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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를 준비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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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0월 09일 (일) 02:54:49 [조회수 :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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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1장 17-23절

마지막 때를 준비하라

 

가.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17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 본문은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하며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말씀이다. 여기서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은 베드로가 전한 말씀에 잘 기록되어 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며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3:3-4)라는 말씀을 참조하라.

* 유다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공유하며 마지막 때에 대한 종말신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물론 시한부 종말론자의 주장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주의 종말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성도는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라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이 세상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 죽음으로 이 세상의 삶은 끝나지만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9:27).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영생을 준비해야 한다.

 

나. 종말론적 긴급성의 부재가 문제다.

8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 성도는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한다. 종말론에 대하여 조롱하는 이들이 “종말은 없다.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말은 거짓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아주 위험하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즐기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사두개인들의 현세주의가 대표적이다.

* 유다는 종말론적 긴급성이 부재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고발하였다.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18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19절). 종말에 대한 믿음이 있더라도 긴급성이 부재하면 안일주의로 인하여 죄악에 빠지게 된다.

* 종말의 날은 주님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날은 도둑 같이 임한다고 하였다(벧후3:10). 종말론적 긴급성을 가지고 마지막 때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3:10)라고 하셨다.

 

다.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

9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하려면 삶의 집을 잘 건축해야 한다. 여기서 ‘세우다’(에포이코도메오)는 ‘무엇 위에 건축하다’라는 뜻이다. 삶의 집을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야 안전하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마7:24-25)라고 하신 비유를 참조하라.

* 인생의 집을 잘 지으려면 거룩한 믿음 위에 세워야 한다. 본문에서 ‘거룩한’(하기오스, 최상급)은 신앙의 목표가 아주 높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고 하셨다. 죤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사상을 참조하라.

* 이를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여기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라고 기도하는 주님의 본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다’(프로슈코마이)는 ‘간구’(데에시스)와 달리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 것을 말한다.

 

라. 최선의 믿음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다.

21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 구원의 길은 성도가 거룩한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것이다. 공로나 선행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능하다. 다만 하나님의 은총은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은총으로 인하여 믿음으로”(엡2:8)를 참조하라.

* 구원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마19:24). 부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능하다.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은총으로 받아주신다.

* 하나님의 긍휼이 구원의 보장이다. 따라서 우리도 연약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이에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이 여기라”(22절)고 하였고,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23절)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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