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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씻은 세족식, “긍휼의 마음으로 선교지 섬기겠습니다”조지아 수도원 순례하며 세계여선교사대회 폐회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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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0월 08일 (토) 05:29:55
최종편집 : 2022년 10월 15일 (토) 06:56:27 [조회수 :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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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반츠민다(카즈벡)의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조지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감리교 세계여선교사대회의 한 축은 조지아의 수도원을 순례하는 여정이었다. 대회 둘 째날은 온전히 수도원 순례만 진행하고 셋째 날 부터 넷째 날 까지는 낮에 순례 하고 저녁에 부흥집회와 기도회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여선교사들이 찾은 수도원은 보드베 수도원, 중세의 광야수도원인 데비드 가라제, 올드 트빌리시, 킹스메모리얼, 즈바리 수도원, 스벹치호벨리 대성당, 잔발리 호숫가의 아나누리 성채, 구다우리 전망대, 카즈베기 수도원, 게르게티 사메바 수도원, 메데키교회 등 유서 깊은 곳이었다. (하단 순례기 참조)

 

   
▲ 두번째 부흥집회 / 곽주환 목사(베다니교회)

셋 째날 저녁의 부흥집회에서 곽주환 목사(베다니교회)는 ‘오늘도 내일도 가는 길(누가복음 13장 33절)’을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눈으로 보이는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자”고 독려했다.

곽목사가 전한 ‘눈으로 보이는 복음’이란 ‘예수님의 긍휼을 실천하는 삶’을 이르는 말이었다. 곽목사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 예수님이 가진 여러 마음 중에서 적어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 한가지는 꼭 본받자”고 했다. 선교지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행한 일 한가지가 백가지 말로 전한 복음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준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곽목사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상대를 움직이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이끌어 낸 자신의 여러 경험을 들려주고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성도와 현지인을 대할 때 선교지에서 내가 예수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비로소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이라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복음을 눈으로 보여주는 선교가 되게 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헤롯의 위협 속에서도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시듯 예수님께는 분명한 방향이 있으셨다”며 “우리도 위기를 당할 때, 너무나도 속이 상할 때,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우리의 길을 가자”고 당부했다.

 

   
▲ 세족식에 앞서 말씀을 전하는 이천휘 세선협회장

대회 마지막 날, 수도원 순례를 마친 대회 참석자들은 세족식과 성찬식을 겸한 폐회예배를 드렸다. 폐회예배에서 세선협 회장인 이천휘 목사는 ‘이와 같이 행하라’를 제목으로 설교를 전하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처럼 서번트 리더십으로 선교지를 섬길 것”을 당부했다.

이천휘 목사는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다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나 예수님은 대야에 물을 떠 무릎을 끓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섬김의 도를 말로 하지 않으시고 행동으로 하셨다”며 “이 세족식이 여러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설교가 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 감독회장님부터 우리 모두 여러분의 발을 씻길 것이다. 선교사 여러분들을 우리가 섬기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고, 선교현장에 여러분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뒤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라며 용기를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 이철 감독회장이 선교사의 발을 씻기고 있다

“선교지에서 지치고 힘든 주의 종들의 발입니다. 이들의 발걸음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겪었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 했고, 험난한 시간을 보낸 상처받은 발들입니다. 친구와 형제, 이웃들에게 배신과 억울함을 겪기도 했으며, 선교 현장에서 지치고 곤고한 발들입니다”

세족식은 발을 씻기는 의식이었으나 씻는 자나 씻김을 당하는 자나 눈물을 씻는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철 감독회장을 비롯해 여목회자들과 사모 등 섬김이들은 존경하는 마음과 위로, 그리고 격려를 담아 진지하게 세족식에 임해 여선교사들의 발을 씻어 주었고, 섬기는 자리에만 있던 여선교사들은 발을 씻기고 새 양말을 갈아 신기우는 섬김을 받는 순간을 감격해 했다. 세족식 내내 많은 여선교사들이 울음을 터트려 선교지가 얼마나 험난하고 외로웠을지 짐작해 볼 뿐이었다.

