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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의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시 한편이 있는 하루
김영동  |  deom-pas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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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7월 28일 (목) 00:00:00 [조회수 : 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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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종   환


피었던 꽃이 어느새 지고 있습니다

화사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꽃들이

지난 밤 비에 소리 없이 떨어져

하얗게 땅을 덮었습니다.

꽃그늘에 붐비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화사한 꽃잎 옆에 몰려오던 사람들은

제각기 화사한 기억 속에 묻혀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잎 비에 진 뒤 강가엔

마음 없이 부는 바람만 차갑습니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살아가야할 날들만 길고 멉니다

꽃 한 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

*


  벗님,                                   2005.   5.   17

  무덥던 날씨가 한풀 꺾였습니다. 비가 내린 덕입니다. 오늘 아침 방송에서 기상캐스터가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고 오늘은 우산을 꼭 가지고 출근하라고 했는데…… 그걸 알면서도 신경써가며 우산을 손에 들고 다닐 일이 번거로워 그냥 집을 나섰습니다. 무덥기는 해도 아직은 봄이고 내릴 비는 봄비이고 보슬비일 테니 맞아도 상관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 모임이 끝난 무렵엔 제법 세차게 비가 내렸습니다. 아스팔트 위로 빗물이 흐르고 흐르는 빗물에 내리는 세찬 빗방울이 우르르 물방울로 튀어 오릅니다. 이런, 양복을 입고 나왔는데…… 세찬 비를 맞으려니…… 난감합니다. 내가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은 공장 담이 길게 이어진 곳이라 나는 버스에서 내려 길 건너 건물 처마 밑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길을 건너는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후드득거리는 세찬 빗줄기에 머리와 옷이 제법 젖습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머리와 어깨에 젖어든 물기를 닦으며 한동안 처마 밑에서 비가 잦아들도록 기다렸습니다.


피었던 꽃이 어느새 지고 있습니다

화사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꽃들이

지난 밤 비에 소리 없이 떨어져

하얗게 땅을 덮었습니다.

꽃그늘에 붐비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화사한 꽃잎 옆에 몰려오던 사람들은

제각기 화사한 기억 속에 묻혀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잎 비에 진 뒤 강가엔

마음 없이 부는 바람만 차갑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가슴 가득 ‘까짓것 비 좀 맞지……’하던 당당하고 호기 어린 마음은 어디론가 저녁 어둠 속으로 묻혀버리고 비에 젖어 난감하고 머쓱한 기분이 되어 생각과 현실의 괴리(乖離)를 마음에 가득 차도록 만끽하며 서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현실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생활습관과 능력보다는 생각으로만 여전히 당당하고 호기어린 철부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쑥스러운 내 마음에 시인의 꽃이 진 텅 빈 자리에 피어오르는 맑은 생각이 새삼스러운 사명감으로 채워집니다. ‘꽃 한 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 그러나 두고 볼 일입니다. 내 일상생활이 여전히 당당하고 호기어린 마음으로만 채워질지…… ‘아름다움 지고 난 뒤의 / 정적까지 사랑’ 할 수 있는 의젓한 생활의 습관과 능력으로 채워져 갈지…… 가만히 두고 볼 일입니다. 나는 세찬 빗방울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내게 생각과 현실의 괴리(乖離)를 극복할 수 있는 생활의 습성과 능력을 길들이며 그렇고 그렇게 여름과 가을이 오고 갈 것임을 예감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살아가야할 날들만 길고 멉니다

꽃 한 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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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칠 ()
2005-07-28 12:13:52
소쩍새와 비
10대에 밤새도록 소쩍새가 울어 핀 꽃의 감동이 50대에 낮에 내린 비로 지는 꽃의 감동으로 이어 집니다.

이 꽃은 무슨 꽃일까요?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나무에 핀 흰 색깔의 많은 작은 꽃을 지닌 것 같군요. 벗꽃은 아니라고 봅니다. 덕분에 자주 시를 읽으니 감사합니다. "이름모를 소녀"를 부르며 꽃 이름을 생각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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