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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요한계시록 11장 1절~6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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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11일 (금) 14:37:18 [조회수 :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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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요한계시록 11장 1절~6절

 

 

1. 지팡이 같은 갈대로 척량하라!

 

① (1절)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 11장은 10장에 이어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의 막간에 벌어지는 구원의 광경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곱째 나팔이 중요한 까닭은, 최종적인 심판인 일곱 대접의 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10장에서 사도 요한에게 ‘일곱 우레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쓴 작은 책’을 먹게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나팔이 부는 날(최후 심판의 날)을 이미 확정하셨고 지체치 않고 시행하실 것을 의미한다. 핵심은 10장에서 14장까지 일곱째 나팔이 불기 전에 나타날 징조, 곧 최종적인 심판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사도 요한에게 핍박과 박해 가운데서도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맡기시는 장면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신탁(명령)이다. 이 말씀은 사도 요한뿐 아니라 핍박과 박해 가운데 있는 모든 성도들을 향한 명령이기도 하다. ‘지팡이 같은 갈대’는 척량하는 측정 도구다. 헬라어 카논은 문자적으로 ‘반듯하고 긴 갈대’인데 고대에 사물을 측정하는 자(기준)로 사용되었다. 정경을 의미하는 캐논(Canon)은 헬라어 카논에서 온 것이다. 캐논은 표준, 척도, 모델, 기준이란 의미다. 따라서 지팡이 같은 갈대는 정경(캐논),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척량의 대상이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다. 척량의 목적은 타락한 성전을 허물고 거룩한 성전을 재건축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더러운 것은 깨끗케 하시기 위함이다.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말씀을 기준으로 거룩한 새 성전에 합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척량하는 사명을 맡기신 것이다. 이는 심판의 목적이 멸망이 아니라 구원임을 재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② (2절 상)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성전 밖 마당은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대로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던 ‘이방인의 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문맥을 살펴보면 ‘성전 밖 마당’은 하나님과 담을 쌓은 자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것과는 아예 무관한 자들을 가리킨다. 척량할 여지조차 없는 자격 미달의 대상들이다. 심판의 기준과 척량의 대상은 성전 안에 있느냐 성전 밖에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말씀을 듣기만 하는지 말씀대로 준행하는 지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데 있다. 따라서 성전 밖에서 경배하지 않고 말씀조차 듣지 않는 이는 아예 척량에서 열외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 12:6~11)”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징계하시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자와 받으시는 아들에게만 징계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징계는 연달을 통해 구원하시기 위한 과정이다.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가장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은 징계가 아니라 죄 가운데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롬 1:24)” 한마디로 ‘성전 밖 마당’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③ (2절 하)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은 유대인과 구별되는 외국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성’ 곧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했던 이방인의 군대를 가리킨다. 솔로몬성전을 파괴한 바벨론제국의 느부갓세살, 스룹바벨성전을 유린한 헬라제국(셀레우코스왕조)의 에피파네스, 헤롯성전을 파괴한 로마제국의 티투스와 같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는 세력 곧 적그리스도를 통칭한다.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마흔 두 달은 30일을 한 달로 기준하던 고대의 계산에 따르면 1260일, 문자적으로 3년 6개월이다. ‘마흔 두 달’은 단순히 문자적인 기간을 넘어 상징적인 기간을 말한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같은 의미로 하나님의 통치를 훼방하는 적그리스도가 거룩한 성을 짓밟는 박해와 환난의 시간을 뜻한다. 그 기한이 영원하지 않고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잠시 지나가는 것이니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솔로몬성전을 파괴한 바벨론제국의 느부갓세살, 스룹바벨성전을 유린한 헬라제국(셀레우코스왕조)의 에피파네스, 헤롯성전을 파괴한 로마제국의 티투스에 의해 거룩한 성이 짓밟혔던 역사적 사건들은 시대와 기간이 다르지만 상황이 모두 동일하다. 그런 맥락에서 일제강점기 36년도 ‘마흔 두 달’에 해당한다. 짓밟힌 기간은 다르지만 압제 당하던 상황이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는 세력 곧 적그리스도에 의한 핍박과 박해는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을 넘어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과 같은 종말론적 상황과 장차 벌어질 최후 심판의 날까지 의미가 확장된다.

 

 

2. 두 증인,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의 정체

① (3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 적그리스도들에 의해 하나님의 도성이 파괴되고 성전이 유린당하는 박해와 절망의 시대에,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신다. ‘나의 두 증인’은 특정한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모세와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권능을 입은 복수의 선지자를 가리킨다. 이렇게 해석하는 근거가 이어지는 6절에 나온다.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이는 엘리야와 모세가 행했던 하나님의 권능을 적시한다. 선지가 말라기도 이 두 증인에 대해서 증거 한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4~6)” 말라기의 예언은 회개를 촉구하며 주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과 모세 보다 더 크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미 성취되었다. 이처럼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오기 전에, 두 증인을 보내셔서 회개와 심판을 촉구하실 것을 예고한다.

▶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바로의 폭정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보내서 권능을 행하셨다. 또한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폭정에서 바알에게 굴복하지 않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엘리야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셨다. 그뿐 아니라 암울한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아의 정신을 이어받은 수많은 선지자들에게 권능으로 기름을 부어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밝혀 주셨다. ‘굵은 베옷을 입고’ 슬픔과 애통으로 회개를 촉구하며 심판과 구원을 증언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다.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께 속한 복수의 증인들을 보내셔서 회개를 통한 구원을 증거 하실 것이다.

 

② (4절)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 사도 요한이 본 감람나무와 촛대를 스가랴도 보았다.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에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슥 4:2)” 스가랴가 본 ‘등대’는 어둠에서 빛을 밝히는 ‘촛대’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 촛대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전, 곧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가리킨다. 촛대의 독특한 구조 속에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은 각 등잔에 공급하는 기름을 저장하는 그릇으로, 등대에 불을 밝히는 원천이다. ‘그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은 주발에 채워진 기름을 일곱 개의 등잔으로 직접 공급해주는 연결통로다.

▶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슥 4:3)”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다. 스가랴가 본 감람나무와 촛대의 비전을 종합해보면, 감람나무에서 올리브기름이 흘러나와서 촛대에 기름을 공급해 준다. 여기에 이 묵시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가 있다. 촛대 자체가 스스로 빛을 밝히는 게 아니라, 촛대에 빛을 밝히기 위해서는 ‘감람나무에서 나온 기름’을 공급해 주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사람, 성전이나 교회는 빛 자체가 아니다. 다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해 비로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 한다.

 

③ (5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권능에 힘입어 말씀을 대언하는 동안에는 누구도 그들을 해칠 수 없음을 선포한다. 하나님이 그들과 친히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대적하는 자들을 불로 멸하시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엘리야가 오십 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찌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 인을 살랐더라(왕하 1:10)”,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찌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렘 5:14)” 사명을 맡은 자는 그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결코 죽지 않게 하시겠다는 보증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는 주신 말씀대로만 증언해야 한다. 자기 소견대로 말하거나 더하거나 빼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대로 그대로 대언하는 예언은 예언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청종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결정적인 원인은 예언자의 말에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곱째 나팔이 불기 전’ 곧 최후의 심판인 일곱 대접의 재앙이 임하기 전에 두 증인을 보내시는 까닭은, 돌이켜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두 증인의 출현은 최후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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