감동적인 세족식 후에 이철 감독회장이 성찬식을 집례했다. 참례자들은 성찬을 받아 들이며 성령의 임재를 구했고 이천휘 세선협 회장의 축도로 제7회 세계여선교사대회가 폐회됐다.

 

   
▲ 간증

대회에 참석해 체험한 여선교사들의 간증이 이어졌다.

“선교지에 나온 지 27년 됐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정말 큰 열매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정작 본인이 병들어 가는 것을 몰랐습니다. 당뇨, 고혈압, 당뇨망막을 앓고 있습니다. 파송교회 담임이 4번 바뀌었는데 이제 그만 나가라고 합니다. 가난한 어린애들 먹이는 사역을 하고 있는데, 지금 느낌은 커다란 항아리에 물을 붓지만 밑이 빠진 느낌입니다. 그래서 여기 오기 두 달 전부터 공황장애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이곳에 왔습니다.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땅속에서 고개를 든 느낌입니다. 선교지에 나 혼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사역하는 동역자들을 만나 보니 ‘나만 이러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돌아간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것 같습니다. 제겐 정말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KJM(말레이시아)

“잘 먹고 잘 지내고 마음을 나눈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늘 퍼주는 자리에 있다가 받는 자리에 있으니 쑥스럽기도 합니다.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섬길 수 있는 남편이 되게 하겠습니다. 그 말은 내가 섬기고 용기를 주고 남편을 긍휼히 여기는 아내가 되겠다는 말입니다. 남편을 긍휼히 여기지 못하며 어떻게 선교지를 긍휼히 여기겠습니까? 복음을 삶으로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씀 외우라고 하지 않고 내 삶으로 말씀이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의 손, 주님의 발,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 YMH(탄자니아)

“이 시간이 내겐 보너스 같았습니다. 올해가 참 특별한 해였는데, 4월 부활새벽에 어머니가 임종하셨고, 3개월 후 시아버지께서 코로나로 돌아가셨습니다. 코로나로 묶여있다가 두 번이나 임종을 지켜볼 수 있어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 충청연회가 태국에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임학순 목사님이 오셔서 죽음에대한 강의를 하셨습니다. 참 뜬금없다했는데, 어머니와 시아버지의 임종을 통해 오히려 기쁨이 되게 하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우리를 세워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또 조지아로 불러 주어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팽 선교사님이 제 어머니 같았습니다. 제 어머니가 분홍색 티를 참 좋아하셨거든요. 그런데 팽선교사님이 분홍색 티를 입고 계신거였습니다. 어머님이 네팔에 오신다 했는데 못 오시고 가셨습니다. 강사님들 설교가 대부분 짧았지만 평생의 엑기스로 말씀하시는구나, 열심히 살아라, 주님 옆에 머무르라,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신 것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 JMH(네팔)

“조지아가 첨엔 미국인 줄 알았습니다. 미국 한번 가보자 했는데 지도를 보니 터키 옆이었습니다. 와서 느낀 것은, 매 순간 은혜가 되더란 것입니다. 진행하시는 분들이 준비를 너무 잘해주셔서 말씀말씀 시간시간 너무 은혜가 되었습니다. 제2의 선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나이가 있고 해서 정말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락다운이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조언을 받다 보니 힘이 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왜 네가 하려 하느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전해 주신 말씀에 힐링이 됐고 하나님이 주신 힘을 받았습니다. 이영태 목사님이 섬겨주시는 모습에도 감동받았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대회였습니다. 받은 힘과 섬김, 받은 사랑의 발로 선교지로 돌아가서 복음을 알리는데 이 한몸 충성하겠습니다.” - CIS(필리핀)

