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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재판30년]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의 화해를 위한 ‘풍류 담론’- 일아론(一雅論)을 통한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의 화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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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02일 (수) 02:55:00
최종편집 : 2022년 11월 02일 (수) 03:43:36 [조회수 :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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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재

[종교재판 30년, 교회권력에게 묻다] 2부 종교재판 30년, 그 ‘ 以後 ’


발표2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의 화해를 위한 ‘풍류 담론’
― 일아론(一雅論)을 통한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의 화해 가능성

 

이호재(전 성균관대학교 교수)


1. 한국의 ‘풍류 담론’과 변선환에 대한 ‘종교재판’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평가

한국은 다양한 종교가 중층적이고 다원적으로 축적된 종교 전통을 가진 문화 공동체이다. 한국의 종교 지형은 선맥(僊/仙脈)과 무맥(巫脈)의 심층적 종교성을 바탕으로 유교, 불교, 도교의 전통 종교, 근대에 발현한 동학(천도교),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민족 종교, 외래 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 등 다양한 종교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한국 종교문화의 맥락에서 세계 종교로서 근대에 출현한 천주교와 개신교는 짧은 기간에 양적인 교세 확장을 통해 주류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배타주의적 선교관으로 한국 종교 전통을 배척하거나 경시하였고, 토착화신학은 서구 신학의 틀 안에서 한국 종교문화의 맥락을 왜곡한 역사가 있다. 한국 종교는 교회권력의 선교관과 토착화신학의 문화·제국주의 경향에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일아(一雅) 변선환(1927-1995)은 이런 배타적인 양자를 주체와 주체로서 대화의 가교를 놓으려 한 선각자였다. 그는 토착화신학자로 시작하여 세계 신학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신학’을 설계하려 한 종교다원주의자이다. 서구 신학의 추종에 반기를 들고 그가 말한 “교회(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적 선언은 한국 종교와 대화하기 위한 대 선언이다.

한국교회는 한국 종교 전통의 창발적인 종교적 기제인 ‘풍류 담론’과 제대로 대화한 사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한국 종교 전통과의 대화로 인해 종교 혼합, 종교 절충 등의 악영향으로 ‘절대불변의 복음’이 변질할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한국 종교 역사에서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 종교의 역동성을 상실하고 종국에는 그 역사적 생명마저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종교 역사의 상식이다. 만일 주류 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가 한국 종교 전통과 능동적인 대화에 실패한다면 ‘제국 천주교’와 ‘식민 개신교’로서 한국 종교 지형의 ‘외딴섬’에 처할 운명에 놓일지도 모른다.

서구 신학자의 다원주의는 아시아 종교를 발견하면서 다른 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해석학적 도구의 영성적 실험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원적 종교 전통에서 주장하는 다원주의는 그리스도교가 한국 종교 역사에 뿌리내리기 위한 생존적 통과의례이다. 변선환은 파토스적이고 격정적이며 온화하면서도 굵직한 목소리와 호탕하고 환한 표정으로 예언자의 결기를 띠며 ‘종교 다원주의’를 외친다. 이는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의 화해를 위한 ‘풍류 담론’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역사적 선언으로 이해해야 한다. 교회권력이 ‘종교다원주의’를 추방한 것은 결국 변선환 개인이 아니라 다원적 종교 전통에 훈습된 한국 종교 전통을 배척한 종교적 ‘무례’이자 ‘수치’이다. 한국 종교의 환대를 거절한 교회권력은 한국 종교의 ‘이방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교회권력이 아직도 ‘종교다원주의’가 담지한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종교재판’을 주도한 교회권력은 한국 종교에 ‘상호보충’, ‘상호변혁’, ‘상호협력’할 수 있는 종교적 기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의심하는 종교적 ‘철부지’가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 글에서 필자는 풍류 담론의 종교적 특성을 고찰하면서 변선환의 방대한 신학적 구상은 풍류 담론의 계승이라는 맥락에서 ‘일아론(一雅論)’으로 규정하고, 일아론을 통해 본 토착화신학의 비판과 일아론의 신학적 타당성을 방증할 수 있는 범례를 발굴하여 그의 종교적 주장이 오늘날 유효한 실천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함을 밝힐 것이다.


