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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시간 기도하고 생활이 되나?
신현희  |  juventusjesu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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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17일 (목) 23:32:49 [조회수 : 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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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교회, 길거리를 오가면서 지역에서 크게 벗어날 일 없고, 올해 결산, 내년 계획도 하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교회에 머물러 있는 11월이다. 새벽에 한 시간, 저녁에 두 시간, 그것도 새벽과 저녁의 기도회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시간까지 총 다섯 시간 남짓 되는 시간을 기도에 쓰면서 어떻게 살까 생각해봤다. 하루 여덟 시간씩 기도한다고 말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여기면서도 내심 다른 일은 신경 안써도 될 만한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기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린게 아니었다. 하루에 잠을 5-6시간도 편히 잘 수 없고, 밥 먹는 시간조차 마음 놓고 자리에 앉을 수 없는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도에 다섯 시간을 쏟아 붓는다는 말은 불가능해 보인다. 인생의 아주 큰 시련과 위기를 만나 모든 것을 멈춘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허탈함과 막막함에 빠진 거룩한 백수(?)들의 일과에나 적용할 법한 말이다. 그런데 과연 나는 ‘거룩한 백수’가 되고도 남을 시기에 기도했는지를 자문해보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목회를 시작해 교인도 한 사람도 없었던 당시 예배당에 앉아있는 하릴없는 상황에서도 뭐가 그리 쓸데없이 바빴는지 나는 한 시간 이상 기도하지 못했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여유가 생기고 시간이 있다면 기도하겠나? 동일하게 주어진 24시간 안에서 어떻게 정해진 시간에 기도 시간을 두 세 시간 확보하고도 일상생활이 가능한지 3주 동안 실험해보았다.

첫째로 시간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졌다.
  365일 새벽기도를 해왔으니 새벽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5시 30분부터 7시다. 11월이 되면 21일 동안 저녁에 8시에서 10시까지 기도회로 정해두었으니 무슨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든지 그 시간은 안된다. 일단 정말 시급한 만남이 아닌 이상 약속을 정하지 않는다. 꼭 만나야할 상황이어도 기도 시간을 피해서 만나든지, 다음번으로 넘긴다. 기도 시간을 최우선 순위로 정해놓고 떼어놓으니 역할갈등이나 일의 시급성을 따져가며 그동안 그렇게 밀고 당기던 시간의 우선순위가 정돈되는 기분이다.

둘째로 급한데서 여유가 생겼다.
  흔히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애초에 마음먹기를 여유롭게 해야 여유가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실제는 반대다. 조바심이나 조급증과는 다른 긴장과 초반 전력 질주가 도리어 후반부 여유를 만들어 낸다. 무슨 마음인지 느긋한 마음으로 일 시작하다가 끝에 가서 허둥대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기도 시간을 없는 셈 치고 나면 하루 일과 중 나머지 2-3시간짜리 시간의 큰 덩어리가 사라진다. 조금 보태서 기도시간 외에는 모두 자투리 시간이 되니 그만큼 일을 빨리 처리해야한다는 생각이 밑에 깔린다. 시간 터놓고, 여유 있게, 시간에 구애됨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만큼 없어진다. 결과로 놓고 보면 일과 일 사이의 전환이 빨라진다. 일어나서 30분, 자기 전 30분에도 반드시 해놓을 것들이 진진하다. 심각한 일중독이 아니라면 대개 보통 일을 계획성 있게 잘 해내는 사람들이 여유를 만들고 놀기도 잘한다.

마지막으로 주변을 더욱 돌아보게 되었다.
  기도의 자리에 앉아 있으려면 누군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일부 맡아주거나, 걱정하지 않도록 해결해 줘야한다. 출애굽기 한 장면처럼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가 내려오는 양손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지속적인 기도가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시든, 신뢰할만한 가족이나 이웃이든, 당부나 위임을 통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뒷받침 되어야한다. 이전에 맡기지를 못해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던 일도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때 당부하고 위임해야 했다. 다른 이들에게 짧게 요청하고 느슨하게 확인하는 식이었지만 결과는 더 좋을 때가 많았다. 시간의 압박 속에서 ‘내가 하거나 내가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버렸다. 나보다 더 좋은 재능과 소질을 가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부분을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었던 그 때 기도 못했으면 지금은 당연히 못하는 것 아닌가 싶은 괴로운 마음이 들다가 최근 하루 두 시간, 세 시간씩 기도하는 날들을 지나면서도 과업을 감당할 시간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있다. 누구나 기도를 하지만 충분히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더니 내가 그랬다. 해보니 좋다더라는 말은 그렇게 실천해보기 전에는 어렵다. 기도 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부부간에 또는 자녀와의 대화시간을 대입해서 생각해본다면 스스로 답이 내려질듯하다. 바빠서 기도하지 못한다는 말은 시간이 있어도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바빠서 기도한다는 말은 신앙적 허세가 아니라 ‘기도로 형성되는 관계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이다. 다 지난 가을이지만 다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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