“대회에 무슨 선한 것이 나올까 하는 마음에 그냥 여러분 얼굴을 보러왔습니다. 그런데 첫 시간부터 무너졌습니다. 선교사들에게 너무 필요한 말씀을 전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이 70-80%가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갱년기가 와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누군 병원을 세웠네 누군 학교를 세웠네 해서 주눅이 잔뜩 들었는데, 자기가 맡은 그것만 열심히 하라는 겁니다. 유명해지지 말라는 겁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랑하라 긍휼히 여겨라.. 이 말씀 들으며 회개했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며 다시 주님 복음 들고 나가겠습니다.” - LS( )

“사실 기대 안 하고 왔어요. 그런데 첫 시간부터 눈물이 나더군요. 따로 상담도 받고 해서 감사했습니다. 시간시간 너무 감동이 되었습니다. 내가 15년 동안 달려온 것 하나님 다 알고 계신 것 확인하고 나만 그런 거 아니고 동질감 느껴진 것이 너무 큰 위로가 됐습니다. 사랑과 긍휼, 딱 기억에 남습니다. 막 퍼주면서도 내가 내 마음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말씀 들으며 울컥울컥 했습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버스타고 이동하면서도 그 말씀이 묵상이 되고 계속 울컥울컥해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찌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 LSO(스리랑카)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는데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내 가진 옷도 핸드폰도 모두 중고이고, 매일 얻어 입고 살았는데 어제 새것을 받아 기뻤습니다. 오늘 노래 잘 불렀다고 100불을 주셨습니다. 여기와서 완전 수지맞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KHS(네팔)

“룸메이트를 지정하라고 했는데 난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와 방을 쓸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왔어요. 방에 와보니 나랑 나이가 비슷한 분이었고 고향도 같았습니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첫날 기도하는데 막 눈물이 나더라구요. 아 하나님 이거였군요. 이것을 모르고 살았군요. 긍휼히 여기라고 하셨는데..., 너무 눈물이 나고 기뻤어요. 이 마음을 품고 돌아갑니다” - HSK(케냐)

“대회에 처음 참석했습니다. 쉼과 영성의 기대를 가지고 왔습니다. 강사 목사님이 ‘더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한 말씀에 은혜 받았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열심히 하는 것이고 잘못하는 것은 쉬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죄책감 생기는 저인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들으며 ‘내가 하려는 마음’을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아야겠습니다. 세족식이 너무 은혜였습니다. 사모님이 수고했다고 안아 주시는데 참 따듯했습니다.” -  UM(칠레)

3박4일간의 세계여선교사대회를 물질과 말씀으로 섬긴 이상혁 목사는 “이번 대회가 세선협이 주최하고 여선교사회가 계획한 것이었지만 분명히 성령님이 임재하신 대회였음을 확신한다”고 했다. 이어 이목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번 대회에 참가한 31개국 72명의 선교사 뿐 아니라 열방의 모든 감리교 여선교사님들 모두를 하나님이 더욱 강한 손길로 붙들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셋째 날 부흥집회 & 기도회

   
 
   
 
   
 
   
 
   
 
   
▲ 중앙아시아 선교사들의 특송
   
▲ 두번째 부흥집회 / 곽주환 목사(베다니교회)
   
 
   
 
   
▲ 기도회 / 박영민 목사 인도

 

경품추첨

   
▲ 경품추첨
   
 
   
 
   
 
   
 

 

세족식 / 성찬식 / 폐회

   
▲ 세족식에 앞서 말씀을 전하는 이천휘 세선협회장
   
▲ 이철 감독회장이 선교사의 발을 씻겼다.
   
