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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우리는명절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김홍섭  |  ihom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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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2월 03일 (금) 10:45:00
최종편집 : 2023년 02월 04일 (토) 04:47:34 [조회수 :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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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대표적인 우리 명절로 음력 1월 1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양력 1월 1일인 새해 첫날에 기념하고, 일가 친척들이 만나는 전통 명절인 설날은 음력설을 쇤다. 설날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하며, 친척이나 이웃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는 것이 고유의 풍습이다. 설날 전날인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현재 설날은 음력설 당일을 기준으로 전날과 다음날을 포함해 총 3일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2014년부터 대체공휴일 적용 대상 공휴일이 되었다.

설날 차리는 음식을 '세찬(歲饌)', 술은 '세주(歲酒)'이라 한다. 어린 시절의 설날은 늘 즐겁고 재미있는 날이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풍족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어린 마음에 설날은 맛있는 음식 먹고 가까운 친척과 사촌형제들, 이웃집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즐거움이 컸다. 설날은 떡국에다 팥떡이나 호박떡, 떡국 등의 먹거리와 녹두전, 호박전 등의 전과 때로는 돼지고기국, 운이 좋을 때면 소고기국 등을 맛있게 먹는 날이기도 했다. 설날에는 다른 음식으로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산적, 떡갈비, 식혜, 수정과 등을 먹는다. 유년시절 우리들에게 설날 전에 부모님께서 양말이나 운동화 등을 사주시는 날은 평생의 즐거운 날이기도 했다.

설날에는 동내아이들이 모여 딱지치기, 팽이치기, 재기차기, 연날리기, 윷놀이·널뛰기 등 놀이를 하고 주로 동내 어귀나 논두렁, 밭두렁을 뛰어 달리며 불을 피우고 다녔다. 유년의 겨울은 바람도 차고 눈도 많이 와 우리의 허벅지까지 눈이 쌓이기도 하였다.

설날은 해(年)의 한 간지가 끝나고 새 간지가 시작되며, ‘설’은 ‘설다’, ‘낯설다’, ‘익숙하지 못하다’, ‘삼가다’ 등의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 본래의 설날을 구정(舊正)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화력(和曆)을 양력으로 바꿀 때 음력설을 구정(旧正)이라고 부른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음력설의 역사는 매우 오랜 것으로 역사서인 삼국유사에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시절 설날을 쇠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1896년부터 공식적인 새해 첫날은 양력 1월 1일(양력설)에 기념해 오고 있다.

광복 이후에서도 40여 년간 음력설은 명절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이유로 사기업체의 휴무에 불이익을 주면서까지 음력설을 없애려 하였고, 양력설에 차례를 지낼 것을 권장하여 서울 등 대도시의 일부 가정에서는 양력설을 쇠는 풍토가 생겨났다.

그러나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이 다수 가정에서 유지했기 때문에 음력설도 공휴일로 지정하여 이러한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정부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 1월 1일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6월 항쟁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1989년에 음력설을 설날로 하고, 섣달그믐(음력 12월 말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 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북한은 양력 1월 1일을 설날이라 하여 더 중요시 여기고 있고, 1967년부터 음력설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차례를 지낸 후 세배는 웃어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배를 받은 웃어른들은 아랫사람에게 답례로 세뱃돈이나 덕담을 해준다. 개인적으로 시골에서 자란 나는 여느 시골 아이들처럼 설날에는 집안에서 세배하고 아침을 먹고는 동내 골목이나 큰 우물터에 나와 친구들과 다양한 놀이를 하곤 하였다. 동네 앞에 유명한 우물이 있었는데 매우 깊어 밑이 보이지 않았고 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렸다.

조금 놀다보면 아버님께서 성묘를 같이 가기 위해 길은 나서시면 나와 동생은 친구들과 노는 즐거움을 뒤로하고 먼 길을 나선다. 어린 기억으로는 꽤 먼 길을 걸어 성묘를 간다. 길은 신작로나 논둑길을 지나고, 큰 방죽, 작은 방죽 옆을 지나 한 시간도 더 넘게 걸어간다. 가는 길에 만나는 여러 마을과 거기에도 동네 아이들이 놀고 있고 어르신들도 오가며 비교적 분주한 명절의 아침을 보내고 있다. 근래에는 자동차들이 많지만 어린 시절에는 차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묘역에 도착하면 여기저기 둘러보고 나서 아버님께서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역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나서 우리는 모여 찬송과 기도를 드리며 성묘 예배를 본다. 멀리 오른쪽에 부드러운 산과 왼쪽에는 바위산이 우람한 자태를 보이고 있다. 성묘를 마치고 우리는 인근 마을에 있는 산지기 집에 들러 다양한 음식과 음료 등을 먹고 마시며 덕담을 나누고 다시 귀가하게 된다. 돌아오는 길은 덜 지루하며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던 기억이 새롭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다시 아이들이 자라게 되어 우리는 아들들을 데리고 아버님이 하시던 성묘의 짧지 않는 길을 걸어가고 걸어오곤 한다. 이제는 자상하시고 한없이 자녀들을 사랑하시던 아버님과 어머님의 묘역을 둘러보며 우리는 크고 깊은 사랑과 신실하신 믿음을 깊이 새기며 다시 길을 돌아온다. 물론 요즘은 자동차가 있어 가까운 곳에 차를 세워두고 성묘를 한다. 우리 삼형제 가족들은 산지기 집에 들르기도 하고 그냥 인근 음식점에 들르기도 하여 점심을 해결한다. 돌아오는 길에 인근 유명 관광지나 유적지에 들러 가져온 음식물을 나누는 것은 형제간에 나누는 큰 즐거움의 하나다.

설날은 부모형제간에 만나는 즐거움이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누며 기쁘게 때론 아쉽게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먼 길 긴 시간을 걸려 부모형제를 찾아가 만나는 즐거움과 보람이 우리 인생의 큰 의미이며 가치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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