2. 한국 종교의 ‘불가결의 상호보충’, ‘상호변혁’의 종교적 기제는 ‘풍류 담론’이다

변선환은 세계 신학의 안테나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 종교에 대해서도 충분한 식견을 겸비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심은 ‘종교다원주의’의 신학적 발언과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그리고 ‘타종교의 신학’에 집중된다. 그러나 웨슬리안으로서 그가 지향하는 종교신학적 구상은 단순한 지적 유희나 관념 놀이가 아닌 종교 수행을 통한 종교 공동체의 혁신을 지향하는 실천적인 운동으로 확산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그의 장대한 종교신학적 설계가 감리교회에서 발화한 ‘풍류 담론’의 계승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그의 호를 따서 이를 ‘일아론’(一雅論) 이라 부른다.

한국의 종교적 정체성의 첫 문자 기록인 ‘풍류(風流)’는 「난랑비서」(鸞郎碑序)에 출전을 둔다. 이 비문은 당시 동·서 문화의 교류 중심지였던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최치원이 신선 화랑인 난랑을 기리며 쓴 76자이다. 그는 유교와 불교와 도교에 정통한 국제 종교인이자 당대의 문필가였기에 그가 기록한 「난랑비서」는 한국 종교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종교 사료로 평가된다.

「난랑비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풍류’는 나라에 있는 현묘한 도이다. 2) ‘풍류’는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문서가 아닌 신선의 역사인 『선사』(仙史)에 기록되어 있다. 3) ‘풍류’는 공자의 가르침과 노자의 가르침과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이미(!) 포함(包含)하고 있다. 4) ‘풍류’는 접화 군생(接化群生), 즉 뭇 생명의 본성을 발현시킨다. 5) ‘풍류’는 특정 제도 종교가 아닌 유·불·도의 가르침이 공동체 윤리로 실천되었다. 다시 말하면 ‘풍류 담론’은 ‘완전한 인간’으로 존재 탈바꿈한다는 인격 변화의 존재론, 유·불·도의 가르침을 포용하며 창발한다는 역동적 인식론, 모든 생명을 교화한다는 생명적 공동체론, 삼교의 종지가 사회윤리로서 일상생활에서 작동한다는 실천론이 호발하는 통합적 우주관이다. 이런 우주관은 고조선 문명의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세계관을 전승한 ‘풍류 담론’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풍류 담론’은 환웅의 이화론(理化論), 원효의 화쟁론, 최치원의 포함론(包含論), 서산의 삼가론(三家論), 동학의 기화론(氣化論), 증산교의 상생론(相生論), 대종교의 삼일론(三一論), 원불교의 병진론(竝進論) 등으로 그 종교적 맥락이 계승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유교적 동학, 선교(仙敎)적 증산교, 불교적 원불교, 민족적 대종교라고 분류하지만, 그 종교적 맥락은 ‘풍류 담론’의 근대적 발현이다. 특히 민족 종교인 신종교는 새로운 인간상과 다교합발(多敎合發)의 창발성, 지상선경(地上仙境)이라는 유토피아를 통한 인류 구원의 미래 세계를 제시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풍류 담론’은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광명한 세계에 서 펼쳐진 한국의 원형적 실재를 담지한 평화의 ‘선맥 담론’으로 역사 공동체인 한국의 종교적 본바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일아론’은 다원적인 종교 질서를 수용하여 창발하는 「난랑비서」의 포함삼교(包含三敎)의 포함론(包含論)의 현대적 해석이다. 자신의 고유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타자도 스스로 온전하게 하는 종교적 영성이 바로 ’풍류 담론‘의 ’포함론‘이다. 포함(包含)은 ‘이미 자체 내에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포함(包涵)의 개념이 아니다. 즉, 포함은 습합 혹은 혼합이 아닌 포월적 상생으로 다양한 종교 사상을 주체적으로 창발하게 하는 해석 체계이다.