 
   
 
   
▲ 여선교사의 발을 씻기는 김부영 사모(개포교회)
   
 
   
 
   
 
   
 
   
 

 

   
▲ 성찬식
   
 
   
▲ 파송의 노래
   
 
   
 
   
 
   
▲ 오일영 선교국 총무가 특송하고 있다
   
 
   
 
   
 

 

 

수도원 순례기

 

 

   
 

조지아(Georgia, 혹은 그루지아)는 서아시아와 동유럽 흑해 연안 남캅카스 지방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인구는 2008년 추계로 463만 841명이고 수도는 트빌리시(Tbilisi)이다. 조지아의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남동쪽은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36년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하던 공화국의 하나인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이루다가 1991년 4월 9일 독립하였다. 소련 해체 직후에는 '사카르트벨로 공화국(sakartvelos resṗubliḳa)'이라는 정식 국호를 썼으나 1995년에 현행 국호인 '사카르트벨로'로 변경했다. 사카르트벨로는 어원적으로 '카르트벨인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현재 조지아 영역 안에는 친러 성향으로 조지아에서 독립하려고 하는 압하스와 남오세티야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지역들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을 뿐 대다수 국가로부터 독립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당 서기장으로 1924년부터 1953년까지 약 30년간 국가 원수였던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이다.

동유럽과 서아시아 양 대륙에 영토가 걸쳐 있으며 인종, 역사, 종교, 문화적으로 유럽에 가깝기 때문에 동유럽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지리상으로는 아시아에 속하는 영토가 대분이라 서아시아로 분류하기도 한다. 기후적으로 해안 저지대는 접경국인 러시와 달리 아열대기후를 띠기도 하며 캅카스 산맥 일대는 만년설이 쌓여 있는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 나리칼라 요새에서 내려다 본 트빌리시 전경

트빌리시 Tbilisi

트빌리시는 조지아의 수도이다. 도시의 면적은 726km2이며 인구는 134만 5천 명이다. 트빌리시는 5세기에 사카르트벨로 왕 바흐탄그 1세 고르가살리(452년-502년)에 의해 세워졌다. 트빌리시는 수차례, 특히 아랍인과 튀르크인들에게 점령당하기를 반복하다가 1901년 러시아의 점령하에 들어갔다.

1918년부터 1921년까지 조지아는 독립 국가로 남아 있었으며 트빌리시는 수도가 되었다. 1921년 트빌리시는 자캅카스의 수도가 되었고 후에 그루지아의 수도가 되었다. 1991년 4월 9일 이후 트빌리시는 독립 조지아의 수도가 되었다.

   
▲ 니노

트빌리시에는 약 100여개의 민족이 살고 있다. 1999년의 조사에 의하면 조지아인 78%, 아르메니아인 12%, 러시아인 10%, 오세트인 3%, 쿠르드족 2%과 그리스인 2%, 기타가 거주한다.

 

1. 카파도키아의 성녀 니노

성녀 니노는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를 전파하고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한 여성으로 조지아의 "사도와 동등한 니노"라고도 불리며 "깨달음을 주는 자(the Enlightener) 니노"라고 불리운다.

전승에 따르면, 니노(296~338년경 또는 340년경)는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나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이 있었고, 일생을 처녀로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이베리아에서 인내와 애덕, 그리고 기적을 행함으로 존경받았다. 황궁으로 보내진 그녀는 왕과 왕비를 개종 시켰다. 왕과 왕비는 후일에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사제들과 주교들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니노는 조지아에 교회의 설립을 돕고 난 다음에, 여생을 기도하는데 바치기 위하여 은수자가 되었다.

 

2. 보드베수도원

알라자니 계곡이 보이는 가파른 산허리의 커다란 편백 나무 숲에 둥지를 튼 보드베수도원은 조지아 정교회 수도원 단지로 9세기에 건축되었다가 17세기에 리모델링이 되었다. 수도원은 4세기에 조지아의 여성 복음 전도자이자 치유의 은사가 내려진 성녀 니노의 유적과 성골함이 안치되어 있으며 조지아에 있는 주요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 보드베수도원의 게오르기 교회. 조지아의 성녀 니노가 묻혀 있다.
   
▲ 보드베수도원내에 최근에 지어진 교회가 있다.

