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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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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1월 01일 (일) 05:13:13 [조회수 : 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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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밝았다. 지난 주간에 걷기도를 다녀왔다. 충주에서 시작해 문경새재를 넘어 점촌까지 홀로 눈길을 걸었지만, 그리 피곤을 느끼지 않았다. 회갑이 지나면 해마다 기운이 줄어드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성탄 어간에 한파가 불어닥쳐 길 나서는데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겨울의 거리도 바람만 불지 않으면 견딜만하였다. 게다가 사흘 내내 화창한 햇볕 덕을 톡톡히 보았다.

   
  올해로 16차례 반복하는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을 다니면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강력한 지지를 듣곤 했는데, 이젠 꿈도 못 꾼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곤 했다. “사서 고생하는구나. 앞만 보고 잘 가라.” 쉰이 한참 넘은 아들에게도 앞만 보고 걸어가라는 잔소리가 따듯하여, 조물조물 가슴의 난로로 삼았었다. 하긴 춘천으로 갈 때는 남양주 시내 횡단보도를 건너며 만난 꼬마에게 “아저씨 잘 가, 넘어지지 말고”라는 염려를 듣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의 동행이다. 걷기도를 나서기까지 여러 가지 계기가 있었다. 

  중3 때인가? 늦은 밤에 강원도 부모님 댁으로 대학생 손님 둘이 들이닥쳤다. 작은형의 친구로 서울에서 강릉까지 무전여행 중이라고 한다. 찬 바람을 안고 들어 온 그 형들 덕분에 겨울만 오면 나는 멀쩡한 꿈을 꾸게 되었다. 겨울만 오면 대관령을 넘어보겠다는 호기였다. 그러나 한겨울 흰 들판을, 흰 먼 산을, 흰 꿈길을 걸어 보려는 환상은 그저 바람으로만 남았다.

  그러던 것이 2007년 12월 연말, 본부에 휴가를 내고 3일 동안 평창 대화에서 강릉 정동진까지 걸었다. 마침내 30년 넘은 숙원을 이룬 것이다. 그해 내내 어영부영 지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습관처럼 일벌레가 된 나는 재밌지도, 열정적이지도 그렇다고 진보적이지도 않게 살았다. 어쨌든 내 안에 회복할 것이 많이 있다고 숙제처럼 느낀 시절이었다. 걸으면서 스스로 구호를 “으랏차라!”라고 정하였다. 걸으면서 “나를 뒤집어라”고 외쳤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나는 걷는다>(전 3권)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西安)까지 무려 12,000km를 걸은 기록이다. 그는 4년 동안 해마다 봄(5월)부터 가을(10월)까지 걸었는데, 꼭 1099일이 걸렸다. 올리비에가 걸어간 길은 일찍이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의 ‘실크 로드’였다. 말이 비단길이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뱀과 모래의 길이었다. 한 권이 웬만한 목침 두께인 그의 행보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웠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쇠이유’(Seuil)라는 걷기 모임을 만들었는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버림받은 이른바 문제 청소년들과 같이 걷는 모임이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아무리 비뚤어진 마음도 1천km쯤 함께 걸으면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한다. 약 한 달쯤 걸어야 할 거리다. 예전에 ‘경난’(經難)이라고, 집안의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 세상 구경 시킨다고 먼 타향으로 여행을 떠나보내는 풍속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사서 하는 고생’일 것이다.

  독일에 살 때, 부엌 식탁 곁 흰 벽에 유럽 지도를 붙여두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커피와 함께 빵을 씹으면서 상상의 유람을 떠났다. 지도로만 떠나는 여정은 아는 만큼 즐거웠다. 그리고 20년 전, 귀국 후에는 식탁 옆에 한반도 지도를 걸어두었다. 그것도 절반인 남쪽만이었다. 내가 태어난 나라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몹시 불편하였다. 그리고 머릿속 지도로부터 거리로 나서기까지 또 시간이 필요하였다. 아직도 베르나르의 걷기 의식인 ‘느림, 비움, 침묵’과는 거리가 멀기만 하다.

  첫해, 대관령을 넘으면서 마치 정복욕으로 걸었다. 10분에 1km씩 욕심껏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만 해도 몸도 마음도 활개를 칠만큼 젊었다. 진부 알프스여관과 대관령 만나산장에서 이틀 밤을 잤다. 강원도 길은 식당은커녕 인적도 드물어 길거리에서 라면을 두 번이나 끓여 먹었다. 마침 주일예배는 횡계감리교회에서 드렸다. 예배 시간을 지키려고 진부에서 횡계까지 아침 일찍 3시간 동안 쉼 없이 걸어야 했다. 아마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간다면 언제나 은혜로 물들 것이다. 

  그리고 2023년이란 낯선 길을 나선다. “시간은 길(道)”이라더니 결국 인생은 길을 걷는 일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면 덜 춥다는 것이 그동안 걸으면서 쌓아온 인생훈이다. 그러기에 정작 중요한 날씨는 심령의 날씨이다. 올해는 사람 따라가지 말고, 길을 따라 제대로 걸어야겠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마치 걷기도를 떠나기 전날 밤의 긴장감으로 지도를 살피고 맨발을 쓰다듬는다.

송병구/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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