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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지난한 희망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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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2월 05일 (일) 03:04:40 [조회수 : 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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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형태에서 위-아래 수직 기둥은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한다. 죄 때문에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한 상징적 이미지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셨다. 죄인이 받을 징벌 대신 스스로 고난당하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셨다. 이러한 대속(代贖)신앙을 잘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화해’이다. 화해는 앞서는 조건이지 회개와 용서의 결과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화해란 관점으로 인식하여, 그리스도교의 본질인 대속하신 사랑을 고백한다. 

  십자가의 완성은 수직 기둥과 수평 기둥이 함께할 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화해를 가능하게 하였다(골 1:20). 십자가 사건은 유대인과 이방인 등 서로 용납될 수 없는 원수 사이를 화해 시키신다(엡 2:16).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고, 완성하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은 교회에 위임되었다. 십자가의 모습에서 화해의 상징성이 오롯이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화해를 주제로 한 십자가는 영국의 ‘세 개의 못 십자가’가 대표적이다. 세 개의 못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양쪽 팔목과 하나로 겹쳐놓은 두 발목에 박힌 못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몸에 성흔으로 깊이 새겨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은 1940년 11월에 영국 코벤트리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였다. 이때 성공회 코벤트리(Coventry) 대성당도 철저히 파괴당하였다. 처참한 파괴를 경험한 성당 참사회원 리차드 하워드(Richard Howard)는 무너진 성가대석 벽에 “Father forgive”를 새겨 넣었다. 주기도문의 한 구절인 이 두 단어는 ‘코벤트리의 속죄기도’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전 세계 그리스도인에게 화해의 사명을 상기시켜 주었다.
 
  1959년에 공식화한 속죄기도 운동은 이후 금요일마다 12시에 코벤트리 대성당을 중심으로 유럽의 여러 교회에서 함께 한다. 기도문은 일곱 차례 “Father forgive”를 반복하면서 인류에게 발생하는 불행에 대해 탄원한다. 폭력의 가해자인 독일의 경우, 못 십자가 공동체를 조직하여 26곳의 성당과 교회에서 속죄 기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코벤트리 대성당의 대표상징은 ‘세 개의 못 십자가’이다. 방패 모양의 흙 판에 붙인 세 개의 못은 구체적인 참회와 용서의 고백이 담겨있다. 본래 ‘세 개의 못’은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상징이다. 이를 여전히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인간 자신에 대한 죄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재건된 코벤트리 대성당의 ‘세 개의 못 십자가’는 세계적인 화해의 심벌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이번에는 반대로 영국 폭격기들이 독일 드레스덴을 공습하여 무참히 파괴하였다. 이때 드레스덴의 루터교회인 성모교회(Frauenkirche)가 파괴되었다. 얼마나 철저히 붕괴되었는지, 잔해만 남아있다가 통독 이후에야 비로소 복원을 시도하였다. 이를 새천년프로젝트라고 불렀다. 영국과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드레스덴 성모교회(Frauenkirche)의 재건을 도왔고, 마침내 2000년 완공되었다. 이것은 화해를 위한 상징이 되었다. 

  골고다의 십자가든, 코벤트리의 십자가든, 십자가는 아픔과 고난을 상징하지만, 역설적으로 화해와 평화를 의미한다. 코벤트리 대성당과 드레스덴 성모교회의 파괴는 증오의 결과였지만, 마침내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창조와 회복을 가져왔다. 용서와 화해로 말미암아 이룬 사건이다.   

  화해는 두 사람의 관계든, 인류 모두의 상황에서든, 하늘로부터 오는 은총의 경험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화해자로 부름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하고 자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화목의 직분’(고후 5:18)을 받았다. 오늘 한반도 남과 북 사이에서 점점 거세지는 불화와 반목, 적대감과 전쟁 연습은 십자가 아래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깊은 근심이어야 한다. 평화는 말로만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닌, 삶으로 견뎌내야 하는 지난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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