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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가 마셨던 커피 맛은 어땟을까?- 개항커피 시연·시음회 개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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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21일 (월) 14:37:55
최종편집 : 2022년 11월 21일 (월) 14:43:23 [조회수 :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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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

조선 최초 서비스커피를 재현하다

- 개항커피 시연·시음회 개최 -


   1885년 4월 5일 동인천 대불호텔에 도착한 아펜젤러 선교사 
   그날 저녁, ‘잘 준비된 서양식 식사’에서 아라비카종 자바커피를 서비스 받았을 것
   당시 커피는 오늘과 달리 삼베에 탕약 찌꺼기를 걸러내는 방식으로 진하게 우려낸 원두커피 

   2022년 11월 24일(목) 11시. 15시 2회에 걸쳐, 대불호텔(중구생활사전시관)에서 
   137년 전에 맛본 개항커피 시연·시음회를 개최한다.   
  


1885년 4월 5일 오후 3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는 동인천에 당도한다. 삼판선으로 갈아타고 제물포에 내린다. 아펜젤러는 대불호텔에서 여장을 푼다. “방이 넓은데도 따뜻하다.” 호리 리키타로(掘力太郎)가 동인천 제물포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이다. “잘 준비된 맛있는 서양요리가 나왔다.” 

정확하게 커피라고 기록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나라 최초로 서비스커피를 마신 기록이다. 1902년 정동에서 문을 연 손탁호텔보다 8년 앞선다. 그러나 아직도 정동 손탁호텔에서 서비스한 커피를 최초로 알고 있다. 1896년 아관파천 한 고종이 마신 커피를 최초로 여긴다. 

2022년 11일 24일(목)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서비스한 대불호텔(중구생활사전시관)에서 개항커피 시연·시음회를 개최한다. 오전 11시와 오후 3시 두 차례 개최하는 개항커피 시연·시음회에서 우리나라 최초 서비스커피를 재현함으로써 기존에 잘못 알려진 인식을 바로 잡고자 한다. 이번 개항커피시음시연회는 팸투어도 함께 진행한다. 향후 개항커피 체험 프로그램, 커피축제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ㅇ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이 개항커피 시연시음회를 진행한다. 한국여가문화사 100년을 다룬 《한국사회와 한국여가》를 쓴 여가전문가이고 《골목길 역사산책》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 관광전문가다. 우리나라 최초 서비스커피 개항커피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ㅇ 개항커피 시연에는 구대회 대표가 나선다. EBS 클래스e에서 10차례 커피 강의로 잘 알려진 신세대 커피전문가다. 개항커피 시연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고 하니 자뭇 기대된다.

 ㅇ 구대회 대표는 자바커피도 시연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마신 대불호텔 서비스커피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재배한 아라비카종 커피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본부가 있었던 바타비야는 오늘날 인도네시아 자바섬 자카르타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자바에서 커피농장을 만들어서 아라비카종 커피를 생산했다. 또한 나가사키 데지마에 상관을 운영했었다. 일본에서 앞선 서양을 배우자는 열풍 ‘난학’(蘭學)이 일어난 곳이고, 커피를 처음 접한 곳이다. 바로 이 커피가 제물포 대불호텔로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커피 필터가 개발되기 전이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에서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 우리나라 최초 서비스커피를 내리는 방식과 유사했을 것이다.

 *  개항커피 시연·시음회 안내

   
 

 

* 조선 서비스커피(serviced coffee) 시작 *


19C 중반 조선으로 밀입국한 천주교 신부가 홍콩, 마카오, 상해 등지로부터 전달 받은 것이 조선커피사 최초를 장식한다. 이어서 1883년 영국 공사 일행인 칼스가 묄렌도르프의 집에서 마신 커피, 고종의 초정으로 조선을 다녀간 퍼시빌 로웰이 1884년 1월 김홍집의 한강변 별장에서 대접받은 커피, 그리고 1889년 봄 언더우드와 결혼한 호튼 여사가 장거리 신혼여행 겸 선교여행길에 지방 관리에게 제공한 커피 등 관련 기록에 커피가 등장한다. 19C 조선에 전래된 커피는 외교사절, 군인, 교육가, 여행가, 상인, 선교사 등 외국인과 조선 상류층 일부에서 개인적으로 마신 것이다. 
   

그렇다면 호텔 또는 커피하우스에서 판매한 
서비스커피(serviced coffee)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을까?

우선 최초로 서비스커피를 마신 것은 언제 어디서일까? 