3. 일아론은 무교 문화론이 아닌 ‘포함론’을 계승하고 있다!

‘풍류 담론’은 무교 문화론과 ‘덮어놓고 샤머니즘’이라는 풍조에 그 종교적 영성이 가려져 제대로 조명된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을 형성한 무교라는 결정론을 바탕으로 전통-근대의 이분법적 도식에서 기복성, 의타성 등이 강조되는 부정적 기제로 작동하였다. 마찬가지로 ‘풍류 담론’은 “무교=풍류도”라는 무교 문화론에 바탕을 둔 풍류신학으로 인해 왜곡되어 있다.

변선환의 풍류신학에 대한 평가는 미묘하다. 풍류도가 함다위일(含多爲一)의 한국적 혼합 종교라고 평가하지만, 풍류신학이 “한국적 영성인 풍류도를 기독교 영성과 동일시 하며 다원주의 신학의 싹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모두 기본적으로 성취설에 서 있”다고 지적하며 “혼합적 절충주의를 경계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절충주의에 말려들어 갔다”고 비판한다. 필자는 변선환의 이 주장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변선환은 풍류신학에 함의된 습합론의 내재적 원리를 파악하고 그리스도교 중심의 성취설에 불과한 것을 비판한 최초의 신학자이다. 왜냐하면 풍류의 인식체계인 ‘포함론’은 다양한 종교를 조화롭게 발현시키는 종교적 기제이지 혼합주의나 절충주의에 귀착하는 구조와 원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풍류신학이 ‘풍류’로 신학을 하였지만, 대화의 주체인 ‘풍류(=무교)’가 그리스도교의 하위개념으로 형성된 선교신학이기에 그리스도교 중심의 포괄주의적 성취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살펴본 ‘풍류 담론’과 무교 문화론의 종교성은 다음과 같이 차별성, 분별성, 동질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풍류 담론과 무교 문화론]

구분

풍류 담론

무맥 문화론

도맥

한국 종교 전통의 도맥

보편적 종교현상

종교적 특성

능동적 기제

수동적 기제

존재론적 차원

존재 변형한 ‘완전한 인간’

현실 조화/안주를 추구하는 대중

인식론적 차원

포함론(包含論)

습합론(習合論)

실천론적 차원

창조적 소수자

대중의 공동체성

두 맥의 상관관계

선맥에 의해 무맥이 발현

무맥은 선맥을 발현하지 못함

전승 매체

인간

인간

풍류도와의 관계

풍류도 =선맥

풍류도 ≒ 무맥(교)

 

변선환은 포괄주의식 토착화가 아닌 진정한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가 상생하면서 탄생하는 한국 ‘신학’이 곧 세계 ‘신학’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는 토착화신학자의 내면화된 서구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잔재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서구 그리스도교가 저지른 문명적 과오를 폭로하며 회개를 요청하는 문명 비평가로서의 면모도 보인다. 1995년 한 심포지엄에서 그는 이렇게 강조한다. “타 종교와 다른 문화는 기독교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구원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보아야지요. 그러니까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는 주체와 주체와의 만남이 되어야지 주체와 객체의 관점으로 보는 발상은 빨리 깨어져야 합니다”라고 호소한다. 다원적 종교 전통의 세계에서 발화된 ‘일아론은 ‘풍류 담론’을 현대에 계승한 감리교회의 자각적 선언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그의 신학적 진가는 드러난다. ‘풍류 담론’을 계승한 ‘일아론’은 무교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습합 담론이 아니다. 또한 서구적 그리스도교 세계관의 종속 담론은 더욱 아니다. ‘일아론’은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가 배타적이거나 위계적 관계가 아닌 주체와 주체가 만나는 ‘풍류 담론’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4. 변선환의 ‘3대 교회혁신 운동’을 전개하자!

