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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린 감사절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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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20일 (일) 00:45:07 [조회수 : 2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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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광고판은 광화문사거리 교보문고 빌딩 벽면에 있다. 어느 날 문득 보니 광고판에 실린 시구가 반짝이는 보석과 같았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 살았다는 흔적이 별처럼 아름답다”(이생진 시, ‘벌레 먹은 나뭇잎’). 계절마다 간판을 바꿔다는데, 감성적인 시(詩)들 덕분에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캠페인이라고 평가받는다.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다고도 한다. 

  교보문고 광고판이라고 처음부터 성공작은 아니었다. 1991년부터 내 걸렸는데 처음 7년 동안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누군들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 활력을 다시 찾자”라는 상투적 문구에 눈길을 줄까, 싶다. 그러다가 IMF 이후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장석주 시, ‘대추 한 알’) 등 잠언과 같은 문구 덕분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태풍이나 천둥 그리고 벼락이 있었다. 광고판의 변화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누리는 시적 여유와 상상력만이 아니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어야 할 때가 있다”(신철규 시 ‘눈물의 중력’).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아픔과 서러움, 두려움과 멍에로 고달픈 인생들이 너무 많다. 다만 점점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함께 온다. 우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영화 ‘카잔차키스’). 

  지금 우리나라가 참 잘살게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란 점이다. 그 이유로는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렇다고 감사조차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UN이 생긴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이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자 원일한 선생은 평생 한국에 살았다. 그가 은퇴 후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경기가 좋다, 살만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다.” 

  독일에서 목회하던 2001년 가을,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의 김겐나지 극장장과 공훈배우 문공자 가수 부부를 초대한 일이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두 사람은 복흠한인교회는 물론 독일 10여 곳에서 무대를 꾸며 노래를 불렀고, 고려인의 삶을 한(恨)으로 담아 이야기로 전하였다. 마침 머물던 중에 추수감사절을 맞았다. 문공자 님은 고려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동요가 있다면서 특송을 자청하였다. 노래가 얼마나 흥겹던지 함께 배우기도 하였다. 

  카레이스키라 불리는 고려인은 조선시대 말기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살다가, 1937년 10월 강제이주 당한 이래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다. 스탈린은 일본과의 간첩행위를 우려할만한 빌미로 삼았다. 무려 17만 2천 명이나 되던 사람들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흩뿌려졌으나, 용케 땅을 판 움막에서 겨울을 지내고 겨우 살아남았다. 일제강점기에 가난하고 주권이 없어 생긴 일이었다. 

  뼈가 시린 중앙아시아 대평원의 겨울을 이겨낸 고려인들은 이듬해 봄, 광야에서 눈물로 씨앗을 뿌렸다. 고려인들의 성실함과 근면성은 몇 해 못 가 마침내 황무지에 논을 만들고 벼농사를 짓는데 성공하였는데,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이 넓은 논판에 씨 뿌려/ 풍년의 가을이 돌아오면/ 누렇게 누렇게 벼 이삭/ 우거우거져 파도치지/ 에헤야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짜 먹고 와싹와싹 자라나게
  콜호즈 농장에 깨뜨려/ 봄을 마중 해 소리치니/ 뜨락또르 또르르 굴려라/ 파종의 씨앗이 늦어 말게/ 에헤이야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에 젖을 짜먹고 와싹 와싹 자라나게

  같은 처지의 디아스포라 앞에서 부른 감사절 노래는 생소했지만, 금새 공감을 불러왔다. 독일에 정착한 광부-간호사 가정과 중앙아시아에 사는 고려인들의 고단한 삶이 연대하는 순간이었다. 고려인 1세대 작곡가 연성용(1909-1995)이 지은 노동요는 얼마나 건강하고 희망차던지 남의 땅에 산다고, 마음이 주눅 들거나 옹색하지 않다. 듣기만 해도 노랫말이 어찌나 신명나고 역동적이던지, 광야에 뿌린 씨앗은 땅의 젖을 짜 먹고, 와싹와싹 희망으로 자라났다. 그렇게 가슴 시린 감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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