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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 좋아하세요?
신현희  |  juventusjesu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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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1월 13일 (금) 00:16:30
최종편집 : 2023년 01월 13일 (금) 01:08:49 [조회수 : 3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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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쌀쌀할 때, 길가다가 팔고 있으면 괜히 눈길 한두 번 주다가 기어코 사먹고 마는 호떡. 구수한 기름 냄새에 노릇노릇 익은 호떡 먹고 있는 사람이 가게 앞에 하나라도 있으면 자연스럽게 지갑이 열립니다. 종이컵에 하나 쥐어주면 ‘이건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야지’ 생각은 했지만 후후 불어대는 사이 본능이 이성을 앞질러 그만 덥석 물었다가 뜨거운 꿀이 확 끼쳐서 입천장을 데고 마는 불상사 한 번쯤은 겪었을 그 호떡. 딱히 맛없기도 어렵고,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 그 호떡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 기억에 ‘호떡을 사먹던 사람’이 아니라 ‘파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999년 수능을 마치고 신학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고작 한 달이었지만 길에서 계란빵을 팔았고, 신학교 1학년 겨울 방학에 돈을 좀 벌어야했기에 호떡을 팔았습니다. 아직 앳된 얼굴에 길에서 계란빵을 팔고 있으니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구청 단속반의 매몰찬 지도를 받아야할 때도 있었지만 풋내기의 아르바이트 치고는 괜찮은 수입이었기에 추위에도 계속 나갈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굉장한 돈은 벌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추웠던 기억만 납니다. 철원에서 GOP 군생활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사실 그때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할지 모르지만, 내복까지 껴입고 열이 펄펄 날 시절 청년의 때에 그렇게 추운 기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추웠습니다.

겨울철 실외에서 8시간 동안 다리 밑에 작은 가스난로 하나를 의지해 버텼습니다. 장사가 끝나면 어린 녀석이 동네 사우나를 바삐 찾을 정도로 이가 딱딱 부딪히는 경험이었습니다. 고된 몸을 이끌고 집에 온다고 바로 쉬는 것이 아닙니다. 큰 곰솥에 밀가루, 이스트를 넣고 반죽을 만들어 집안 따뜻한 곳에 뚜껑을 덮어놓고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뚜껑에 붙어있을 정도로 부푼 반죽을 주걱으로 한번 휘 저어서 들고 나갑니다.

그래서 호떡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나봅니다.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서대문역 앞에서 군 시절을 포함해 신학교를 다녔던 8년 내내 그 호떡집은 문을 닫지 않았지만 저는 한 번도 사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고생스러운 기억 때문이었을까요? 호떡의 기름 냄새도, 밀가루 반죽의 느낌도 괜히 싫었습니다. 저는 2000년 당시 천원에 세장을 팔았었는데, 서울이라 비싼 건지 호떡 한 장에 500원, 시간이 지나니 3장에 2000원에 팔았습니다. 지금은 하나에 천원, 견과류, 씨앗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1500원도 합니다. 그 돈을 내고, 굳이 고생을 소환해가며 먹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도사 시절, 수련목회자 지나, 결혼하고 목사가 되고, 자식을 낳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벌써 23년 전입니다. 부모가 되니 자식에게 뭐든 해주고 싶고, 특히 아들들이 뭘 맛있게 먹고 있는 걸 보면 흐뭇하고 좋습니다. 아내는 요리를 곧 잘 하니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엄마에게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 낯선 요리도 인터넷을 보고 척척 만들어주는 엄마가 최고라는데 저는 딱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집 공식 주방장이 엄연히 있는데 괜히 어설픈 요리 했다가 아이들에게 망신만 당할게 뻔한지라 시도조차 않고 있던 그때, 번쩍 저의 소싯적 ‘주특기’가 생각났습니다. “호떡!”

아내가 언제 사두었는지 웬만한 동네 마트 ‘라면-밀가루’ 판매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떡 믹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인가 봅니다. 애들 주겠다고 그렇게 냄새도 싫고 쳐다보기도 싫었던 호떡을 목요일 저녁에 아이들 앞에서 직접 반죽하고 있었습니다. 이전 만큼은 아니었지만 설탕을 한 숟가락 올리고 반죽을 오므리면서 만드는 방법과 뒤집는 타이밍 만큼은 손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둥글게 생긴 호떡 누르개를 들고 아이들에게 ‘호떡 먹을래?’ 물어보면 아이들이 반갑게 먹겠다고 합니다. 종종 호떡을 만들어 줍니다. 아이들에게 호떡 만들어줬던 이야기를 가까운 분에게 자랑했더니 반색하며 ‘그거 잘한 일이다’ 칭찬을 했습니다. 그 분은 웃으면서 자못 진지하게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길에서 호떡 먹으면 거 아버지 생각 안나겠습니까?” 수십 년 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때도 호떡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유구한 호떡의 역사를 생각할 때 그때도 있으리라 예상할 수 있지만) 길가다가 혹시 먹기라도 한다면 아들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해준 호떡을 떠올릴까요?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가진 기억의 많은 부분이 먹는 경험과 결부되어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음식은 기억의 강력한 매개체입니다. 그렇게 냄새도 싫던 호떡을 구워 주면서 저도 슬쩍 하나 집어 먹었습니다.

 

신현희/안산나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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