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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침구사 구당 김남수 옹을 만나고박애로 충만한 영혼을 꿈꾸며
이강무  |  lkmlh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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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1월 31일 (화) 08:10:09
최종편집 : 2023년 01월 31일 (화) 08:17:48 [조회수 :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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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세계적인 침구사 구당 김남수 옹을 만나고

 

     초등학교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체력을 지닌 나는 내 건강이 무너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29세 부터 세차례의 대수술을 받고 난 후부터는 매일 병원과 약국을 찾는 신세가 되었다. 몸의 면력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1년이면 6개월 동안 감기를 앓아 어떤 때는 매 식후 감기약과 항생제를 합하여 한 움큼씩 약을 먹어야 했다. 매일 그렇게 많은 약을 먹는 것은 너무나 큰 고역이었다. 그렇게 많은 약을 먹고도 하나뿐인 나의 신장이 여태껏 버티는 것을 보면 전에 나의 기본 체력이 대단히 튼튼했던 모양이다. 성경은 물론이고 동의학을 공부하고 보니 이 모든 병은 내가 자처한 병이었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부터이고, 탐욕과 오만과 자만이 나를 병들게 하였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길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대수술을 받은 29세 당시 나는 나 자신이 영적으로 큰 죄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무조건 하나님한테 매달리면 고쳐주시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염치도 없이 안 가던 교회를 찾아 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내가 발 빠르게 잘 대처한 행동이었다. 신앙은 없어도 감은 있어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센스는 있었던 거다. 하나님은 나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용서하고 받아 주셨다. 죄의 삯은 사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회복)’(롬6:23)이었다. 이 사실을 한참 후에야 성서를 통독하며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죽음이 문턱에 다가온 시점에서 예수께 바짝 매달린 것은 정말 내가 판단을 잘한 것이었다. 죽음이 유보되고 난 아픈 몸을 이끌고 신학대에 가게 된 것이다. 앞에서 다 말한 것이므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고 나는 29살에 첫 수술을 하고 그 후 약 29년 동안 매일 약을 먹으며 환자로 살았다는 점을 밝히고 싶은 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살아 온 인생의 숫자가 묘한 의미를 말하는 것 같다. 인생 제1기 29년은 건강하게 지낸 기간, 제2기 29년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의 기간! 그리고 59세부터는 모든 질병과 약으로부터 해방되고 아픈 이들을 돌보는 치유사가 되었으니, 나의 인생 제3기는 ‘고통당한 자들과 동행의 기간’으로 봄이 어떨까?

     대 수술을 받고 나서 항생제를 수년간 복용하니 염증은 제거되나 그로 인해 몸의 여러 기관에서 문제가 생기고 그로 인해 온몸이 구석구석 쑤시고 안 아픈 데가 없다. 허리의 통증은 기본이고 약을 많이 먹어 위장에 탈이나 소화가 안 되어 늘 소화제를 복용해야 했으며 귀, 눈, 피부 가려움, 설사, 변비, 치질, 어깨 통증 등등. 이루다 그 때의 고통을 열거할 수가 없다. 당시 충주에서 개척 목회를 할 때, 미건 의료기에서 의료기 침대를 팔기 위하여 무료로 체험하는 곳이 있었다. 아침부터 70세가 넘은 노인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다가 표를 얻어 입장하여 무료 시술받는 곳에 찾아가 나는 노인도 아닌 사람이 그 틈에 줄을 서서 치료받았다. 이런 식으로 목회하면서도 매주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매일 병원엘 다녔다. 그 당시에는 의료보험 카드가 전산으로 되지 않아 조그만 노트를 사용하였다. 한 번 가면 병원에서 왔다 갔다고 기록하는데 나는 너무 많이 병원엘 다녀서 그 노트를 1년에 몇 번씩 바꿔야 했다. 이렇게 병원과 약국을 약 29년을 다니면서도 난 뜸과 침을 받아 볼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운 좋게도 내가 서울대병원 외래 내과를 다닐 때는 대통령 주치의가 나의 담당 의사였다. 그렇게 훌륭한 의사분에게 치료받는 중인데 한국에서 그보다 어디 더 용한 곳이 있겠는가!

