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우리말 공부> 백문식, 그레, 2020

둘째가 초등학교 3학년이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필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즈음 알파벳을 외우기 시작했으니 딸은 아빠에 비하면 엄청난 수재다. 그런데 조금 안쓰럽다. 

세상에는 젖병 물고 영어를 체득한 사람도 있고 필자처럼 공부해서 영작영어를 떠듬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은 체득하기에는 늦고 공부하기에는 좀 이른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딸아이의 영어 공부는 두 가지 방법이 낳은, 각기 다른 스타일의 미디어 콘텐츠와 교재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좋다는 콘텐츠나 교재를 선물하는 지인들의 관심과 부모의 무지가 합심하여 낳은 갈지자 공부다. 영어 잘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동시에 공부로 괴롭히고 싶지 않은 두 마음이 뒤섞인 부모의 마음을 꼭 닮아 어정쩡하기 그지없는 학습법이다. 그나마 딸아이가 별반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랄까? 

딸아이가 영어 단어를 공부한답시고 연필 쥔 조막손을 꼬물락거리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딸아이의 모국어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연이어 내 존재의 거처라는 내 언어의 집도 형편없이 좁다는 사실이 딱밤을 맞는 것처럼 아프게 떠올랐다. 그럼에도 내가 국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두 번째 딱밤이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마법처럼 공부를 당최 하지 못하는 많은 핑계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었고 결국 오래지 않아 그런 아픔은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지면에 어떤 책을 소개하면 좋을지 몰라 서점 안을 서성이다 다리가 아파 멀뚱히 서있을 때, 한 책이 눈에 쏙 들어왔다. 처음, <아름다운 순우리말 공부>는 소개하고 싶은 책이기보다 읽고 싶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아름다운 순우리말’이다. 아름다운 순우리말이 들어갈 자리가 OO처럼 빈, 주관식 문제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러니 제목처럼 공부해야 하는 책이다. 주관식 문제의 답은 페이지 바로 아래에 있어 찾기가 번거롭지 않다. 오래간만에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감이 좋아서 기억해두었다가 쓰고 싶은 말이 참 많다. 정이나 한처럼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정서를 정확하게 꼬집어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말이 마침맞게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딱 맞는 말이 있는데 하릴없이 길게 설명하며 살아온 내 모습이 자닝하다. 자닝하다니... 이렇게 써먹는 재미도 있다. 물론 혼자만 쓰는 말이 말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책에서 좋은 어감을 가진 단어를 만날 때면 맛난 음식처럼 나눠먹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듣고 싶은 말도 있다. 한자어로 이루어진 단어가 결코 다 표현해내지 못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 혹은 그런 상황을 그리고 싶을 때, 아껴둔 곶감을 쏘옥 꺼내는 기분으로 마음에서 단어 하나를 쏘옥 꺼낼 수 있다면 좋겠다. 

반가운 책이 읽고 싶은 책으로, 공부하고 싶은 책으로, 소개하고 싶은 책으로 변해온 사연이 됐다. 대중 앞이면 유독 사자성어나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사람이 있다. (목소리가 조금 변하는 정도는 본인도 모를 수 있으니 넘어가자.) 이 말에 찔리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그런 어투를 쓰는 동기까지 타박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더 멋지고 잘나 보이고 싶을 테니, 심지어 배웠다 하는 사람들도 그걸 티내려고 하니까. 그렇다면 아름다운 순우리말은 어떨까? 이 책 제목처럼 아름다우니까. 어떤 티라도 아름답게 내보자. 그러면 그게 아름다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