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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단상; 계룡산에 돌아온 건 산신령인가, 귀신인가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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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1월 22일 (일) 01:05:51
최종편집 : 2023년 03월 28일 (화) 00:20:08 [조회수 : 2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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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을 평가하는 데에는 공과 과를 같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공도 크고 과도 큰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큰 인물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만큼 그를 생각할 때면 생각나는 것도 많다. 경제성장, 군사독재… 뭐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그가 생각날 때면 새마을운동이 떠오를 때도 있다. 이에 대해선 공이 크지만 과도 적지 않다고들 한다. 우리 집도 그 덕분에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고쳤다. 
그러나 씁쓸한 인상의 기억을 남긴 일도 없지 않다. 집의 흙벽에 회 칠한 것 같은 일이다. 흙벽이라도 매끈하다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당시에는 본래가 평평하지 못한데다가 비바람의 세월에 씻기고 떨어져나가 골이 패이고 울통불퉁 하여 거친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눈에 익어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런 벽에 회칠을 하니 묻지 않은 데도 있고 농도도 일정치 않아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사람 사는 집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하여튼 꼴불견이었다. 
그런데 그때의 나를 정말로 기막히게 한 것이 있다. 인간개조다. 요즘 흔히 말하는 개조인간의 신체의 강화, 몸만들기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의 속성을 뜯어고쳐 새로운 인(간)성의 인간, 쓸모 많은 인간, 즉 홍익의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다운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의 누가 누구를 그렇게 한다는 말인가. 신이 아니면, 그것도 절대자로서의 신이 아니면 누구도, 무엇도 그리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막 알아가고 있는 초신자 때의 나를 기막히게 한다기 보다 질리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참 좋은 일도 많았다. 표준식단제 도입, 그것은 버려지는 음식쓰레기를 줄이는 데에 기여한 바가 컸다. 그런 것까지 강제한다는 비판도 많았으나, 독재적 강제가 아니면, 군사정권의 그 막강한 힘이 아니면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독재라면 죽기만큼이나 싫어했던 나인데도 박수를 보냈던 까닭이다. 그후 80년대 초 일본에 가서 보고 더욱 그렇게 절감했다. 그들의 주문식단제, 부럽고 또 부러웠다. 그런데 그 좋은 제도가 세월이 흐름과 함께 유야무야, 흐지부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애석한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음식물 생산의 세계적 왕국이 되었다. 분리수거가 많이 정착되어가고 있지만, 일본의 80년대 초 수준의 반의반에도 못 미친다. 일본을 좋아하지 않은 나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좋은 것이라면 그들에게서라도 배워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것이 사람이고, 크리스천 아니겠는가. 
그때 그 시절의 좋은 것 또 한 가지, 이중과세 금지다. 소위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것을 만들어 양력설과 음력설의, 설을 1년에 두 번 쇠는 이중과세를 금한 일이다. 양력설은 왜(놈)의 설로 일제의 잔재인데, 박정희 군사정권이 독재로 밀어붙인 제도이니 비판 받아 마땅하는 견해도 적지 않지만, 이 또한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그런 힘으로가 아니면 어떻게 추진될 수가 있겠는가. 세월이 지나자 이조차도 민속의 날이니 뭐니로 물러서기 시작하더니 결국 지금처럼 이중과세가 되고 말았다. 
설이 두 개여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나도 바닷가에 출사(出寫)할 때면 물때를 확인하는데, 그렇다고 음력 날짜를 알아보지 않는다. 물론 알면 낫겠지만, 몰라도 불편은 없다. 어떻든 음력이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이중과세의 합리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때의 좋은 것은 또 있다.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이다. 미신타파가 그것이다.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산들은 무속인들의 활동터전으로 굳게 다져져 있었으나, 그들을 하산시킨 것도 그 시절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를 본 나는 귀신들도 군사정권에는 꼼짝도 못하는구나,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그런데 90년대 초, 그 영산 중의 하나 계룡산에 올라 보고 그때와는 달라진 상황을 알게 되었다. 현직 시절로 친구 교수 하나를 따라 야간산행을 했다. 이리 말하면 뭐 대단히 산을 좋아 하는, 어떻든 산악인 같기도 하지만, 아니다. 친구는 산악인이 맞지만 나는 아니다. 
그 무렵 친구는 하루의 일을 마치면 계룡산에 올라 한 암자에서 자곤 했다. 산이 좋아서라기보다 세상 아닌 사람이 싫어 산을 찾은 것이다. 해가 져 어두운 밤에 오른 적도 다반사였다. 참 겁도 없는 친구다. 어쩌다 나도 한 번 그런 그를 따라서 밤에 산에 올라 그 암자에서 잤다. 동학사 골짜기를 따라 올라 공주 갑사, 신원사로 넘어가는 연천봉의 등운암이라는 암자에서였다. 