     그러다 우연히 둘째 형님이 계신 제천 청풍 별장에 갔다가 구당 김남수 옹이 텔레비전에 나오셔서 침구 시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침을 맞고 금방 일어서 걷는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고, 당시 은퇴하고 쉬시는 형님에게 “형님 저런 거나 배워서 봉사하면서 지내시지요.”하니까 그 옆에 계신 형수님이 “삼촌이 형님보다 더 꼼꼼하니 배워서 자기 병도 고치고 아픈 교인들 있으면 고쳐주면 좋겠네요.”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형님에게 배우라고 권면은 했을지언정 내가 배울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자는데 형수의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돈다.

     ‘배워서 자기 병도 고치고 아픈 교인들도 고쳐주면 좋겠네요.’ ‘배워서 자기 병도 고치고 ---’ ‘배워서---’ ‘배워서---’

     29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약을 먹던 나이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 한번 배워볼까?’ 당시 부인과 아이들이 교육 문제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처가에 있던 중이라 마침 잘됐다. 다음 주 바로 청량리 근처에 있는 구당 김남수 옹을 찾아갔다. 그곳에 가 보니 김남수 옹께서 혼자 가르치시는 게 아니고 교육청으로부터 ‘평생교육기관’을 허가받아 설립한 정식 사설 교육기관으로 교수가 30여 명이나 되는 큰 학교였다. 내가 100차로 등록했으니 내 전에 수백 명의 학생이 이미 교육을 받고 간 것이다. 아마 지금은 500차도 넘었을 것이다.

     다른 반은 어땠는지 몰라도 우리 반의 학생 수준은 대단했다. 현직 대학교수가 2분, 강남에서 자영업을 하시는 사업가, 고위공무원 퇴직자, 대기업 퇴직자, 교장 출신, 간호사 출신, 재야 운동가 출신 등 쟁쟁한 분들로 이분들은 모두 생활이 넉넉한 분들이지만, 노후에 자원봉사 활동하며 지내려고 배우는 거였다. 우리는 방과 후 함께 모여 스터디하고 때로는 요법사 시험 준비를 위하여 동국대 동료교수실에 가서 그룹 스터디도 하다가 남산에 벚꽃 놀이도 가며 노년이 다 되어 젊은 대학 시절처럼 즐거운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12개월 동안 수업을 마치고 요법사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받으면 모든 과정이 끝나므로 봉사실습을 안 해도 되지만 난 요법사 자격증을 받고 더 열심히 봉사실을 다니며 수련을 쌓았다. 당시에는 전국 약 30여 곳에 김남수 옹의 제자들이 개설한 침구봉사실이 있었다. 국회봉사실, KBS 봉사실, 선릉 마사회 봉사실 등을 다니며 약 3년 동안 열심히 수련을 쌓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인생에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동안 약 29년 동안 매일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어야 했던 나는 침과 뜸을 약 2년 받은 후부터는 전혀 병원에도 안 가고 약도 안 먹게 되었다. 수십 년 동안 매일 병원에 다니던 자가 병원을 안 다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쁨이요 축복이었다. 약을 안 먹으니 나의 위장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소화가 안 되어 늘 신경 쓰던 내가 지금은 전보다 훨씬 늙은 나이인데도 아무거나 주는 대로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킨다. 독한 아메리카노 커피도 설탕이나 프림 없이 거침없이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여 난 그때부터 내가 기도한 대로 본격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오지를 방문하여 병들어 고통받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치료해 주며 평소에 내 꿈이던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나고 보니 내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된 데는 나의 작은 형님이 큰 역할을 하셨다. 신학교 가는 것도 그분의 후원으로 가게 되었고, 침뜸 의술을 배운 것도 그분 때문에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크게 헌신하신 작은형님 가정을 위하여 늘 감사하고 축복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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