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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실 쓰시나요?
신현희  |  juventusjesu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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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2월 10일 (금) 01:47:09 [조회수 : 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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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실

치과치료 한번 호되게 한 다음 서른이 넘어 처음 사용해본 치실,
먹고 사는 것이 일이라지만, 그 좁은 이 사이에 뭐 그렇게 끼는게 많은지
치실 팽팽하게 감아서 치아 사이로 툭 지나, 왔다갔다
그마저도 살살해야지 잘못하면 잇몸에 피가 나기 일쑤.
이 사이도 생각보다는 넓어서 바람이 슝슝

사람 관계 문제로 한 번 크게 아파본 다음
같이 사는 세상이라지만, 오밀조밀 모여 사는 사람 사이에 뭐 그리 아웅다웅인지
오해 풀고, 해명하고, 진심이라며 숱하게 오가는 말
그마저도 조심하지 않으면 피탈을 면치 못한다.
사람 사이 생각보다 간격이 커서 찬 바람이 쌩쌩

끼는 것도 치실질도 피할 수 없는 아픈 운명인가보다.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게 사람인가보다.

  10년 전에 썼던 운문도 산문도 아닌 글을 발견하고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늘 사람을 대하고,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 사이를 잇는 일을 해왔기에 그때보다 원숙해졌을까 기대했지만 저는 지금도 치실을 쓸 때 종종 잇몸에 피를 흘리고,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이 사람 관계임을 절감합니다. 후련하게 털어버리고 나면 괜찮아질까요? 감동적인 장례 설교집에서는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김영봉)’했지만, 항상 유쾌한 기억만은 아니라 영 찜찜하게 남아있는 사람의 흔적들은 불쑥불쑥 저를 찾아옵니다. ‘문제를 일으키고 떠나가는 사람’도 아프지만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라는 말이 제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임신한 아내와 단 둘이 예배를 드리던 일 년 반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어디 내놓아도 걱정 없을 배짱은 있었습니다. “누구나 올 수 있지만, 아무나 올 수 없는 교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공동체”, “오는 것도 뜻이겠지만, 가는 것도 뜻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목사, 종착역이 아닌 통로가 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지만 환대의 큰 기쁨만큼이나 크게 다가오는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는 아직도 어찌할 도리 없습니다. 분노도, 억울한 마음도, 미움과 허탈과 자책까지도 교차하는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어 그냥 겨울바람에 펄럭이게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흩어진 마음 곱게 사려두고, 이른 봄볕 양지바른 곳에 널어 말립니다. 

  사람 사이 갈등에 딱히 대책은 없습니다. 도리어 많은 설명은 변명처럼 여겨질 뿐입니다. 뜻이 있었고 때가 되어 만났던 사람들과 이제는 각자 다른 길을 가야할 순간이 왔기에 작별을 고합니다. 아프지만 후련하기도 합니다. 속일 수 없는 표정은 이제 무표정에 가까워졌습니다. 감정의 전이를 무관심으로 막아보려 하지만 더 급속하게 악화시킬 뿐입니다. 기도가 속절없이 깊어졌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뼈아픈 배신을 겪었던 다윗의 절규 섞인 기도(시편55편)이 별도의 해석 없이도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이웃 사랑의 마음이 한 순간 사위어버린 것 같아 축복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축복하고 기도해주어야 하는 것은 받아들여야할 숙명일까요? 투철한 직업의식일까요? 거울을 보며 사납게 입을 벌리고 조심스럽게 치실질을 하면서 생각합니다. 치아 틈사이로 찬바람이 아직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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