 

3. 중세 광야수도원 - 데이비드 가라제 수도원

가라제 수도원은 6세기 중반 아시리아인 13명의 승려들이 세운 수도원중의 하나이며, 6세기에 데이비드(St.데이비드 가레젤리 David Garejeli)는 그들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제자 도도와 루시아네는 원래의 라브라를 확장하고 도도의 뿔과 나탈리스메멜리(침례자)로 알려진 두 개의 다른 수도원을 세웠다. 수도원은 9세기 그루지야의 성인 이베리아인 힐라리온의 지도 아래 더욱 발전하여 그루지야 왕족과 귀족 가문들이 자주 찾던 수도원이었다.

데이비드 가라제 수도원에는 수백 개의 감방, 교회, 예배당, 식당, 암벽에서 공동으로 파낸 거처 등이 있다. 다비드 가레자 단지(베르투바니 수도원)의 일부는 아제르바이잔-조지아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어 양국간의 국경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은 수 세기 동안 종교와 문화 활동의 중요한 중심지로 남아있었다. 특정 기간 동안 수도원들은 광대한 농경지와 많은 마을을 소유했다. 벽화의 부흥은 연대순으로 데이비드 가레자 수도원에서의 삶의 일반적인 발전과 일치한다. 데이비드 가레자 벽화의 높은 예술적 기술은 그것들을 세계 보물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만들었다. 11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초반까지, 중세 조지아 왕국의 전반적인 번영을 반영하면서, 데이비드 가레자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루지야 왕정의 몰락과 함께, 이 수도원은 몽골군에 의해 오랜 기간 쇠락과 황폐를 겪었지만 나중에 그루지야 왕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수도사들이 학살되고 수도원의 독특한 사본과 중요한 그루지야 예술 작품들이 파괴된 1615년의 사파비드 공격에서 살아남았고, 1690년 데이비드 가레자의 아버지로 임명된 오노프레 마추타제 치하에서 부활했다.

1921년 볼셰비키가 그루지야를 폭력적으로 점령한 후, 수도원은 폐쇄되었고 사람이 살지 않는 상태로 남아있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 동안, 수도원의 영역은 수도원의 벽화의 독특한 순환에 피해를 입힌 소련 군대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 1987년, 젊은 작가 다토 투라슈빌리가 이끄는 그루지야 학생 그룹이 일련의 시위를 시작했다. 소련 국방부 관리들이 마침내 군사 사격장을 수도원에서 옮기는 것에 동의했지만, 1988년 10월 포격이 재개되어 일반 대중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약 10,000명의 그루지야인들이 트빌리시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한 무리의 학생들이 수도원에서 단식 투쟁을 시작한 후, 군 기지는 마침내 철거되었다.

1991년 그루지야 독립이 회복된 뒤 데이비드 가레자의 수도원 생활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1996년 그루지야 국방부가 이 지역에서 군사훈련을 재개하면서 대중의 항의가 다시 일어났다.1997년 5월 수백 명의 그루지야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이 육군 사격장 중앙에 텐트를 치고 군사훈련을 저지했다.군 관계자들은 마침내 대중의 압력에 굴복했고 훈련은 금지되었다. 수도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동적이며 관광과 순례의 인기 있는 목적지로 사용되고 있다.

   
▲ 중세 광야수도원 - 데이비드 가라제 수도원
   
▲ 중세 광야수도원 - 데이비드 가라제 수도원
   
▲ 중세 광야수도원 - 데이비드 가라제 수도원

 

4. Old Tbilisi City 올드 트빌리시

트빌리시 구시가로 들어가면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오스만 터키시절 번창했던 유서 깊은 장터인 Meidan Bazaa란 지하 벼룩시장 같은 곳이 있다. 구시가로 난 길을 이용하여 기념품 샵과 조지아 와인시장이 조성되어 있다. 역사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올드 타운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가면 지붕이 모두 돔형태로 되어 있는, 러시아 시인 푸쉬킨이 “내 생애 트빌리시의 유홍온천보다 더 황홀한 온천은 가 본적이 없다”라고 했다.

