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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 십자가’로 활짝 피어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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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0월 29일 (토) 20:59:14
최종편집 : 2022년 10월 30일 (일) 04:29:39 [조회수 : 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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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아득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지난 여름 캅카즈 3국 여행에 대한 기억이 그렇다.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기록하지 않으면 증발되는 것은 순간적이다. 스스로 기록의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기독교사상> 편집부에 연락해 여행기를 쓰겠다고 제안하였다. 2019년, 그리스 여행 후 원고청탁을 받은 일이 있기에 엄두를 낸 것이다. 그때 ‘그리스를 간(看)보다’라는 글을 냈다. 다행히 ‘처음 교회를 찾아서’(10월, 11월호)란 제목으로 두 차례 연재할 수 있었다.  

  캅카즈 3국은 아르메니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젠을 말한다. 독일여행사(SKR)가 기획한 대로 따랐는데, 내 의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아르메니아사도교회와 조지아정교회의 주요 교회와 수도원 방문이 여행의 주요 프로그램이었다. 그 외에 달리 여행할만한 곳도 없기에 순례 여행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목적한 대로 두 나라에서 기대한 만큼 십자가를 구했고, 나름 컬렉션을 구비할 수 있었다. 다만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국가여서 아예 기대를 접었다. 

  마지막 일정은 아제르바이잔 북부지역에 위치한 유명한 실크로드 도시 셰키였다. 이곳은 예로부터 발칸반도의 알바니아와 구분하기 위해 캅카즈 알바니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날 오전에 현지인 가이드는 알바니아교회를 방문한다고 했다. 이미 여행 일정에서 읽었지만 내내 이슬람의 모스크를 지칭하는 말로 오해하였다. 이미 해변의 모스크, 동굴 속 모스크 등 여러 사원을 방문하였고, 아제르바이잔에 그리스도교회가 있을 턱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캅카즈 지역의 이웃 두 그리스도교 왕국처럼 일찍이 캅카즈 알바니아 지역에도 복음이 전파되었고, 역사적인 교회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지배와 함께 더 이상 신앙공동체를 지속하지 못하였고, 단지 관광상품으로 남아 박물관으로 바뀐 예배당들은 지하에 있는 많은 유골들과 함께 전시되어 역사의 유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놀라운 것은 알바니아교회 전부가 박물과 유물로만 현존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제르바이잔 알바니안-우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유일무이한 교회의 이름은 ‘성 엘리제 교회 요타리’(Church of St. Elisey JOTARI)였다. 오래전, 알바니아계 민족들은 이미 이슬람화되었는데, 소수 우디 족만 예외였다. 잔류한 그들은 땅과 언어, 알바니아인 자의식의 보존에 성공하였는데, 지금까지 고유한 달력과 십자가를 지켜온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그리스도인은 이곳에만 산다고 하였다. 단단한 돌무덤 같은 예배당은 동굴 속 아지트처럼 평화로웠다. 주위 나무들은 천년을 헤아리는 고목의 숲이었다. 2016년에는 로마가톨릭 교황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그날 교회를 안내한 요타리 신앙공동체 신자 디미트리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당신은 아제르바이잔 사람입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는 당연하다는 듯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요타리 공동체의 십자가는 십자가 사방 끝에 백합이 핀 모습이다. 새로운 십자가를 알게 된 기쁨만으로도 아제르바이잔에 온 의미가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어와 알바니아어 그리고 영어 등 세 언어로 기록한 홍보책자 <캅카즈 알바니아 그리스도교>를 구입하였다.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변변치 않은 기념품들조차 마치 가장 소중한 보물을 발견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독일에서 목회할 때 초창기 한인교회들이 연합수양회를 열면서 당시 독일 크레펠트에 살던 프랑스 출신 개신교인들을 초대한 일이 있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개신교 박해를 피해 독일로 이주한 위그노(Huguenot)였다. 대개 상공업 계열에서 일하는 위그노처럼,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온 교우들은 같은 피난민의 심정으로 그들에게 듣고자 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신앙을 유지하였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하였습니까?” 이웃 나라 독일로 피난 온 프랑스인 개신교인들은 오래도록 프랑스어 예배를 유지하였는데, 1806-7년경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로이센을 점령하자 이에 항의하여 독일어로 바꾸었다고 한다. 

  캅카즈 알바니아의 외로운 그리스도인이든, 독일로 망명한 프랑스 위그노이든, 경제적으로 피난한 한인 그리스도인이든 모두 같은 염려를 하며 기도하였을 것이다. “주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505주년을 맞은 종교개혁주일이다. 역사와 현실에서 고난으로 이어온 교회사의 경험은 과연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어떤 경우는 다만 전통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현상을 지키는 일만으로도, 피 묻은 개혁에 버금가는 아주 중차대한 일이란 심증이 들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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