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154년 역사의 세계적 매운맛 타바스코 핫소스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2년 10월 18일 (화) 22:12:06 [조회수 : 3154]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피자 배달을 시키면 1회용 핫소스로 딸려오는 타바스코소스를 먹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톡 쏘는 식초의 향과 새콤함, 그리고 고추의 매콤한 맛이 특징인 타바스코 소스는 기름지거나 느끼한 음식에 첨가하면 아주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일본이나 서양에서는 생굴이나 훈제굴을 먹을 때 뿌려먹는다. 

핫소스의 이름으로 유명한 타바스코는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추의 이름이기도 하고 멕시코 타바스코주의 지명이기도 하다. 타바스코 고추의 매운맛은 3만~5만 스코빌지수로 청양고추보다 3배 정도 더 맵고 자극적이다. 타바스코 소스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을까? 

타바스코소스를 만든 사람은 에드먼드 매킬러니(Edmund Mc.Ilhenny, 1815~1890)이다. 그는 미국 메릴랜드 주 하거스타운(Hagerstown)에서 태어났고 1840년 뉴올리언스 루이지애나주로 이주했다. 루이지애나에서 잘 나가는 은행원이었던 그는 1859년 6월 30일 농장을 운영하는 마리 엘리사 에버리란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며 가정을 이루게 된다. 부인의 집안이 아주 부자였다. 그러던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메킬러니와 에버리는 안전을 위해 가족을 모두 데리고 텍사스로 피난을 갔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다시 루이지애나로 돌아온 매킬러니는 아내의 농장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을 보게 되었다. 장인어른의 사탕수수 농장이 있는 에버리 섬에는 암염 광산이 있었는데 이곳도 역시 폐허가 되어 있었다. 매킬러니는 은행원으로 다시 재취업하려 했지만, 이미 뉴올리언스는 다 망가졌고 자기 친구도 인맥도 다 떠나 버렸다. 

결국 아내와 함께 농장을 가꾸며 살다가 우연한 기회로 타바스코 고추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1868년 타바스코 고추 열매를 최초로 수확한 뒤 그 매운맛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매킬레니는 타바스코 고추를 이용하여 싱거운 음식에 곁들어 먹기 좋은 소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에드먼드는 장인과 장모가 소유한 에이버리 섬에서 핫소스 생산 공장을 설립하고 1869년 소스 658병을 생산했다. 타바스코 고추의 씨앗과 고추소스레시피를 그에게 전해준 이는 마운셀 화이트(Maunsel White)라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사업가라고 알려져 있다. 

타바스코 소스에는 타바스코 고추, 에버리 아일랜드산 소금, 증류식초 이렇게 3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 매킬러니의 농장에 있던 뉴올리언스의 에버리 아일랜드는 암염지대이기 때문에 소금이 특산물로 유명한데 타바스코 소스에는 이 암염만 사용되었다. 게다가 에버리 섬에는 사탕수수가 잘 자랐기 때문에 사탕수수로 만든 식초 또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잘 익은 타바스코 고추를 잘 빻은 뒤, 에버리 아일랜드 소금과 함께 참나무통에 넣고 그 위에 소금을 덮어서 한달간 숙성하고 마지막으로 증류식초를 섞어서 완성했다. 이후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 숙성기간을 조절하다 보니 3년의 숙성기간으로 세팅되어 지금까지도 만들어지고 있다. 3년간 숙성시키면 고추장같은 질감의 페이스트가 만들어지고, 이 페이스트를 식초에 넣어 28일간의 숙성기간을 거치면 우리가 접하는 타바스코 소스가 된다. 붉은 빛의 톡쏘는 맵고 새콤한 향과 타바스코 고추 특유의 향과 맛을 내는 비법은 에버리 섬의 암염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소스를 만든 매킬레니는 아내의 농장 이름이었던 프티 앙스(Petit Ance)에서 이름을 따서 프티 앙스 소스라 이름 붙였다. 이후 멕시코 원주민 언어로 “뜨겁고 온화한 토양”을 의미하는 타바스코(Tabasco)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이후 1870년 메킬러니는 타바스코 소스에 대한 특허 출원을 했다. 초기에는 뉴올리언스 레스토랑에서 주로 사용되더니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미국 전체로 유통망이 확장됐고 1872년에는 유럽시장 진출을 위해 런던에 사무실을 개설했다. 1890년 매킬레니가 세상을 떠나자 장남인 존 매킬러니가 운영을 하다가 차남인 에드워드 에버리 매킬러니가 회사를 맡게 된다. 그는 회사의 이름을 매킬러니 컴퍼니로 바꾸고 대량생산을 위한 현대화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토기에서 이 핫소스를 숙성했는데 위스키 제조사인 잭 다니엘스와 계약을 맺고 잭다니엘스의 오크통에서 타바스코 핫소스를 숙성시켰다. 또 레스토랑들과 계약을 하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타바스코 핫소스 한 병씩 두게 만든 것이다. 이때의 세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때 연간 2만병씩 팔던 타바스코는 아들은 연간 100만병씩 판다. 에드워드가 타바스코를 잘 성장시켜 놓고 1949년에 사망한 후에 사업은 에드워드의 조카인 월터 매킬러니에게 넘어갔다. 

윌터 매킬러니는 미국 해병대로 1941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그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전쟁영웅이었다. 1959년 해병대 준장으로 전역후 매킬러니 컴퍼니의 경영을 맡은 그는 전쟁영웅으로서의 인기와 본인의 군대 인맥을 총동원해서 타바스코를 전 세계에 퍼트렸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타바스코가 퍼진 것도 이때부터이다. 수작업을 벗어난 대량생산체제를 갖추면서 타바스코소스는 글로벌한 소스로 자리잡았다. 월터는 1985년에 사망했는데 당시 타바스코는 연간 6천만병씩 팔려나가면서 매년 5천만 달러의 수익을 내는 대기업이 된다. 그로 인해 미군의 전투식량에 타바스코 소스가 포함되게 되었다. 그렇게 미 육군의 전쟁식량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도 우주식량으로 검토하게 되었고 현재, 국제우주정거장, 우주왕복선 등에 우주식량으로 보급될 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1에도 항상 이 타바스코 소스가 실려 있다고 한다. 

타바스코 소스는 지금까지 매킬러니 가문에 의해서 에버리 아일랜드에서 생산되고 있다. 삼림, 초원, 습지, 늪으로 구성된 에어버리 섬에서 고추의 생장부터 숙성과 발효, 병에 담는 모든 과정이 이뤄지기에 기후와 환경은 그만큼 중요하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이 밀려오면서 습지가 파괴돼, 타바스코 소스의 생산이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오뚜기에서 수입을 하기에 마트에서 구입은 가능하지만 155ml에 7000원 정도로 가격이 무척 비싸다. 코스트코에서는 훨씬 저렴하게 구할수 있다. 인터넷쇼핑으로 구입하면 같은 가격에 355ml짜리를 구입할 수 있으니 참고바란다. 

 

임석한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43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