또한 5세기 카르틀리왕국 시절 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화살에 맞은 꿩의 이야기 중에 나오는 꿩을 잡은 매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온천장을 지나가면 구시가지에 작은 폭포가 있고, 메테히교회 앞 공원에 있는 승강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드 트빌리시 야경을 관람할 수 있다.

나리칼리 요새가 있는 솔로라키 언덕에는 조지아의 어머니로 불리는 ‘카틀리스 데다 기념비’가 있다. 트빌리시의 상징이기도 한 한손에는 와인잔 <포도를 담은 그릇이라고도 함>을 다른 한손에는 칼을 들고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조형물을 볼 수 있다.

   
▲ Old Tbilis 전경

 

5. 연대기 공원 - Kings Memorial

조지아 역사를 자세히 기록한 조지아 연대기(또는 조지아 역사 기념관)는 트빌리시 바다 근처에 위치한 기념물이다. 1985년 Zurab Tsereteli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완전히 완성되지는 못했다. 기념비는 큰 계단 세트의 꼭대기에 있다. 30~35m 높이의 16개의 기둥이 있으며 상단에는 왕, 여왕, 영웅이 있고 하단에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성 니노의 포도 나무 십자가와 예배당이 있다.

연대기 공원은 1985년에 건설 된 조지자의 연대기를 기념하는 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각 기둥마다 조지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크기가 굉장히 커서 멀리서부터 웅장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뒷 편에서는 그 유명한 Tbilisi sea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 연대기 공원 - 킹스 메모리얼
   
▲ 연대기 공원 - 킹스 메모리얼
   
▲ 연대기 공원내에 있는 성당
   
▲ 연대기 공원 - 킹스 메모리얼에서 트빌리시를 배경으로

 

6. 므츠헤타 – Mtsheta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북족으로 약 20km 떨어진 조지아의 대표 역사 도시이다. 므츠헤타는 조지아의 도시이고, 수도 트빌리시로부터는 북서쪽으로 20km떨어져 있다. 무츠헤타는 5세기에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는 이베리아 왕국(기원전 3세기 - 6세기)의 수도였다. 마을을 내려다 보는 산정상에 위치한 즈바리 수도원(6세기)과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스베티츠호벨리 교회(11세기)가 유명하다.

므츠헤타 시내에서 강 하나만 건너면 고대 로마의 병영 유적이 있을 정도로 이곳은 옛날부터 중요한 지역이었다. 기원전 3세기부터 있었다고 하는 이베리아 왕국이 므츠헤타를 중심으로 했다고 하며, 기원후 337년 기독교가 조지아의 국교가 되었을 때 이 지역을 중심으로 퍼졌다고도 한다. 이후 6세기에 트빌리시로 중심지가 옮겨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므츠헤타는 종교적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1500년 된 성당과 수도원, 옛 건물들이 잘 남아 있다. 조지아 정교회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지역으로 간주하여 2014년에는 이곳을 성지로 공인하기도 했다.

   
 

 

7. 즈바리 수도원- Jvari Monastery

즈바리 수도원은 6세기에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가, 4세기경 이방인의 신전터가 있던 (므)츠헤타의 산정상에 큰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기도를 하자 기적이 나타났다던 장소에, 주후 545년에 세운 작은교회이다. 즈바리수도원이란 “십자가 수도원(Monastery of the Cross)"이라는 뜻이다.

   
▲ 즈바리 수도원
   
 
   
▲ 태양신을 섬기던 제단에 십자가를 세워 그리스도의 영적 승리를 선언했다고 한다.
   
 

 

8. 스베티치호벨리 대성당 – The Living Pillar Cathedral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생의 기둥 대성당)은 조지아의 역사적인 므츠헤타 도시에 있으며, 수도 트빌리시에서 북서쪽으로 20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므츠헤타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므츠헤타 어디서나 꼭대기 돔이 보인다.

