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 > 복음과개혁 칼럼모음
[평신도의 외침-23] 조직,평가,돈에 미쳐있는 사람들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6년 12월 22일 (금) 00:00:00 [조회수 : 489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 복음과 희망(www.gospel-hope )에 "이민성도" 라는 필명으로 올리는 글 내용들이 너무 귀해서, 필자를 확인하고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익명으로 전재합니다. 필자는 미주교회에서 전문직업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분으로 미주교회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는 바, 오늘날의 한국교회 실상에서 대단히 유익하고 귀담아 들어야할  "어느 평신도의 외침"이라고 판단하여 연재합니다. 당당뉴스가 책임지고 실명을 보호합니다. (당당뉴스 운영자) 

한국이든 이민교회이든 아마 100명이하 교인들로 구성된 작은 규모의 교회가 80%이상이 될 것이다.  작은 교회 속에서 개척 때부터 열심히 섬기는 교인이 어느 날 갑자기 근처에 있는 중대형교회로 옮겨가는 일로 처절한 아픔과 설음을 겪어야 하는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떤 열등의식과 슬픔과 분노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중형규모 이상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도, 재력이 있는 장로나, 권사나, 집사들이 열심히 섬기다가,  어느날 갑자기 다른 교회, 그것도 같은 교단의 바로 옆 교회로 옮기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하는 열등감은 아마 본인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조직이 작든 크든 그 조직이 내마음대로 잘 돌아가지 않고 성장하지 않으면 규모에 상관이 없이 어떤 열등감과 분노와 상처를 받는 그 구조를 우리들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와 교회도 모든 면에 있어서, 성장지상주의, 대형주의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요즈음 미국사회도 온통 메가(대형)로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곳곳에 대형디스타운트스토어들(코스코, 월마트, 비제이 또는 프랜차이즈형태의 체인스토어)이 곳곳에 세워져, 파격적인 가격으로 물건을 팔고 있으니 근처의 조그만 구멍가게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업종전환을 하거나,  매출이 오르지 않는 상황이 벌어져, 상당히 많이 힘들다고 한다. 특히 그 타격은 영세적인 자영업을 하는 이민자들에게 고스란히 오는 것이다.

세상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교인들은 작은 교회보다 메가교회를 선호하는 상황이 벌어져 작은 교회들은 더욱더 작아지고, 큰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는 중대형교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빈입빈 부입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현대인들의 의식구조가 남에게 간섭받기 싫어하고 더욱 개인주의화 되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전부 노출될 수 있다는 작은 교회들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져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작은 교회를 다녔던 교인들이 꿈을 품거나 아니면 간섭받기 싫다는 뜻을 가지고 큰교회로 옮겨가서 처음에는 안심을 놓고 있지만, 결국 부실 기업을 뺨치는 정도의 비공개주의로 일관된 재정운영구조, 독재형의 당회중심 또는 담임목사중심의 일사불란한 체재, 돈없이는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 교회구조와 조직,  20세기초 전체주의 국가나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철저한 인터넷언론통제, 성도들간의 교제는 사라지고 교역자중심의 주입식 프로그램들로 인하여,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세상에 있는 기업의 구조나 중대형규모의 교회의 구조가 전혀 차이가 없다는 쓸쓸함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세무감사도 있고, 자체 감사도 있지만, 교회는 아예 감사는 하는 둥 마는 둥, 목사=교회라고 말하는 전근대적인 모습을 보게 되면 충격을 받아 아예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반신자들이 "작은 교회이든, 큰 교회이든 어느 곳에 가도 똑 같더라" 는 결론을 내리고서 교회를 떠나는 내용이 통계로 나타난 것이 바로 "개신교회 마이너스성장" 이라는 결과이다.

오늘날 교회는 정말 희망이 없는가?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말세라는 자조 속에서 한탄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7천명을 숨겨 놓았다고 자위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 힘 빠진 소리를 하면서 묵묵하게 나아갈 것인가?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사고는 전부 사람들이 벌여 놓고서 하나님의 탓을 돌리는 것은 세상 말로 정말 못 되 먹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인가 꽉 막힌 듯한 교회의 상황에 대하여 보수와 자유의 신학자들은 서로 자유주의냐 보수주의자들 때문이라고 하고,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개인주의화에 대한 책임으로 돌리고, 일반신자들은 목회자들의 책임이라고 돌리는 일에 바빠있다.

우리들은 남의 책임을 돌리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의 가슴 속에 도대체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를 돌아보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들, 오래 믿은 그리스도인들, 복음증거할 사명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가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깊이 묵상해볼 필요가 있다.

1. 우리들은 조직에 미쳐 있지 않는가?

일반적으로 시스템이라는 것은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고, 조정하고, 지도하는데는 너무나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가치관과 의식이 미성숙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 바로 시스템(조직, 법)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을 가장 열심히 가르치는 곳이 교육기관이 학교(유치원~고등학교) 이고, 그 다음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혼난다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살아가는 세무공무원, 경찰들, 정치인들 대부분은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분명히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살고 있는데, 법이라는 시스템을 붙잡고 있으니 국민들은 돈을 열심히 내면서도 조금만 법을 어기면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돈을 내지 않는 장로, 집사, 권사, 서리집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시스템을 쥐고 있는 권력자들은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치리하고 벌을 주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세상역사도 교회역사도 이렇게 권력자들이 시스템을 가지고서 돈을 내고서도 반항하면 벌을 주거나 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엄포 속에서 미성숙한 가치관과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컨트롤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정치라고 우리들은 부르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군사, 종교......이 모든 움직임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교묘한 시스템으로 모든 사람들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스템을 진짜 누가 붙잡고 있는지, 과연 몇사람이나 그러한 시스템에 자유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질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시스템에 들어가서 일단 매이면 사람의 인격은 사라지고 시스템에 잘 길들여진 구성체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2천년 전에 온 세상은 사람들의 삶과 가슴에는 하나님의 통치는 없다고 생각하고 오직 소수의 통치자들이 만든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제국로마의 정치시스템과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만든 종교시스템에 모든 사람들이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길들여져 있었고 매여져 있었다.