흔히 아관파천 뒤 러시아공사관에서 고종이 마셨다는 커피를 시작으로 보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류다. 근대호텔의 효시로 알려진 손탁호텔과 그곳 서양식 음식점에서 커피서비스를 시작했다고도 한다. 이 또한 잘못 알려진 것이다. 근대호텔의 시작은 한양 정동이 아니라 1884년 인천 제물포다. 이순우가 집필한 《손탁호텔》에는 여러 문헌을 근거로 인천에 대불호텔이 1884년 4월 무렵, 이어서 스튜어트호텔, 그리고 꼬레 호텔이 1886년 경 문을 열었다. 대불호텔의 일본인 주인 호리는 미국 군함의 선상 요리사 경력이 있고, 스튜어트호텔의 중국인 이태는 미국 군함 모노카시호의 승무원이자 요리사로 근무했으며 더불어 초대 미국공사관의 집사겸 요리사 경력도 있다. 따라서 1880년대 제물포에 개업한 호텔 3곳은 서양식 요리 서비스가 가능했다. 

1885년 4월 5일 제물포에 도착한 아펜젤러는 대불호텔에서 서양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제물포로 들어오는 선박에 각종 물품을 공급하던 주인이 경영하는 호텔에서 잘 준비된 서양식 요리라면 와인과 커피가 제공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근대호텔의 시작도 손탁호텔이 아니라 대불호텔이지만, 서비스커피의 시작 역시 손탁호텔이 아니라 아펜젤러가 대불호텔에서 마신 커피다. 우리나라 서비스커피의 역사는 1902년이 아니라 1885년에 이미 시작했다.   


당시 대불호텔에서 제공된 커피는 어떤 경로로 들여왔을까?

부산과 제물포 등 1880년대 개항도시는 미국과 유럽으로 오가는 원양항로 그리고 일본의 요코하마 시모노세키 나가사키, 청나라 상해 홍콩 마카오 등 동아시아 여러 개항도시를 오가는 정기 기선항로가 개설되어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정기항로를 통해 우편, 무역, 이주, 여행 등을 할 수 있었다. 1880년대 조선에 들어온 커피는 정기노선을 운항하는 배를 통해서다. 


그럼 어디에서 생산된 커피일까? 

먼저 1896년 9월 15일자 <독립신문> 실린 최초의 커피광고를 보자. 독일 상인 고샬키가 정동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품 광고를 실었다. 여기에 새로 로스팅한(newly roasted) 모카커피와 자바커피를 판매 한다는 내용이 있다. 한편 홍콩에서 매년 발행되는 동아시아 각국의 외국인 명단에 1884년에 제물포에서 상업 활동을 하는 외국인으로 고샬키를 비롯 3명이 있다. 즉 1884년 대불호텔이 개업할 때 고샬키 혹은 다른 상인을 통해 커피원두가 수입 될 개연성이 있다. 

더불어 당시 조선에 들어온 생두는 배로 운송되었기에, 운송거리와 비용 그리고 운송기간과 원두의 보관성 등을 고려할 때 유럽이나 아메리카 등 장거리 무역보다는 동남아시아의 커피를 들여왔을 것이다. 자바커피이다. 자바 섬 바타비아에서 일본 나가사키까지의 상선운항은 16C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콩 마카오 대만 오키나와 광주 상하이 등도 수세기 동안 활발한 해상교역이 이뤄졌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 바타비아는 17C말부터 19C말까지 동아시아 해상무역 거점이었다. 커피 생산과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본사가 있었고, 동인도회사에서 커피농장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19C 동아시아 커피시장 역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자바섬에서 생산한 자바커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880년대 제물포에 수입된 커피가 자바커피라면 커피종은 어떤 것일까? 

1699년부터 커피열매를 생산한 자바 섬의 커피나무는 아라비아에서 옮겨 심은 아라비카종이다. 1869년 스리랑카에서 시작된 커피녹병이 자바 섬에 전파된 것은 1888년이고, 이후 10여년에 걸쳐 녹병에 내성이 있는 로부스타종으로 교체되었다. 1880년대 대불호텔에서 서비스 한 커피는 커피녹병이 퍼지기 전이다. 따라서 아라비카종이다.


한 가지 더 짚어보자. 당시 커피를 내리는 방식은? 

19C말 조선에 커피가 보급될 때 가배 혹은 양탕국은 자바식 혹은 유럽에서 주로 사용된 터키식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터키식은 커피가루 소량을 설탕과 함께 넣고 상당시간 끓인 후 찌꺼기를 걸러 내고 잔에 따라 마시는 방식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찌꺼기를 걸러내는 방법으로 삼베로 탕약을 걸러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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