일아론은 과거의 화석화된 담론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소환되어 각성하여야 할 유효한 종교적 담론이다. 필자는 쌍방이 대화의 주체로 포월적 상생하는 몇 가지 토착화 범례를 발굴하여 일아론의 신학적 정당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범례 1] 풍류신학은 일아론이 비판한 성취설을 탈피하여야 한다. 무교 문화론을 바탕으로 한 풍류신학이 ‘풍류 담론’에서 재해석된다면 습합론의 논리적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다. 무교성 은 단지 풍류성의 수용성만이 발현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정점으로 하는 배타적 절충주의에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풍류신학이 ‘풍류 담론’과 대화한다면 선맥의 풍류성과 그리스도교의 영성이 조화를 이루어 민족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갖춘 ‘선맥신학’으로 거듭날 수 있는 예증이 될 것이다.

[범례 2] 민중신학은 일아론이 비판한 한국 종교 전통을 수용하여야 한다. 민중신학은 변선환 에 의해 종교 전통과의 깊은 교감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풍류 담론’과 대화한다면 무교를 차용한 민중의 한(恨)을 해원하는 ‘한의 사제’기능뿐만 아니라 민중을 구원하는 ‘선(僊)의 사제’로서 민중과 동고동락하는 상생의 신학 담론으로 재탄생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범례 3] 일아론은 한국적 신관과 그리스도교의 신관에도 포월적 변혁을 추동한다. 토착화신 학과 민중신학은 그리스도교의 신학화된 신관에 바탕을 둔 신학이었지만, 동학의 신 관념을 ‘지기일원론적(한국적) 범재신론’으로 파악한 신학적 성과들은 그리스도교 신관과 한국적 신관을 변혁하는 새로운 ‘신학’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풍류 담론’이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가 화해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위의 범례에서도 넉넉히 알 수 있다. 만일 이런 발굴 사례가 종교계의 동의를 얻는다면 ‘일아론’은 닫힌 신학 담론이 아니라 한국 종교의 ‘신학’ 담론으로 재활성화되어야 할 신학적 타당성과 그 종교적 정당성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계승자들은 변선환의 종교신학적 주장뿐만이 아니라 부당한 교회권력 과 맞섰던 ‘신앙의 순수성과 지성의 정직성과 실천의 결단성’을 배워야 한다. 이에 필자는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의 경계인으로서 변선환이 “타종교와 신학”에서 강조한 세 가지 과제를 ‘3대 교회 혁신운동’이라고 명명하며 실천적 종교운동으로 계승할 것을 제안한다.

 

[변선환의 ‘3대 교회 혁신운동’ 실천적 과제]

첫째, 한국신학은 토착 종교에 대한 서구적 편견에서부터 한국교회를 탈출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둘째, 한국신학은 우상화한 교회지상주의에서 탈출시키는 우상타파(Iconoclasm)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셋째, 한국교회는 서구 신학의 최후의 신학적 난점인 그리스도론의 배타적 절대성에서 탈출시키는 지혜를 타종교의 신학에서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생명과학과 로봇 기술의 개발로 인간 생명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의를 요청하는 과학적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난무하는 지구촌 합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로 인해 복고풍의 ‘풍류 담론’과 36년 전의 종교신학적 과제를 오늘 다시 소환한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시선으로 비춰질까 우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종교 전통의 맥락을 형성하는 ‘풍류 담론’의 종교적 영성과 한국교회의 영성이 ‘인간’ 그 자체에서 ‘접화군생’하여 ‘풍류 담론’의 다섯 가지 종교적 속성이 발현하는 역사적 현실을 ‘지금, 여기에서’ 체감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의 자기 혁신이자 한국 종교마저 상호변혁을 추동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한국 종교 전통을 존중하는 ‘교회다운 교회’로 거듭나 한국 종교 역사를 빛냄과 동시에 몰락하는 서구 교회마저 일깨우는 세계 속의 ‘교회’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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