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계속하여 창조의 그때와 똑같은 역동성으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당신께서 지으신 천지 만물을 큰 것 작은 것 구별 없이 모두 주재, 운행, 관리하고 계십니다.

지(구)상의 동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다 만드시고 맨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심으로 천지창조를 마치셨는데, 그 하나님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이십니다. 본질도 속성도 무엇도 모두가 다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데, 그 주 대상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으로 당신께서 창조하신 천지 만물을 낙원으로 하여 역시 당신께서 지으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 부부에게 삶의 터전으로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어겨 낙원으로 주신 세상을 고해(苦海)로 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어기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죽을 처지가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사망, 죽음인 영멸의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지요.

그것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보고만 있을 수가 없으셨습니다. 너무도 아파서 견딜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영멸의 지옥행으로부터 구하시려 창조주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독생자 외아들을 그의 피조물인 사람의 아들로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보내셔서 사람의 아들 즉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그들을 사랑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그들 세상 사람들에게 새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고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때가 이르자 사람의 아들로 사람인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죄를 다 맡아지시고 그 죄의 삯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스스로는 먼지 한 알만큼의 죄도 없어 순백이신 분께서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다 지심으로 가장 큰 죄인, 대죄인이자 중죄인이 되어 그 죄의 삯, 죗값으로 가장 치욕적이고 고통스런 십자가 형벌로 죽으신 것입니다. 커다란 못이 손과 발에 박혀 살을 찢고 뼈를 부스러뜨리는 그 큰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 예수 그리스도의 내면에는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고통, 그것은 육체적 고통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겟세마네 기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살을 찢고 뼈를 부스러뜨리는 그 고통의 죽음을 앞에 놓고 오죽했으면 이런 기도까지 하셨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육체적 고통 때문만은 아니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서학자들까지도 그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당신 또한 하나님이시지만, 그때는 사람의 아들로 연약한 육체를 입고 계셨음으로 그 같은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음의 아픔이 비교도 안 될만큼 컸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나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외치고 죽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오늘날 시간으로 오전 9시부터 6시간 동안이었는데, 12시부터 3시까지 3시간 동안 땅에 어둠이 덮어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에 대한 진노의 증표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당신의 친아들 예수가 버림받아 아버지 하나님과 단절됨으로 인해 격게 된 아픔, 그것이 감성의 하나님께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태양빛이 가장 강렬해야 할 한낮 12시부터 3시까지가 어둠에 싸였던 것은 그런 하나님의 아픔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뿐이라면 예수의 죽음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그리 큰 것이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과 동시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이 휘장은 성소, 즉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막은 것으로 어른 손 두께 이상으로 두꺼웠는데, 1년에 단 한 번 단 한 사람 대제사장만이 속죄제를 드리는 날에만 열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을 사람이 일부러 그럴 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아예 위로부터 찢어 계속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던 철근콘크리트 벽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친히 제거하신 것입니다. 성도 모두가 제사장,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셔서 구약시대의 제사장이나 대제사장 같은 직임이 필요 없게 하신 것이지요.

그뿐인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어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아버지가 계시는 본(고)향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으므로, 우리도 그분께서 닦아놓은 길을 따라 아버지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어 우리로 하여금 지옥행에서 천국행으로 바꿔 타게 하신 것이지요.

이야기를 구약으로 옮겨 좀 더 이어가 볼까요. 그리스도인은 모든 성경을 다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이사야서는 특별히 그러는 것 같습니다. 이사야서를 예언(서)의 정상, 구약 속의 신약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이 책을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은가 합니다. 그 중에서도 53장은 예언의 백미 중에서도 백미라 할 것입니다.

2절의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로 시작하여 9절까지 이어지는 예수에 대한 예언은 그가 이땅에 오시기 700년이나 가까이 전에 쓰여진 것이라고는 생각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고도 사실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장면을 읽고 있자면 자신이 그분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까지도 받습니다.

그러나 이에 이어지는 10절의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하는 말씀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가 십자가 지기를 원하어 죽게 하셨다는 것이 상반절의 의미인데, 사람이라면 어떤 부모가 자식 죽기를 원하겠습니까. 그것도 여기에서의 ‘원하사’라 표현한 것은 단순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갈망한다는 것이며, 그것도 기쁨으로 그리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의 죽음으로 인한 축하연을 배설(排設)하시고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이라면 여인이 해산 때 태어날 아기보다는 당장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산통의 절정에는 이것저것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온몸으로 고통만을 견디는 일에 사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친아들이 극한의 고통 속에 죽어가고, 당신께서도 그 고통을 똑같이 겪으시면서도, 그러한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을, 이 아니라 그 같은 것은 아예 다른 한 면의 기쁨에 깔려 숨도 못 쉬게 하고 말으셨습니다.

중반절에는 ‘속건제’라는 말과 ‘그 씨’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전자 ‘속건제’는 죄에 대한 배상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만족을 이루는 완전한 제물로서의 (예수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며, 후자 ‘그 씨’는 예수가 희생의 제물로 드려져 죽음으로 영원한 새 생명의 구원을 얻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곧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이 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아들 예수를 죽여 우리를 살리신 것이 후반절의 아버지 하나님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롬5:8)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신 일을 기뻐하신 것은 성부 여호와 하나님뿐만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죽으신 당사자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외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 였는데, 이 말은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이고, 그 뜻은 (종이 주인으로부터) 맡겨진 일을 완수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흠없이 온전하다,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작품이 완성되다, (상인들에게 있어서) 돈을 모두 지불하다, 등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저를 포함한 온 인류가 지은 죗값을 자신의 죽음으로 단번에 치르신 것입니다.

이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라는 말씀에 관해 바클레이는 ‘승자의 외침으로 자신의 과업을 완수한 사람의 외침이며, 고투를 통하여 승리한 사람의 외침이다. 그리고 암흑에서 나와 밝은 빛의 영광으로 들어선 사람으로서 면류관을 획득한 사람의 외침이다’라고 주해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친아들의 죽음을 슬픔이 아니라 환희로 넘칠 만큼 기뻐하셨으며, 아들 예수께서는 그런 자신의 죽음을 승자로서의 과업 완수요, 영광이요, 면류관으로 여길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가슴 돌비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그만큼 소중하고 또 소중한 하나님의 보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배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떠해야 할까요. 보배이니만큼 보배로서 보배처럼 살아야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그처럼 사는 것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각자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마22:38),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같이 사랑하면(39) 됩니다. 이 두 가지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40)이라 했으니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맞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가능한 일입니다. 방법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방법을 말씀드리자면 너무 길어질 테니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고 다음으로 미뤄 두겠습니다. 불원간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