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환 전도사
(전도사, 독일 함부르크 감리교회 담임전도사, 2021 농도한마당 실무자)

2021년 10월, 내게는 마음 깊게 새겨진 하루가 있다. 푸르고 맑았던 아산 송악의 하늘, 그 아래 배추와 양념 상자를 나르는 젊은이들, 그리고 절임배추 사이사이를 채우시는 어머니들의 웃음소리, 점심에는 야들하게 삶아진 돼지고기 수육과 갓 무친 김치의 알싸한 조화, 그리고 마지막에는 잘 포장된 배추김치를 싣고 떠나는 트럭의 뒷모습까지. 1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날 농도한마당에서 있었던 땀 흘림의 기억이 여전히 고맙고 기특하다. 이를 통해 김장은 우리 고유의 정서에 꼭 맞는 연례적인 잔치요 화합의 장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지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 가족 잘 먹자고 하는 김장이 아니라, 다른 이들 잘 먹이고 싶어 하는 김장이라는 점이 조금 다르다.

올해부터 해외에 있는 목회지에 나와 있다 보니, 정말이지 김치 생각이 간절하다. 이 간절함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 냉장고를 ‘내 것’처럼 만들어주는 은인이 바로 김치였다는 사실이다. 김치 하나 없는 냉장고는 정말이지 참 정이 붙질 않는다. 먹을 만한 김치가 냉장고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각보다 큰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밥 지을 쌀이 있고, 얹어먹을 맛있는 김치가 있음을 알고 있다면, 그 의식이 하루 생계를 고민해야하는 두려움을 몰아내게 해준다. 김장 김치의 시원하고 아삭한 맛이 신기하게도 나의 먼 고향과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물론 그 맛이야 본토를 따라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김치가 귀한 이 곳 해외에서는 김치는 단순한 반찬 그 이상의 반찬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김장을 하는 가구의 비율이 약 3퍼센트 씩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회는 이미 개인주의와 상업주의의 물결 속에서 김치를 해먹는 것보다 김치를 사먹는 모습을 보는 일이 더 흔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김치를 사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결이 끊어진 사회, 자본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에서, 미처 관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제대로 된 안전망 하나 없이 살아가는 이들은 점차 늘어간다. 독거 어르신과 노숙인들, 장애인들은 그 낭떠러지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다. 지역아동센터와 사회복지시설의 돌봄 안에 있는 이들도 이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배추 값이 폭등했다는 올해에도 가장 좋은 김치를 베풀며 그들이 덜 외롭길 바라는 농도한마당의 마음이 귀하게 느껴진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도 농도한마당은 힘이 되어준다. 친환경으로 먹거리를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사역하시는 분들에게 계획생산을 가능하게 하여, 작은 수준이나마 기초적인 생계비를 안정적으로 드릴 수 있게 된다. 요즘 같은 기후위기 시대 속에서 위태로운 농민들은 이러한 ‘약속’에 기대어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된다. 농도한마당이 그 주제로 ‘상생’을 내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상생의 또 다른 주체는 바로 ‘도시 교회’이다. 도시 교회의 후원이 없이는 이 사역을 이끌어 갈 수 없다. 그 손길을 이어받아 벌써 ‘농도한마당’ 사역이 10회 차를 맞이한다. 감리교회가 주관하는 의미 깊은 가을 나눔의 장이라 할만하다. 겨울 성탄절 어간이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연탄을 지원하는 행사가 떠오른다. 이제 가을에는, 바로 ‘농도한마당’을 통해 김장김치를 나누는 이 행사가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