4세기에 최초로 건축되었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손상을 입었는데, 특히 아랍, 페르시아, 티무르의 침입과 후일에 러시아의 예속기와 소비에트 시대에 특히 소비에트 시대에 그 손상의 정도가 심했고, 지진에 의해 타격을 입기도 했따. 현재의 모습은 11세기 초 조지아 왕국의 기오르기 1세 시절에 완성되었다.

스베티츠호벨리에는 예수의 외투가 묻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성당은 조지아의 주요한 교회이고 오늘날에도 성찬 전례에 있어서 가장 경애 받는 장소 가운데 한 곳으로 남아있다.

   
▲ 스베티치호벨리 대성당
   
 
   
 
   
▲ 1조
   
▲ 2조
   
▲ 3조
   
 
   
 
   
 

 

   
▲ 구다우리로 가는 길목의 잔발리 호수 앞에서.
   
 
   
 
   
▲ 양떼들이 도로를 지나가고 있다.

 

9. 아나누리 성채

조자아 잔발리 호숫가에 세워진 아나누리 성채는 두 개의 성과 하나의 교회가 이어져 있는 형국이다. 주변으로는 성벽과 망루가 솟아 있어 요새로 볼 수 있다. 이곳은 중세 16세기 무렵, 조지아 일대를 통치한 영주 아라그비 가문이 세웠다. 당시 아라그비 가문은 인근의 산스세 가문과 원수 지간이었다. 결국 산스세 가문이 아라그비 가문을 몰살한 다음 성을 차지하였지만, 얼마 못 가 테무라즈 가문에 의해 다시 산스세 가문이 몰살 당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성채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었는데, 늘 정복과 몰락의 역사를 가짐으로 ‘비극의 성채’로 불린다.

   
▲ 아나누리 성채

 

10. 구다우리(Gudauri) 파노라마 벽화

구다우리는 조지아의 코카서스 산맥의 남향 고원에 위치한 해발 2,200미터 높이의 스키 리조트이다. 이곳에 러시아-조지아간에 1783년 체결된 게오르기예프스크조약 200주년을 기념해서 1983년 건립한 조지아-러시아 우호친선 기념조형물(Russia-Georgia Friendship Monument)가 있다.

   
▲ 구다우리 파노라마 벽화
   
 
   
 

 

11. 카즈베기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

5642미터의 설산을 배경으로 한 스테반 츠민다(까즈벡)에 조지아를 대표하는 조지아 정교회 수도원인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수도원이 있다. 서유럽의 성당은 대부분 도시의 가장 중심되는 곳에 있어 접근이 쉽고 그로 인해 권력과 결탁해 부와 권력을 탐하는 세속화가 되었던 것과 달리 카즈베키 게르게티 수도원은 마을에서 바라보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앙을 위한 순수한 장소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 해발5642미터의 카즈벡산 정상에 만년설이 쌓였다. 왼쪽 산정상에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이 보인다.
   
▲ 카즈베기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
   
▲ 설산을 배경으로
   
▲ 스테반츠민다(카즈벡)의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12. Holy Trinity Cathedral of Tbilisi - 트빌리시 성삼위일체대성당

트빌리시의 일리아 산에 위치하고 있는 성 삼위일체 대성당(또는 사메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교단 중 하나인 조지아 정교회(그루지야 정교회, Georgian Orthodox Church)의 주요 성당이다.

전 세계 정교회 중 세번째로 크게 지어졌으며 교회는 안뜰 벽, 시계탑 및 9 개의 예배당과 종탑과 수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건물은 105.5 미터에 가깝고 돔 위에 보이는 7.5m 높이의 황금빛 십자가는 모두 순금으로 덮여 있다. 금의 절반은 그루지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했다. 3 개의 성스러운 1 개의 교회 돔은 7.5 미터이며 모두 순금으로 덮여 있으며 금의 절반은 그루지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지은 성당으로 조지아 정교회가 독립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1,500년이 되고 예수가 태어난지 2,0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1989년부터 기획에 들어가 1994년에 건축이 시작되었다가, 2001년에 완공이 되었다. 트빌리스의 모든 각도에서 거의 볼 수 있다.

