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김명섭 목사의 말씀학교
“땅에서 나온 또 다른 짐승의 정체” 요한계시록 13장 11절~18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2년 12월 18일 (일) 15:22:29 [조회수 : 1363]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땅에서 나온 또 다른 짐승의 정체” 요한계시록 13장 11절~18절

 

 

1. 요한계시록의 이해

 

1) 요한계시록의 난해함으로 인해 이단들은 왜곡하고 정통교회는 외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담은 정경이며 무엇보다 주의 심판과 재림을 가장 자세하게 증거 하는 책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요한계시록이 전하는 본래적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이 책을 기록한 삶의 자리(정황)를 알아야 한다. 곧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이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제국에 의해 극심한 박해를 당하던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도 요한을 통해 전하는 책망과 경고, 또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다.

 

2) 요한계시록이 난해한 까닭은 많은 부분이 은유(메타포)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은유로 기록한 목적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기 위함이고 시공을 넘어 모든 시대에 걸쳐 박해 가운데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주시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3)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천국 곧 하나님의 통치를 심판과 구원이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을 통해 심판의 계시가 한 축을 이루며 일곱 삽경을 통한 구원의 계시가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 그런 맥락에서 13장은 다섯 번째 구원의 삽경에 해당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13장은 초대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극심한 박해로부터 인 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마침내 승리하게 하시는 구원의 소망을 증거 한다.

 

 

2. 또 다른 짐승

 

① (11절) “내가 또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 ‘또 다른 짐승’은 앞서 본 바다에서 나온 한 짐승에 이은 또 다른 사단의 수하다. ‘또 다른 짐승’은 ‘또 다른 로마제국의 황제’를 가리키는 은유다. 짐승은 특정한 역사적 인물을 넘어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그리스도인을 훼방하는 모든 적그리스도를 통칭한다. ‘용처럼 말하더라’ 이전에 등장한 사단의 조종을 받던 통치자들과 모습은 다르지만 그들처럼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존재다. 이 짐승의 독특한 점은 ‘새끼 양 같이 두 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새끼 양’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 대비되고 ‘두 뿔’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왕의 권세를 뜻한다. 이를 통해 이 짐승이 우상화와 신격화를 통해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 행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한마디로 이 짐승의 정체는 ‘양의 탈을 쓴 이리’다. 사단의 전략은 무서운 사자처럼 공포심을 주며 때로는 간사한 여우처럼 미혹하고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기도 한다. 광야에서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굴종을 요구한 것과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선사한 것과도 같다. 변화무쌍하고 교묘한 술책으로 성도를 미혹하고 인간의 탐욕을 이용해서 영혼을 지배하는 사단의 책략이다.

 

② (12절)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제국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요구된다.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는 로마제국의 초대왕조였던 율리우스 클라디우스 왕조를 가리킨다. ‘처음 짐승’은 이 왕조를 세운 초대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를 가리키고 ‘또 다른 짐승’의 정체는 다름 아닌 네로 황제(주후 37년~68년)다. 그는 율리우스 클라디우스 왕조의 아우구스투스, 테베리우스, 칼리쿨라, 클라우디스에 이은 다섯 번째 황제다.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이는 네로가 혈통에 따른 황위 계승자가 아니었고 황제의 후처가 된 그의 어머니가 선황제를 독살하고 로마의 황제로 즉위시킨 것을 의미한다. 네로황제가 정통 계승자가 아니고 친위 쿠데타로 황위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③ (13절~14절)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이는 64년 로마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인 대화재를 가리키는 은유다. 역사가들은 네로황제가 자신의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작극으로 일으킨 방화로 추정한다. 네로는 대화재 사건을 빌미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며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여’ 네로는 세금감면과 같은 유화정책을 펼치며 화재 진압과 이재민 수습, 화려한 도시재건 사업 등을 통해 도리어 인기와 영광을 얻고자 했다.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또한 자신의 실책과 불완전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황제숭배의 우상화와 신격화에 매진했다. 이와 같은 네로황제의 행태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독재자들이 공히 사용하던 통치전략이다. 그런 의미에서 ‘땅에서 올라 온 또 다른 짐승’은 단지 네로황제를 넘어 역사 속에 존재하는 모든 폭군(독재자)들을 통칭하는 데까지 의미가 확장된다. 요한계시록에 자주 등장하는 ‘땅에 거하는 자들(땅에 속한 자들)’이란 표현은 ‘하늘에 거하는 자들(하늘에 속한 자들)’과 대비된다.

 

 

3. 짐승의 수, 육백 육십 육

 

① (15절)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 본문은 폭군 네로에 의한 초대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극심한 박해를 묘사한다. 이를 통해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당한 원인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이 땅의 통치자인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의 주관자로 섬기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지상(地上)에서 천상(天上)에 속한 자로 사는 사람이다. 혹독한 일제강점기에 실실한 기독교인들이 항일운동에 앞장 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현실 속에서도 물질주의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 나눔과 섬김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이들이 당하는 고초가 여기에 해당된다.

 

② (16절~17절)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정확하게 단언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짐승의 표가 하나님의 인 치심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그 뜻은 명확해진다. 하나님의 인 치심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를 나타내는 표증 곧 그리스도의 흔적(성흔, 스티그마)이다. 이에 반해 짐승의 표는 노예의 낙인이다. ‘탐욕의 노예인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사람,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진 하나님께 인정받은 성도다. 그들은 말씀대로 준행하기 위해서 받은 박해와 고난의 흔적 곧 영광의 상처를 갖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자라고 말한다. 이와 달리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짐승의 논리와 사고방식을 좇아 짐승처럼 야수와 같은 삶을 사는 인생이다. ‘사람의 칭찬과 인정인가,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인가!’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평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세상적인 영광과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이를 반증한다. 예수께서는 내세울 업적이나 성취도 없었지만 전 생애를 통해 오직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몸으로 구현하신 까닭이다.

 

③ (18절)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륙이니라”

▶ 공동번역 성서는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바로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영리한 사람은 그 짐승을 가리키는 숫자를 풀이해 보십시오.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그 수는 육백 육십육입니다.’ 666이라는 숫자가 뜻하는 사람의 이름을 풀기 위해서 굳이 유대인의 수비학 ‘카발라’를 활용하는 이유는 ‘카발’의 어원이 바로 ‘지혜’라는 단어인 까닭이다. 대표적인 ‘카발라’는 알파벳 첫 글자를 암호화하는 ‘노타리콘’과 알파벳에 해당되는 숫자로 조합하는 ‘게마트리아’다. 널리 알려진 노타리콘은 ‘익투스(ΙΧΘΥΣ, Ιησους Χριστος Θεου Υιος Σωτη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들 구세주)’다. ‘바로 여기에 지혜’가 필요하다는 본문이 지시에 따라 카발라의 지혜를 빌어 게마트리아에 의해 네로 황제에 해당하는 라틴어 ‘NRWN QSR’를 히브리어로 옮기면 ‘נרון קסר’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알파벳에 해당하는 숫자들의 총합이 ‘666’이다. 따라서 이 숫자가 암시하는 사람은 ‘땅에 올라온 또 다른 짐승’ 곧 네로 황제다.

▶ 서두에 언급한대로 본문의 핵심 주제는 초대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땅에서 올라 온 짐승의 정체가 누구인지 밝히는 데 있다. 사람의 이름을 숫자로 암시하고 있는 666은 일차적으로 초대교회 시대에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던 로마제국의 황제 네로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은 재론할 여지조차 없는 상식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666이 단지 역사 속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사 이래로 폭군 네로황제처럼 하나님을 훼방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모든 적그리스도들을 통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명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4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