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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예정은 운명론이 아니다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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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2월 27일 (화) 00:01:15
최종편집 : 2023년 03월 28일 (화) 00:19:34 [조회수 :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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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다

 

교회의 창시자는 (성령)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인간들에 의해 많은 교파가 생겼고, 우리나라 최대 교파인 장로교는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 개혁자 칼빈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으로 예정론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당연히 장로교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소위 이중 예정론(Double-Predestination)이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구원받을 자와 버려져 지옥 갈 자를 예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를 비롯한 하나님의 예정에 관한 말씀이 몇 개소인가에 나와 있습니다. <잠언> 8장에는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23)라고 하는 식의 천지창조 이전부터 ‘내가 이미 났’다고 하는 내용이 22절부터 36절까지 14개절에 걸쳐 아주 리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를 문자적으로만 놓고 본다면 칼빈의 예정론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의 구절구절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문맥을 살펴, 나아가서는 성경 전체가 주는 메시지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마10:3)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문자적인 의미로 하신 말씀이라면 화평의 왕이신 분이신데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창세전에 구원 받을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이 이미 택해 놓으셨다는 이 말씀도 다르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전지하심도, 전능하심도, 무엇도 다 사랑이십니다. 본질도 사랑이시고 속성도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무엇 하나도 사랑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당신의 모양대로 지으신 사람 중의 누군가에게는 극한 고통의 불지옥에 가도록 미리미리 작정해 놓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렸다니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주된 대상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태엽만 감아 놓으면 저절로 소리를 내는 오르골로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당신의 장난감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생각하는 머리를 주시고, 의지,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향하여 ‘회개하라’(마4:17), ‘의를 구하라’(마6:33), ‘복음을 믿으라’(막15)는 등의 결단에 따른 행동을 요구하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한번은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혀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하자 지진이 나서 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발에 채워진 차꼬가 풀리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자다 깬 간수들은 너무도 갑작스런 일에 죄수들이 도망간 줄로 알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했습니다. 이에 바울이 ‘그러지 말라. 우리가 이렇게 여기에 있다.’ 했고, 그들을 데리고 나간 간수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물었습니다. 이에 바울이 한 대답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였습니다. (행16:16-34 참조)

여기에서의 바울도 간수에게 촉구한 것은 결단과 행동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구원 얻는 길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성경 신구약 66권을 보면 무엇을 하라, 또는 하지 말라는 말들로 채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유감없이 활용하는 말입니다. 간수도 그리하여 자신뿐 아니라 온 집안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뜻을 돌이키기에 지치신 분이 하나님이다

 

자유와 평등, 공의는 하나님의 일관된 속성입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부여하신 은총이고, 가라하신 길이기도 합니다. 멸망의 자식들을 미리부터 정해 놓고 구원의 길을 원천봉쇄하시는 편향되고 매정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골3:11)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롬3:22)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했습니다. 아담 하와 부부의 불순종으로 인해 사람은 모두가 다 진노의 자식들, 영멸의 자식들이 되었습니다. 그런 인간들에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겠다는 사람을 보고 너는 안 된다고 막으시지 않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것이 죄로 오염되어 진노의 자식들로 추락한 인간들 누구에게나 가지신 하나님의 한결같은 마음(뜻)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싫다 떠나겠다는 사람들을 억지로 붙잡으시지도 않습니다. 당신 곁에서 사랑 받기를 바라고 원하시지만 억지로 잡아 두시지는 않습니다. 떠나려는 사람의 다리몽당이를 부러뜨려서라도 잡아 두시는 특수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기야 다리몽당이가 부러지고도 정신을 차리지 않은 사람들이 많지만요.

진노의 자식들을 따로 정해 놓으시지 않았듯 은혜의 자식들 역시 못 박아 놓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 (고전 9:27)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뜻을 정했다고 해서 요지부동으로 그것을 바꾸지 않는 분이 아니십니다. 정하신 뜻을 돌이키신다는 말씀은 출애굽기(32:12,14)에도, 시편(106:45), 예레미아(5:6,18:8,10​ 26:3, 26:13 26:19), 등에도 나옵니다. 정하신 뜻을 얼마나 많이 돌이키셨으면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렘15:6)다고까지 하셨겠습니까.

이중 예정론의 신봉자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는 절대자이시니, 그분께 절대주권이 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중 예정론을 말하며 그것을 절대주권이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절대주권은 절대자유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작정(예정)하시고 그에 매어 꼼짝달싹 못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한번 정하신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구원을 위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창세전에 택하셨다는 것은 개개인을 영생과 영멸의 사람으로 미리부터 못 박에 두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온 인류의 한 사람 한 사람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에 따른 섭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1:16-17) 하셨는데, 이 또한 칼빈의 예정론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지 않기를 바라셨으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남용했던 것입니다.

 

 

상품은 안 사고 사은품만 챙기려 한다면 염치없는 일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만을 강조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사에 끼어들 여지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인간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미미합니다.

사적인 것이라서 죄송하지만, 제 개인만을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칼빈의 예정론에 공감이 될 정도입니다. 제 의지로 되었던 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 인생길을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소몰이가 소를 몰 듯 저를 여기까지 몰고 오셨다는 것이 훤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성적인 말이 되어 죄송하지만, 제 눈에는 지금 눈물이 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소몰이 하나님께서 몰아오신 소 제가 고삐를 당기시는 대로 가지 않고 달콤하지만 위험한 길로 갈 수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니 수도 없이 원치 않으신 길로 갔으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주셨고, 저는 그 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그런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강한 이끄심에 응하는 정도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안 되니 하나님께서, 성령님께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는다고 해서, 잘 믿는다고 해서 자랑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은혜일뿐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길로 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의지대로 안 되니까 하나님의, 성령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기도의 본령입니다. 먹고 입는 것으로 대변되는 육신적 소용을 구하는 것은 그(본령)에 따라오는 사은품에 불과합니다. 상품은 안 사고 사은품만 챙기려 한다면 염치없는 일입니다.

어떻든 성경에는 기도하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그런데 칼빈의 예정론대로라면 기도는 뭐하려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전도는 또 뭐하려 합니까. 이미 다 정해져 있는데요.

나도 자칫 넘어져 저주의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 같은 사도까지도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했는데, 나라고 안심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26:41) 하신 까닭입니다.

칼빈의 이중 예정론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따라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운운하며 그 논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절대주권자 하나님 안에서 그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통치라고 하면 어딘지 좀 딱딱하고 강압적이기까지 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다스린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다스리되 사랑으로 보살피며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국가 통치도 본질은 마찬가지고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우리는 그분을 무한히 신뢰하며 자신을 그분께 모두 맡기고 전적으로 의지하며 그분께서 가라하신 길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그분의 뜻, 말씀대로 따르는 사람들이 우리 크리스천입니다. 그럴 때 그분께서는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십니다. 전도하라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지상명령입니다.

이제 말로만 전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가장 좋고 확실한 전도 방법이지요.

 

 

말씀을 마치며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칼빈이 말하는 이중 예정론은 운명론이요 따라서 숙명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도록(롬10:13) 해 놓은 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그러니 예정론 같은 것에 구애될 필요는 조금도 없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우리의 삶을 각자의 ‘착한 행실’로 하여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의지대로 잘 안 되니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생은 운명론이라는 사슬에 매어 있지도 않고 숙명론이라는 못에 박혀 있지도 않으니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들어서도록 전도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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