험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보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다 올라 헐떡거리는 숨을 진정시키며 암자의 한 방문을 여니 골방이라고나 해야 할 작은 방에 열 명 넘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낯익은 (내) 친구가 아니라 낮선 불청객 내가 못마땅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누우니 비좁기 그지없다. 반듯이는 생각도 못하고 모로 누워도 몸이 조여드는 듯했다. 참 이상한 친구다. 집도절도 없는 것이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아닌데, 어두운 밤에 생고생을 해 가며 올라와 이런 곳에서 이렇게 자다니 괴상하다면 괴상하기까지 한 친구다.  
그런데 새벽에 잠을 깨보니 친구와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마침 잠을 깬 친구에게 물어보니 모두 기도하러 산으로 나갔다 한다. 어젯밤 입에 자물통을 채워 말이 없던 사람들은 묵언수행 중이라 했다. 이 산 남매탑 밑 심우정사라는 암자의 목초라는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보살 부부도 같이 살았는데, 그 남편 된 사람은 산만 내려가면 몸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 다시 올라오곤 하다가 지금은 자기의 소개로 여자보살과 연을 맺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사람 남들과는 다른 데가 있는 친구 교수는 계룡산의 한 자락 골짜기에 동월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거기에 이긴 흙으로 돌을 쌓아 방 한 칸의 집을 지어 지냈다. 벽난로까지 만들어 지천으로 있는 나무를 때며 주중을 지냈다. 집이 서울이었던 것이다. 겉보기로는 볼품이 없지만 안에 들어가면 꽤 운치가 느껴지는 집이었다. 나도 몇 번인가 신세를 졌다. 맑은 날 밤이면 촘촘한 별들이 반짝반짝 쏟아질 듯 가슴으로 내려앉을 것 같은 골짜기 였다. 
아, 죄송, 하려는 말은 이게 아닌데. 어떻든 그 골짜기에는 굿당이라는 것도 하나 있었는데, 등운암에서의 그 새벽, 그 생각도 났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군사정권에 의해 산에서 쫓겨났던 사람들, 그들을 사로잡아 지배한 것은 무엇일까. 산신령일까, 귀신일까.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정년퇴임을 하고 십년이 넘게 지난, 그리니까 몇 해 전에 대학원 일본인 제자가 가르치고 있는 불교대학 금강대학교를 찾은 적이 있다. 계룡산의 공주 쪽 산 밑에 있는 대학이기에 갑사와 신원사 부근도 돌아보았다. 그려며 놀랐다. 무슨무슨 굿집이라는 간판이 내 걸린 집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군사정권 이전으로의 회귀를 느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누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믿든 그것을 그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남에게 피해만 안 준다면, 법에 저촉만 안 된다면 그럴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다를 수 있다. 
작지 않은 교회의 교계에 영향력도 큰 어느 목사가 설교를 통해 이런 내용의 말을 했다. ‘우상숭배를 말라는 말은 믿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된 것이다. 그러니 OOO과 XXX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이름을 밝히지만 않는다면 내가 주장한 말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내가 문제로 느끼게 된 것은 OOO에 윤석열, XXX에 김건희를 넣어서 (어떠한 호칭도 붙이지 않은 채 이름만을 들어) 말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나라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목사의 말은 맞다. 그러나 아니지 않는가. 최태민, 최순실, 오방색·오방낭―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식의 정신체계가 가져다준 국가와 당사자들의 불행을 보고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게 아닐지라도 믿는 사람이라면 우상숭배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죄인지를 몰라서라는 말인가.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 하지 않은가. 그런데 입도 삐뚤어지지 않고 제대로인데, 그것도 성경을 잘 안다는 목사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 모를 일이다. 

이번 설 연휴에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할 여행자수는 27만2천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작년에 비해 8.7% 증가할 것이란다. 코로나가 주춤해진 덕택이니 감사한 일이다. 크리스천들은 차례를 안 챙겨도 좋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고 기쁘게 다녀오시기 바란다. 논-크리스천들도 이제 예전과는 다르게 차례에 크게는 마음 쓰지 않는다. 그들도 이제 그게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효도는 살아계실 때 하는 것이다 .세상을 뜨신 뒤에는 실제적으로 해 드릴 것이 없지 않은가. 
모두모두 설 명절 단란하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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