 말씀을 참조하라. 불평으로 인하여 믿음이 깨어지는 것은 불행이다.

*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11절)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시139:12a).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4).

 

나. 악한 이들의 형통을 부러워하는 것이 문제다.

12절,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악한 이들의 형통함을 보면서 부러워한다. 본문에서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3절)라고 하였다. 여기서 ‘질투하다’(카나)는 ‘부러워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질투 즉 부러워하는 것이 문제다. 성도는 악한 사람들의 형통함을 보면서 부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의 결국을 생각하며 불쌍히 여기는 것이 신앙적이다.

*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있다. 악한 이들의 형통함을 보고 부러워하면 자신도 모르게 회의에 빠지게 된다. 시인이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13절)라고 탄식했던 것을 참조하라. 진실하게 살아도 소용없다는 후회가 큰 유혹이다.

* 성도는 부러움으로부터 시작되는 악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유혹을 만만히 보면 안 된다. 유혹과 육신의 소욕이 결합하면 죄를 짓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시인은 유혹과 싸워 이긴 흔적을 보여준다. 그가 만일 방심했다면 자신도 이방인들처럼 악을 행하였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다(15절 참조).

 

다. 항상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라.

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 본문에서 시인은 악의 유혹을 이겨내며 많은 고통을 느꼈다고 하였다. 신정론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16절)라고 하였다. 여기서 ‘고통’(아말)은 비유적으로 ‘마음고생’을 말한다.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런데 신정론의 유혹을 이겨내려면 하나님과의 연합이 필요하다.

* 신정론의 문제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해결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는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가리킨다. 성소에서의 예배, 말씀, 찬양, 기도 등을 통해 밀접한 관계가 유지된다. 이는 은혜의 수단들인데 이를 통해 은혜를 받아 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 시인은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악한 이들의 결국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나이다”(17절). 이것은 하나님의 의의 통치에 대한 확신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이에게는 선을 행하시고 악한 이들에게는 결국 벌을 내리신다.

 

라. 하나님은 선악간에 행한 대로 갚으신다.

17절b,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 하나님의 심판은 사필귀정으로 끝난다. 본문에서 ‘그들의 종말’은 악한 이들이 잠시 형통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파멸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주께서 그들을 참으로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을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하였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18-19절). 심판이 비록 더딘 것 같지만 상줄 자에게는 상을, 벌줄 자에게는 벌을 내리신다.

* 바울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라고 하였다. 이것은 성경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는 신명기적 사관에 따른 보편적인 진리다. 하나님은 그의 공의(미쉬파트)를 따라 심판(미쉬파트)하신다. 결과는 사필귀정이다.

* 신정론의 문제로 회의에 빠지면 안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다고 그의 공의에 관하여 헷갈리면 안 된다. 전래동화들도 선한 이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을 행하는 이들은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격언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고 하는 것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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