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다시 읽은 벌거벗은 임금님’
박효숙  |  hyosook0510@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2년 10월 24일 (월) 20:29:35 [조회수 : 3129]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읽은 동화 중에 '벌거벗은 임금님(Emperor's New Clothes)’이 있습니다.

“새 옷을 입고 뽐내기를 좋아하는 임금이 있었다. 이 임금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세계 제일의 옷감으로 만든 옷이라는 꼬임에 속아 그 옷을 입고, 거리를 행차한다. 그러나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리에서 한 어린이가 그 모습을 보고, “벌거벗은 임금님!” 하고 소리를 친다. 거리에 있던 백성들과 임금님이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진짜 옷을 입지 않았다는 진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행진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줄거리의 안데르센 동화입니다.

요즘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처럼 여전히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시대, 말하면 안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현재 중년기(50세 이상)에 있는 부모 세대는 어린시절, 가정마다 가족규칙들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말하지 않기, 느끼지 않기, 믿지 않기 규칙’ 이 그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말을 시킬 때만 해야 한다.”, ”어른말을 잘 들어야 한다.”, “어른에게 눈을 똑바로 뜨고 말하고, 질문을 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절대로 밖에 나가서 말하면 안된다. 누구든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지켜야할 철칙처럼 믿고 자랐습니다. 이는 역기능 가정의 규칙입니다.

이런 식의 양육방식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파괴하고, 결국은 수치심을 갖게 합니다. 

마음 깊숙이 수치심이 내면화되면, 심리적인 무감각 상태가 됩니다. 

생후, 초기경험으로 형성된 수치심은 살아가면서 모든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수치심은 인간 내면의 상처로 자리잡습니다. 수치심은 강박적 혹은 중독적인 삶을 살도록 불을 붙입니다.

당시, 대부분 가정의 벌을 주는 방식은, 실수를 저지른 아이에 대해, 야단치고, 창피를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고 놀던 친구들 앞에서, 혹은 형제자매 앞에서 매를 맞고, 무릎 꿇고, 손들고 벌을 섰습니다. 이런 방식의 교육은 자존감을 파괴하고, 수치심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병든 방식(역기능)의 가족규칙에서 나와서 하나씩 질문해 나가며, 변화해야 합니다.

가족규칙은 가정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본을 보이고, 그 뒷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성장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너무나 분주하고 바빠서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상처 나고, 슬픈지를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말하고, 제대로 느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믿는 것처럼 상대의 가치 또한 믿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 감정을 읽을 수 있을 때 감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동기 내내 끊임없이 부모(주양육자)의 돌봄을 필요로 합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부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상처가 됩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어린 아이는 거짓자기를 발달시키며, 자신의 내면에 ’가치 없는 아이’라는 문패를 달아버립니다.

거짓자기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쓰는 가면입니다. 가면은 진짜 자기가 고통과 내면의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거짓자기로 살다 보면, 참자기와의 접촉이 끊어지고, 참자기는 마비되어 버립니다. 

참자기가 마비되면, 무가치감과 허망함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허망함이 끊임없이 새끼를 치고, 불행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거짓자기에 의한 자신의 은폐는 자존감의 발달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어린 시절, 이런 환경 자란 아이들은 성인아이로 자랍니다. 성인아이가 다시 성인아이를 양육하는 패턴이 은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이를 멈추게 하는 사명은 먼저 깨달은 자의 몫이고, 축복입니다.

책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벌거벗은 임금님’을 들고, 오랜만에 창가에 앉아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말에 속아 자신의 벌거벗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벌거벗은 임금님’은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키워보았습니다.

창문 밖의 가을 하늘이 참으로 맑고도 푸르릅니다. 

박효숙목사/ 청암크리스챤아카데미

박효숙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4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