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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흐는 어디에나 있다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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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2월 29일 (목) 00:12:53 [조회수 : 5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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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출신의 미국 작가 저지 코진스키(Jerzy Kosinsky) <무지개빛 까마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상황 속에 버려진 한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이야기이다. 그 책은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겁하고 맹목적인지 보여준다. 작중인물인 새 장수 레흐는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욕구불만이 생길 때마다 자기가 팔러 다니는 새 중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센 놈을 골라내 온 몸에 야생화보다 더 알록달록한 색을 칠한다. 숲에서 새의 목을 가볍게 비틀면 새는 숨이 막혀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지른다. 이내 같은 종류의 새들이 몰려와 초조하게 날아다니면 레흐는 그 새를 놓아준다. 자유를 누리게 된 새는 기쁨에 겨워 한 점의 무지개처럼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그 새를 맞이한 잿빛 새들은 잠시 혼란을 느낀다.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새는 자기가 그들의 동료임을 알리려고 더 가까이 다가가지만, 새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다가 일시에 그 새를 공격해서 죽이고 만다.

레흐는 어디에나 있다. 인종, 피부색, 사상, 정파, 종교의 차이를 빌미로 한 개인 혹은 집단을 악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바로 현실판 레흐이다. 그들은 타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해는 관심사가 아니다. 타자는 자기 속에 있는 욕구불만을 폭력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만 필요하다. 힘 있는 이들과의 합일화를 통해 두려움 속에서 부유하는 자아에게 설 자리를 제공하려 한다. 그들은 타자들이 겪는 고통이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두려움과 혐오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들은 역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편견이라는 감옥에 갇힌 가련한 사람일 뿐이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현실에 절망한 볼테르는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모든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구실이 되지 않도록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가 더욱 절실한 세상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인류의 역사를 공감의 확대 과정이라 말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했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산다. 각종 사고와 자연 재해 그리고 테러와 전쟁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목격하며 함께 아파한다. 가끔은 재해를 만난 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에도 참여한다. 하지만 정작 손닿을 만한 거리에 있는 이들의 고통에는 눈길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양심에 대한 물음표이기 때문이다.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 반대 비대위가 ‘연말 큰잔치’라는 명목으로 모스크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 근처에서 돼지고기 바비큐를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슬람이 돼지를 금기시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벌인 일일 것이다. 노골적인 상징 폭력이다. 그 지역민들이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지만 이런 혐오 조장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결성된 시민대책회의를 보고 한 유력한 여당 정치인은 ‘참사 영업’이라고 조롱했다 한다. 그들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냐?’고 비아냥댄 시의원도 있다. 정치인들에게 품격 있는 언어를 기대하는 것이 과한 일일까? 그들이 만들고 싶어 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2002년에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다양한 종교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세계 평화를 위한 회의를 열었다. 회의라고는 하지만 실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 모임이었다. 그 모임의 결실은 평화를 위한 아시시 십계명으로 나타났다. 십계명의 전문은 인류가 파국을 향해 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용서하고 조화를 향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다섯 번째 계명은 간명하지만 매우 실용적인 요구를 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장벽으로 간주하기를 거부하면서 솔직하고도 끈기 있게 대화에 임해야 한다. 다양한 타자들과의 만남은 더 깊은 상호 이해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둠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동지 무렵에 성탄절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기독교인들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오시는 분을 맞이하며 경축한다. 어둠에 유폐된 채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려는 노력 없이는 빛이신 분을 참으로 맞이할 수 없다. 적대와 갈등, 혐오와 조롱이 안개처럼 스멀스멀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다. 상투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은 사랑의 용기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김기석/청파교회
(* 2022/12/24,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원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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