   
▲ 성삼위일체대성당
   
 

 

13. 메데키 성당

메데키 성당은 올드 트빌리시 나리칼라 성곽 맞은편 절벽위에 위치하고 있고, 바그탄 고르가살리 왕의 동상이 있다. 아래로는 쿠라강이 흐른다. 고르가살리 왕은 정교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로 조지아 지폐 20라리의 초상의 인물이다. 5,6세기 에비리아 왕인 고르가살리 왕이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치고 수도를 트빌리시로 옮겼다.

 

 

   
▲ 메데키성당
   
▲ 나리칼리 요새에서 아래로 메데키 성당이 보인다. 왼쪽으로 순교의 다리도 보인다.
   
▲ 아래쪽에서 본 메데키 성당

 

14. 나리칼라 요새 - Narikala Fortress

이 성곽 요새는 4세기경 완공이후 7-8세기 아랍인 및 11세기 데이비드 왕에 의해 증축 되었다. 원래 이름은 슈리스치케(상대가 위압감을 느낄 정도의 요새라는 뜻)였는데, 13세기 몽골의 침략 시기에 ‘작은요새’의 뜻인 ‘나린 칼라’로 바뀌었다. 요새 내부에는 ‘성 니콜라스교회’(St. Nicholas Church)가 있는데, 12세기경 건축되었으나 화재로 소실되면서 1996년에 재건축되었다. 몽골과 페르시아 등에 의해 외침을 받을 때마다 무너지고 재건되기를 반복한 조지아 역사의 영광과 아픔을 가진 성채이다.

   
▲ 올드 트빌리시의 나리칼라 요새 야경

 

15. 조지아 어머니상 – Kartlis Deda

조지아의 어머니상 카르틀리스 데다는 한 손에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있는 높이 20여미터의 흰색의 알루미늄의 조형물이다. 칼은 조국 그루지야의 안녕을 위해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보호를, 포도는 하늘이 내린 최고의 선물로 동포애를 상징하며 친구에겐 와인을 대접한다는 의미가 있다.

 

16. 트빌리시 시오니 성당 – Sioni Catherdal

조지아 트빌리시에 있는 ‘시오니 대성당’은 6-7세기 경에 건립된 대표적인 조지아 정교 성당이다. 성지의 특정 장소 다음으로 교회 이름을 짓는 중세 조지 왕조 전통에 따라 시오니 성당은 예루살렘에서 시온 산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 성당은 6-7세기에 최초로 건축되었으나 초기 성당은 아랍인들에 의해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여러차례 되풀이 하였다. 최초 건립 이후에 외세에 의해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끝없이 재건에 재건을 거듭한 시오니 성당은 구소련의 통치를 받던 기간에도 교회로서의 기능을 했으며 1980-1983년 사이에 일부분이 보수되었다.

오랫동안 그루지야 정교회의 본산이었던 관계로 이 성당에는 유명한 그루지야 초대주교들의 무덤이 있다.

   
▲ 트빌리시 시오니 성당

 

17. 평화의 다리 – The Bridge of Peace

트빌리스 므트크바리 강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보행자 다리 "평화의 다리"는 이탈리아 건축가 미셸 드 루치와 프랑스 조명 디자이너 필리 마르티노드가 디자인했다. 유리와 철로 만든 보행자 다리는 트빌리시 구시 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고 150m 높이의 지붕을 가지고 있다. 다리에서 메테키 교회와 나리칼라 요새, 바라타 시빌리 다리 및 대통령 거주지 등을 볼 수 있다. 3 만 개의 LED 램프와 240 개의 센서를 포함한 인터랙티브 조명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설치하고, 인간의 화학 원소와 인간의 삶과 평화를 상징하는 Morse 코드와 같은 특별한 신호에 따라 교량의 두 개의 벽을 매시간 깜박이고 있으며 트빌리시의 현대적인 디자인 랜드 마크가 되었다. 

 

   
▲ 평화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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