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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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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06일 (일) 00:38:17 [조회수 : 2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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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평안하신가? 일상의 인사인 ‘안녕’이 참 진심인 언어가 되었다.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시절일수록 집집마다 걱정거리가 빨래처럼 널려있다. 마른빨래일 망정 힘주어 짜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잠궈도 잠궈도 불안까지 잠굴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룬다. 근심의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걱정의 목걸이를 무겁게 늘어뜨리며 사는 일은 현대인의 일상이 되었다.

  꼭 일주일 전, 이태원에서 발생한 할로윈 축제의 참사는 깊은 애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정부가 서둘러 차려낸 애도의 공간은 ‘참사 아닌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 근조 없는 검은 리본, 영정과 이름이 배제된 공간’이기에 몹시 의뭉스럽다. 입을 맞춘 듯 사실 아닌 사실을 애써 강조할 때마다 진실이 생략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이국의 축제 할로윈처럼 슬픔은 더욱 낯설고, 생소하기만 하다.

  외국인 사망자 26명을 합쳐 모두 156명이나 희생되었으니 진상규명이 만만하게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희생자를 낸 국가들 역시 할로윈 축제를 치루기에, 이 참사에 대해 눈을 감을 리 없다. 압사 사고는 낯설지 않아, 이미 웬만한 국가마다 치명적인 경험이 있어 허투루 책임을 비켜 가기도 어렵다. 후진국형 안전사고는 잊을만하면 되풀이되는 일상적인 참사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프로축구 경기장의 난동이나 축제에 몰려든 인파를 관리하지 못해 대형 비극을 겪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하지 순례가 대표적이다.   

  탐사보도 언론 ‘뉴스 타파’는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압사 사고의 전례를 소개하면서 홍콩과 일본의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1993년 정초, 홍콩의 란콰이퐁 거리의 압사 사고와 2001년 여름, 고베의 불꽃놀이 장소로 가는 육교 위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는 이태원을 닮았다. 홍콩의 경우 새해맞이 축하이벤트가 끝나자 2만 명의 인파가 란콰이퐁 골목으로 몰려들었는데, 사람들이 넘어져 21명이 숨지고 62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부분 10대와 20대였다. 설상가상으로 도로가 미끄러웠다.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는 군중 과밀, 혼돈상태의 군중 흐름, 경찰의 무대책 등을 원인으로 보고하였다. 주최 측의 유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였다.

  홍콩 당국이 얻은 교훈은 “아무리 가벼운 위험이라고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유사한 사고를 반복하면서 행여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다음 사고를 결코 예방할 수 없다. 2014년, 10대들이 겪은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는 2022년, 20대가 된 청년들에게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일부의 내용이다.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 이를 보장할 일차적 책임이 정부에게 있으며, 피해자는 재난 발생 즉시 필요한 구제와 지원을 평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고, 모든 사람은 재난으로 생명을 잃은 이들을 충분히 애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할로윈(Halloween) 축제를 원망하기도 한다. 코로나19의 답답함에서 약간의 긴장이 해소된 지금, 축제를 구경 간 사람들에게 잘못을 돌릴 수 있을까? 본래 이태원은 외국 병사들의 거리로 조성된 곳이니만큼 국적 없는 남의 나라 축제가 구경거리로 정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유치원 어린이들의 축제문화에까지 빠른 속도로 물드는 상혼(商魂)일 것이다. 누군가는 할로윈이 어느덧 설날, 추석에 이어 우리나라 3대 명절이 되었다고 개탄한다. 

  할로윈은 본래 ‘모든 성인의 날’(만성절)의 전야제이다. 크리스마스이브처럼 거룩한 전야인 셈이다. 할로윈이 우리 사회에 무분별하게 자리 잡은 데는 거룩한 것과 고요한 것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교회의 책임이 크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인류에게 선물로 오신 아기 예수를 환영하는 전야예배, 성탄 장식, 캐롤, 성탄 카드, 축하선물 등을 귀찮게 여기다 보니 성탄은 그저 연중 통과의례로만 존재한다. 가난한 구유에 오신 아기는 고난받는 이웃들과 함께 무시 당하고 있다. 땅의 평화를 잃은 교회는 어둠의 문화에 익숙한 할로윈의 친구들에게도 외면당하고 있다.
 
  중국 소설가 옌렌커의 이야기다. ‘어렸을 때 동네에 시각장애를 가진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햇볕을 쬐면서 “어두울수록 더 따스한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도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 다닐 수 있도록 손전등을 갖고 다니며 타인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가 죽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멀쩡한 손전등 여러 개를 관에 넣어주며 그를 애도하였다.’ 옌롄커는 “사람들이 따뜻하다고 말할 때 나는 추위와 냉기를 느끼고 사람들이 빛을 말할 때 나는 어둠을 본다”고 말한다. 

  지금은 어둠과 슬픔을 직시해야 할 그때이다. 숨기거나 외면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어둠 속에서 진실과 평화와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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