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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화의 산파, 선교사 3천 명의 기록
최병천  |  신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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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1월 10일 (화) 00:23:33
최종편집 : 2023년 01월 10일 (화) 00:25:59 [조회수 :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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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화의 산파, 선교사 3천 명의 기록

『내한선교사사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발행, 신앙과지성사 제작, 2022

 

1.

혈기만 왕성했던 나의 감청 시절, 지금의 광화문빌딩은 감리회관과 국제극장을 합하여 지어졌다. 거의 감리회관에서 살다시피 했던 청년들은 감리회관 인근이나 그 건물 지하다방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미국인 선교사 마태진 목사님이다. 마 목사님은 청년들에게 우호적이고 도움도 주었으나 그런 마 목사님을 청년들은 ‘미국 스파이’로 “왜 자기 나라에 가서 놀지 여기 와서 탱자 거려”라는 험한 말을 수시로 했다. 군부독재 시절이라 광화문을 활보하고 다니는 마 목사님 무리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었다. 교회사를 공부한 청년 중에는 마 목사님을 일제 강점기 조선감리교회를 좌지우지했던 웰치 감독이 떠오른다면서, 웰치 감독은 조선의 독립이나 조선감리교회의 자주성에는 관심이 없고, 일본에 아부하면서 “정치는 귀국이, 우리는 오로지 구령사업에만!”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교단을 치리했던 것을 스터디 중에 말하면서 참여했던 청년들과 분노의 공감대를 나눈 기억도 있다. 물론 지금은 미국 고향에서 생사를 오가는 마 목사님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 역시 나이 들어가면서 나의 출판작업 중에 유독 미국인 선교사들에 대한 책을 많이 내게 되었다. 미국인 선교사들을 혹평했던 내가 선교사들의 평전을 계속 내게 되다니! 물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게 된 이후였지만 옛날의 철없었음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2.

한국교회가 복 받은 교회라는 것을 나이 들며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이 땅을 찾아온 선교사들 중 헌신적이면서도 의식 있는 분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대명사가 된 두 분의 삶과 신앙은 지금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어찌 되었을까, 한국교회는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제 어느덧 나이가 들었다. 교회에서는 수석장로란다. 자그만 교회를 섬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과 다른 모함을 들을 때면 역정부터 난다. 그런데(일일이 이 두 분 선교사의 업적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는 그분들처럼 헌신성이 있는가, 믿음과 사랑이 있는가, 반문해 본다. 선교사들이 제국주의 앞잡이고, 역사의식이 빈곤하여 일제와 독재정권에 부양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보다 큰 의미를 위한 성찰을 통해 정리되어야 할 단편적인 일이다.

 

3.

유독 연희동 칼국수를 좋아하시는 임연철 박사님과 가깝게 되었다. 나는 ‘사애리시 선교사’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임 박사님이 이덕주 교수의 소개로 원고를 들고 왔다. 고향이 논산인 그는 사애리시 선교사에게 전도된 할머니가 자신의 서울 자취방 시절에 밥상머리에서 된장찌개와 함께 꼭 등장하는 인물이 사부인(사애리시) 이야기였다고 했다. 사부인이 아니면 구원 못 받았다는 할머니의 그 오래 묵은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 위해서 그는 미국 드루대학교 아카이브를 찾았고 고귀한 자료들을 찾아내었다. 그의 신문기자적 발상과 발품으로 사애리시는 다시 부각되었다. 그가 쓴 『이야기 사애리시』는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뽑혔고, 그가 유관순을 거두어 공주 영명학교와 이화학당에 보내 공부시키고, 돌봐주었을 뿐만 아니라 충청권에 여러 학교와 교회를 세워 감리교선교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 책을 발판으로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훈장도 수여 받았다. 사부인은 결혼 3년 만에 남편(로버트 샤프 선교사)이 순직하고 홀몸으로 평생을 한국교회와 교인들, 한국 민중들을 섬기다 갔다(사애리시 관련 유품과 훈장은 천안 하늘중앙교회에 잘 보존되어 있다.). 사애리시 선교사를 통해서 나는 또 한 번 나의 청년 시절의 고정관념, 선교사는 스파이, 선교사는 제국주의 앞잡이라는 생각을 조용히 거둘 수 있었다.

 

4.

이런 생각이 지배적인 시점에서(2022년 5월경) 평소 존경하는 선배인 윤경로 박사, 이덕주 교수가 급히 만남을 청했다. 이유는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내한선교사사전』을 준비 중이고, 연구소 창설 40주년 기념으로 사전을 발간하려는데 그 제작을 신앙과지성사에서 맡아 달라는 것이다. 3,500명의 선교사가 소개될 것이고 큰 책으로 1,600쪽이 넘을 것이라고 하였다. 거절할 수가 없는 선배님들의 부탁을 승낙하고 우리 신앙과지성사는 5월부터 비상이 걸렸다. 80여 명의 필자가 자비량으로 쓴 사전원고가 20여 차례에 걸쳐 들어왔다. 이그! 선교사들을 스파이 운운했던 죄(?)를 톡톡히 걸머쥐었다.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3만 매가 넘었고 이것을 두께 6Cm가 넘지 않도록 편집하고 제작해야 했다. 양장제본의 최대 두께가 6Cm이므로, 용지 선택과 인쇄, 제본에 심혈을 기울였다. 드디어 12월 중순, 멋진 책이 탄생했다. 이름하여 『내한선교사사전』이다. 근래 보기드문 대작이다. 이 사전의 제안자이시고 실질적인 산파 역할을 하신 이만열 박사님(전 국사편찬위원장)은 감격하셔서(12월 22일 선교사들의 묘지 양화진에서 출판기념 예배를 드렸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셨다. 12월 22일, 겨울 날씨였지만 유독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몸이 날아갈 정도였다. 많은 귀빈과 내방객은 예배를 마치고 이 두툼한 책을 가슴에 안고, 빠른 발걸음으로 헤어졌다. 이 책에 한국에 온 3,500명 가까운 외국인 선교사들의 삶이 담겨 있다. 너무 귀중한 삶의 기록들이 하나로 묶여 졌다. 한국교회 새로운 기념비가 세워졌다. 하나님은 이 작은 출판사를 통해서 큰일을 이루게 하셨다. 3천5백 명의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기도했던 세계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기뻐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의 발간을 토대로 내한선교사들에 대한 격조 있는 연구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최병천 장로 (신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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