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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탄생한 세계적 명품소스 이금기(李錦記) 굴소스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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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0월 12일 (수) 01:43:17 [조회수 : 3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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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중국의 대표적인 고추소스인 라오깐마 소스를 소개했다. 오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소스 하나를 더 알려드리고자 한다. 중국소스지만 한국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굴소스이다. 굴소스란 굴에서 나오는 진한 국물과 굴을 곱게 갈아서 소금, 간장, 전분, 감미료 등과 혼합하여 걸쭉하게 만들고 아미노캐러멜로 색을 입한 중국 광동식 소스를 말한다. 달콤짭짤한 맛에 특유의 감칠맛이 나는 굴소스는 중국요리 전반에, 그리고 베트남, 캄보디아 요리에도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고기나 잡채, 버섯복음, 멸치복음 등 다양한 볶음 요리에 사용할 뿐 아니라 두부조림이나 떡볶이, 칼국수, 어묵탕에도 쓰인다. 나는 복음밥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한다.

마트에 가서 굴소스를 사려고 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스 회사마다 제품들이 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굴소스 중에 원조는 ‘이금기 굴소스’이다. 굴소스 뿐 아니라 마파두부에 넣는 ‘두반장’, 쓰촨식 볶음요리에 좋은 ‘마늘콩소스’, 쌀국수에 넣는 ‘해선장’, 고기를 재울 때 쓰는 ‘매실소스’, 치킨파우더, 검은콩소스 등 이금기라는 브랜드의 제품으로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 현재 이금기그룹은 중국의 대표적인 대형 소스기업이지만. 그 시작은 굴소스에서 시작되었다. 전 세계 굴소스 시장의 80-90%를 점유하고 있는 이금기 굴소스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

이 굴소스가 처음 세상에 탄생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134년 전인 1888년이다. 중국 광둥성 항구도시 주하이(珠海)시 난수이마을에서 살던 이금상(李錦裳, 리캄성)씨가 처음 만들었다. 굴소스는 우리나라 쫄면처럼 실수로 탄생되었다. 

이금상씨가 살던 주하이(珠海)시 난수이마을은 우리나라로 치면 남해나 통영같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굴이 풍부했다. 그는 어민들을 상대로 작은 찻집을 운영했다. 당시 중국의 찻집은 요리도 같이 팔았다. 이 찻집의 주 메뉴는 굴요리였다. 어느 날 이금상은 굴을 넣고 국을 끓이다가 너무 바쁜 나머지 아궁이에 국을 올려놓은 걸 까맣게 잊고 있다가 ‘아차’ 싶어 달려갔다.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굴은 타지는 않았지만 이미 형체도 없이 걸쭉한 갈색 액기스로 졸아져 있었다. 이걸 버릴까 하다가 그냥 맛이나 보자하고 긁어서 맛을 보는데 짭짤하고, 적당히 달고, 진한 감칠맛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향도 그윽하고 좋았다 굴을 졸이면 굴의 감칠맛이 농축되어 깊은 감칠맛과 뛰어난 향이 나는 것을 알게 된 이금상은 곧장 이것을 본인 음식에 넣어 활용해보았다. 맛이 괜찮았다. 그는 “이렇게 굴로 소스를 만들어 사용해 봐야겠다.” 생각하고 제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금기(李錦記)굴소스‘로 이름을 붙였다. 이금상이라는 이름의 이금(李錦) 뒤에 상표를 뜻하는 19세기 광동어 접미사인 기(記)를 붙인 것이다. 즉, '샘표' 등에 쓰이는 오늘날의 -표(標)와 유사한 용법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금기 굴소스를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굴소스가 주는 감칠맛이 사람들을 끌었던 것이다. 이금상은 1902년 마카오로 이주해 본격적인 생산에 뛰어든다. 처음 판매할 때는 특별한 포장 없이 판매를 했기에 손님들이 병이나 통을 들고 찾아왔다. 이후 아들인 이조등과 이조남이 굴소스를 포장해 팔면서 1920년대에는 해외로 시장을 넓히게 된다. 1932년 다시 근거지를 홍콩으로 옮기며 전 세계 화교들을 대상으로 판매에 나섰는데 대박이 났다. 광동성 출신 화교들이 정착한 곳의 식료품 매장마다 이금기 소스가 쫙 깔렸다. 특히 19세기에 미국 캘리포니아와 호주 빅토리아에서 금광이 대거 발견되면서 광동성 출신 노동자들이 이주를 많이 했는데 이게 기회가 되었다. 그 지역에 광동식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수요가 더 늘어났고 이금기굴소스가 엄청 잘 팔리다 보니까 중국 남부와 마카오 매출보다 오히려 북미, 호주 매출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1930년대 이금기굴소스의 아이콘은 ‘보트보이와 보트레이디’이다. 작은 나무배에 엄마와 아들이 큰 굴을 싣고 노를 젓는 모습의 그림이다. 지금도 굴함량 95%인 프리미엄 굴소스의 라벨에는 ‘보트보이와 보트레이디’ 그림이 붙어있다. 후에 프리미엄 굴소스보다 저렴한 굴소스로 굴햠량 80%인 팬더 굴소스가 탄생했는데 팬더굴소스의 탄생에도 사연이 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화해 모드가 조성되었다, 그때 중국이 닉슨대통령에게 팬더 한 쌍을 선물했는데 이것이 화제가 되어 팬더 열풍이 불었다. 이에 이금기는 이 열풍을 놓치지 않았다. 미국인들에게 좀 더 익숙한 중국의 이미지인 판다를 라벨에 넣어 출시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환영받는 베스트셀러제품이 되었다.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이금기의 매출은 약 15배가 증가한다. 그 이후 2000년대까지 3년마다 두 배씩 증가했다. 엄청난 성장속도였다.

이금기그룹은 2022년 올해 창업 134주년을 맞았다. 지금은 중식소스 및 중국 생약 건강 제품으로 특화된 다국적 기업이 되었다. 중식소스는 중국 신후히, 황후, 홍콩, 말레이시아,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 전세계에 5개 생산 기지를 운영하면서 전 세계 100여 개국에 220여 종의 소스를 수출하고 하루 평균 판매량이 100만 병에 이른다. 

이 회사는 사람(人) 열정(情) 그리고 맛(美)을 중시하는 정신과 기업문화가 바탕이 되어 성공했다. 이 회사의 모토중 하나가 “100-1=0”이다. ‘100개 중 하나의 불량품이 나오더라도 먹거리는 끝장’이라는 뜻이다. 실수에서 탄생하고 시작된 이금기 굴소스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품질과 맛에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바람직한 자세라고 여겨진다. 

임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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