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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들이여, 신이 없다는 증거를 대 보세요― 여호와는 사랑의 하나님인가, 잔인한 하나님인가 ―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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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2월 21일 (화) 02:47:58
최종편집 : 2023년 03월 28일 (화) 00:20:38 [조회수 :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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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가 존재한다는 수많은 증거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에서 하늘(天)과, 그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고, 땅(地)과 거기에 동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만드셨으며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심으로 창조의 역사를 마치셨다. 그러고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항상 깨어 계셔서 창조하신 모든 천지만물, 온 우주를 주재·운행·관리하고 계신다. 하늘(天), 그러니까 온 우주, 천체의 크고 작은 모든 움직임, 변화를 관리하시고, 땅(地) 즉 지구의 지각변동과 그로 인한 지진이나 화산폭발, 그 외의 기후와 기상 변화, 동식물의 생멸을 관리하신다.

그러시는 가운데 인간의 각 개체를 그 모체를 통하여 이 세상에 내시어 그 생애를, 일생을 관리하신다. 건강과 병약,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의 관리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된 분이시다.(마10:30) 사실을 말하면 세어 아신 것이 아니라 세지 않고도 이미 알고 계신다. 개수뿐 아니라 그 길이, 굵기, 성분까지도 모르는 것이 없으시다. 그런 것을 인간들의 통념에 따라 세신 바 되었다고 표현한 것일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60조 개 정도나 되는 세포와, 모두 이어 펼쳐 놓으면 12만 km나 되어 둘레가 4만120km라는 지구를 2바퀴 반이나 돌릴 수 있는 길이의 모세혈관 한 가닥 한 가닥까지 다 알고 계시며 관리하신다. 심령, 마음속 가장 깊은 데까지 훤히 알뿐 아니라 관리하신다.

여기에서 무신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다른 것들은 차치하고라도 인체 하나만을 봐도 이러한데, 이것이 우연히 될 수 있는 것이냐고. 혈액형은 어떻고 DNA는 또 어떤가. 이런 질서가 우연인가. 감나무에는 감만 열리고, 밤나무에는 밤만 열린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 밤낮의 길이는 달라지지만, 그것을 합친 하루의 길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한이 없지만 이 정도로 해 두겠다. 그런데도 이런 것들이 모두 우연이라는 말인가.

우연이 아니라면 무엇인가의 힘이 작용한 결과임이 분명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그 힘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알고 믿는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유신론자들은 많이들 하나님까지는 못 미치지만 창조주가 있다고 생각한다. 천지가 있게 하는 데에 작용한 무엇인가의 힘을 인정한 것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한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으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신 그대로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데에서 본 것처럼 전능(全能)하시고, 따라서 머리카락의 개수까지 알만큼 전지(全知)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 같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다. 전능하심도, 전지하심도 사랑이시고, 본질도 속성도 무엇도 다 사랑이시다. 그분의 무엇 하나 사랑 아닌 것이 없으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주 대상은 사람이다.

그처럼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당신께서 지으신 천지를 역시 당신께서 지으신 사람, 그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 부부에게 낙원으로 하여 삶을 터전으로 주셨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고 어겨 낙원으로 받은 세상을 고해 같은 세상으로 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어기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죽게 되었다. 육체만의 죽음 같은 일회성 죽음이 아니라 영육이 같이 죽는 영원한 죽음, 유황불이 타고 구더기도 죽지 않는, 지옥에 떨어지는 영멸의 죽음으로 죽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을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인해 그대로 둘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그 지옥행 길에서 구(원)해 낼 마음을 먹으셨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많이 많이 흘러 때가 차서 그 때에 이르자 먹으신 마음, 작정하신 것을 실행하시려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당신과 함께 천지를 지은 창조주 성자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그가 지은 피조물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보내셨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지만, 이 이상은 여기에서 말하려는 논지에 벗어나므로 이 정도로 마치고 정작 하고자 한 말을 하려 한다.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반항한다면…

 

