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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꼴라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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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2월 25일 (일) 00:53:49 [조회수 : 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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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은 ‘한 해 수고 많이 하셨다’는 인사를 ‘씽꼴라’라고 한다. ‘매울 신’(辛), ‘쓸 고’(苦), ‘마칠 료’(了)를 합한 말이 ‘씽꼴라’이다. ‘맵고 쓴 고달픈 수고를 이제 마쳤다’는 뜻이다. 올해도 간단치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마무리할 때이다.  

  한자문화권에 있는 한국인들도 연말연시의 감상을 종종 사자성어로 표현한다. 누구나 연초에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을, 연말에는 ‘우여곡절’(迂餘曲折)이니 ‘간난고초’(艱難苦草)와 같은 문자를 쓴다. ‘전화위복’(轉禍爲福)과 ‘새옹지마’(塞翁之馬)처럼 비감함이 깃든 표현을 듣자면 지난 일 년을 용케 살아냈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교수신문이 주관하는 올해의 사자성어 설문에서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압도적으로 선택되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시국에 대한 무거운 걱정은 남녀노소, 장삼이사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언행에 의해 흥하고 망한다”(안창호)더니 우리 사회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유사민주주의의 홍역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2020년 1월 말부터 시작한 코로나19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어느새 천일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짐짓 공포를 벗어난 듯 하지만, 정작 중국은 본격적으로 확산일로에 있다고 한다. 애초에 진원지로 지목되는 우한의 경우 이젠 도시봉쇄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폐쇄된 우한 시에 갇힌 1천만 명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였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우한 짜요!” 한자로 ‘짜요’(加油)는 기름을 더하다 라는 의미인데 중국어로 ‘힘내라!’라는 뜻이다. 이제야 뒤따라 하는 감염병 공존정책으로 중국의 대국체면은 시험대에 올랐다.

  코로나19 탓으로 잃어버린 3년을 억울해하지만, 늘 연말이면 너무 빨리 흘러간 시간 때문에 아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미련을 덜기 위해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간헐적으로 성찰도 하지만 그렇다고 늘 세월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1년이란 시간의 마디를 잘 관리하려는 노력이 있기에, 연말이면 매듭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 법이다. 그것의 절정이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 송구영신은 끝과 시작이 연결된 마침이며, 동시에 출발의 시간이다. 모든 끝은 시작과 이어져 있다.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시간은 헬라어로 ‘크로노스’라고 부른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의 신 이름이기도 하다. 큰 복을 받으려면 크로노스를 붙잡으라는 말이 있다. 누구든지 시간의 신을 붙잡기만 하면 행운을 얻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신을 붙잡을 수 있을까? 딱 한 가지 비결이 있다. 시간의 신이 지나갈 때 머리카락을 움켜잡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크로노스는 앞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뒤에는 머리카락이 없다. 그러니 크로노스가 앞에서 다가올 때 재빨리 움켜쥐어야지, 이미 지나가고 난 다음에 쫓아가면 결코 붙잡을 수가 없다. 즉 시간은 미리미리 대비하며 살면 복이 있고, 흘러가고 나면 별 볼 일이 없다는 것이 세간의 교훈이다. 

  그래서 시간을 관리하는 데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시간이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기에 존재하고, 잴 수 있다”고 하였다. 만약 내가 일상의 일들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 일들이 나를 지배하려고 들 것이다. 튀르키예 격언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이 세상을 위해 살고, 내일 죽을 것처럼 저 세상을 위해 살아라”고 일침을 놓는다. 그렇게 현실의 삶에 지극히 충실하다면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 내려놓게 될 그때, 미련 없이 자신을 비울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신앙일 것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씽꼴라’(辛苦了)에서 마친다는 의미의 ‘료’(了) 자는 동시에 ‘깨닫다’, ‘밝다’는 뜻을 품고 있다. 송구영신의 시간이 아름다운 것은 ‘다시’ 오는 기회 덕분이다. 물론 ‘다시’는 무한히 반복되는 인생의 도돌이표가 아니다. 시간의 경계선 너머,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그렇게 ‘작심삼일’을 토로할 시간이 어느새 임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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