나는 여기까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지진도 하나님의 관리 하에 일어난 것이라는 의미의 말도 했다. 환언하면 이번의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그 끔찍한 지진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이라는 말이 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괴리라는 말인가. 그 많은 사람들이 주저앉은 건물의 잔해 속에서 겁에 질려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그게 사랑의 결과라니 온전한 정신으로도 할 수 있는 생각인가. 사랑이 아니라 잔인의 극치 아닌가.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라 극히 잔인한 존재가 된다. 구약의 역사를 살펴봐도 이와 비슷한 일은 많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사랑뿐 아니라 잔인하기도 한 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람을 왜 만드셨는가 하는 그 이유, 목적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사람을 짓지 않으셨다.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셨다. 이제는 자급자족이 아니라 대량생산의 시대가 되어 자기가 쓸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으나, 농촌에서는 지금도 빗자루 같은 것을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한다. 그런데 그 빗자루가 자기를 더러운 것을 쓸어내는 데 쓴다고 반기를 들며 만든 주인을 두들겨 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타고 있는 아궁이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말한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라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토기라는 말이다. 사도 바울도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고 말한다. 피조물 인간이 조물주 하나님께 나한테 왜 이렇게 하느냐고 불평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다. 그럴 땐 몽둥이가 약이다. 심하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방금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사람을 지으셨지 사람을 위하여 지으신 게 아니라 했다. 사랑이신 하나님 사랑의 주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도 전술했다. 둘 다 맞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사람을 지으셨으나, 그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신다. 당신을 위하여 지으셨으나 사랑하기 위하여 지으신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당신을 위하는 것이 된다는 말도 된다.

따라서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지으신 목적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장해 주시기 때문이다.

어떻든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이번 지진 참사도 하나님의 섭리를 포함한 뜻 가운데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뜻과 섭리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희생되거나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 한 명 한 명에게는 그들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만약 그게 크리스천이라면, 그것도 신실한 성도라면 그 뜻을 정확하게는 아닐지라도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깨달아 아는 사람도 가끔은 있을 것이다. 물론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을 향하신 뜻도 있을 것이다. 그 뜻이 각 사람에게 같지는 않겠지만.

그런 것을 가지고 잔인한 하나님이네 어쩌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 분명한 것 하나는 우리가 그들 튀르키예나 시리아를 돕는 것이다. 기도하며 돕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돕지 못한다면 기도하며 마음 만으로라도 그리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발 빠르게 튀르키예에 구조대와 구호물품을 보낸 것 잘한 일이다. 정말 잘한 일이다.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냈다.

흔히들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그만큼 인간의 능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없다. 조물주 하나님이 계신데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이 영장, 그것도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는 하나 인간은 역시 대단함을 넘어 굉장하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인간 또한 동물의 한 부류임에도 다른 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뛰어나게 아는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그중에서도 사랑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다양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것은 사랑, 사랑의 심성이다. 그럼에도 지적인 것들, 그로 인한 각종 능력은 폭발적이라 할 만큼 신장되고 있지만, 가장 소중한 사랑은 식어가고 있다. 줄어들고 있다.

과학이나 여타의 능력은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덕담으로 들리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의 그 ‘부(富)’도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불행을 초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일전에도 단돈 20만원인가 때문에 사람을 죽인 자가 있었다. 유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녀들 사이의 불화도 커진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입으로는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내 주 예수는 뒷전으로 밀쳐두더라도 초막 아닌 궁궐에 살려 발버둥치는 것이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의 현주소이다. 그러니 불행한 것이다.

방법은 달리 없다.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이다.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기진한 사람에게 몇 숟갈의 밥이 되어 주고, 목이 말라 타들러가는 사람에게 한 모금의 물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행복이 되고 너의 행복도 되는 것이다. 모두의 행복을 증폭해 가는 길이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튀르키예에 보인 발 빠름에 박수를 보낸 이유이다. 우리로서는 그들의 불행에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없다. 생각하더라도 더 크게 비중을 둘 것은 그들에게 작을지라도 힘이 되어 주는 일이다. 그들은 구조대가 생존자를 구해 낼 때면 ‘신은 위대하다. 알라신은 위대하다’를 외쳤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우상숭배자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한 도와야 한다. 능력 닿는 한 그리해야 한다. 만 원짜리 한 장이면 어떻고, 오천이면 안 되는가. 문제는 마음이다. 사랑의 마음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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