유대의 로마지배하의 정치시스템은 사람들에게 반역하거나 세금을 내지 않으면 무서우리 만큼 보복을 가하였으며,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종교시스템은 율법을 따르지 않거나 헌금을 하지 않으면 무서우리 만큼 보복을 가하였던 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에 모든 백성들이 존경하였던 선지자 세례요한이라고 할지라도 불의한 권력자의 여자아이 말 한마디에 목이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떠하였는가? 3년 반이라는 짧은 공생애 기간 동안, 정치시스템에 대하여 단 한번도 항거한 적도 없었는데도, 종교시스템을 깨는 신성모독죄를 걸어서, 정치시스템을 동원하여서 총독 빌라도로 하여금 "십자가사형" 을 선고하도록 몰아갔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나 이교도들이 아닌, 율법에 통달하였던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들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군중들로 하여금 "살인강도를 풀어주고 예수님를 십자가에 못박아라" 고 하면서 목이 터져라 외치게 만들었던가? 그들의 배후, 즉 철저하게 길들여짐에 대해서 통찰력을 가지고 볼 수 있어야 이 시대를 읽을 수 있고, 우리들의 영적상황을 조금이나마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정통교회들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고백한다. 진리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자유케 한다고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모든 교단법 속에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도 조직도 가둘 수 없는 신앙양심의 자유" 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으며, 보장하겠다고 문서로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교회밖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사람이 만든 시스템(조직)에 길들여져 있고, 그러한 길들여짐이 너무나 찐득찐득하고 강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뛰어 넘어버리고,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이 돌아가는 장면들을 수없이도 목격하고 있다.

세상에서 거짓말 하고 권력에 취하여 별 희한한 짓을 다하고 있는 정치인들, 얼굴이나 몸이 상품화 되어 있는 연예인들이라고 할지라도 불륜하고 횡령하면 정치생명이나 연예인 생명은 끝이 난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룩을 요구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거짓말 하고, 횡령하고, 불륜하고, 감옥소까지 다녀왔는데도 아무 탈이 없이 계속 설교 하도록 하는 너무나 희한한 교회를 우리들은 목격하고 있다.

이민교회에서 상위층에 속하는 대우를 받으면서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의 입에서
"나는 스시맨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 는 정신질환적인 발언을 하는데도 계속 설교하면서 재판까지 열면서 말을 듣지 않는 교인들을 출교시키겠다는데도 교인들이 멍하게 앉아서 그런 사람의 설교를 듣고 있는 괴상망칙한 일을 우리들은 지금 목격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인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음컷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거룩한 예배자들이다. 그래서 가정의 침대에서, 밥상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길을 걸으면서, 여행하면서, 병원에서........어느 곳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알고 살아가는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길들여져 왔고,  현재 어떻게 길들여지고 있는가?  교회라는 건물 속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무엇인가 거룩하게 느껴지는데, 가정에서 가족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 무엇인가 시시하게 느낀다. 예배시간에 담임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축도로 예배를 마치면 마치 예배를 잘 드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담임목사가 출타로 인하여 주일학교 교육전도사가 설교를 하고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면 무언가 부족한 예배로 느끼게 된다.

더구나 평신도가 말씀을 전하는 예배라면 아마 희한한 예배라고 느낄 것이다. 구역장이 심방을 하고서 구역예배를 인도하면 시시하게 보이고, 당회장이 어떻게 한번 특별한 은혜라도 베푸는 양,  구역을 방문하여 특별 구역에배를 인도하면 무슨 대사라도 벌어진 것처럼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준비하고서 배가 터지도록 먹는 잔치를 벌여야 예배다운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10년도 아닌  40여년 동안 한 자리에서 똑 같은 모습으로 똑 같은 내용으로 똑 같은 패턴으로 설교하는 목회자도 있다.  옛날에 거지들이 모인 곳에서 "옛날에 우리 집에 금송아지가 있었다" 는 식으로 "옛날에 천막교회에서 엄청나게 고생하였다" 는 이야기를 가지고 전세계에 다니면서 그 고생한 이야기 한가지로 고아 먹고, 삶아 먹고, 볶아 먹고, 갈아서 먹는 거지설교를 하면서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축복하셔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의 목사가 되게 하였다" 는 식의 성공스토리를 늘어놓고 있는데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왜 열광하고 있는가? 전부 눈에 보이는 성공은 선하며 축복받았다는 성공의식과 출세지향의식이라는 시스템에 지독하게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예배도, 프로그램도, 교회도 전부 한사람의 성공과 출세에 거침없이 이용 당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목회자들만의 전유물인가를 우리들 스스로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목회자의 설교가 없는 예배는 마치 예배가 아닌 것처럼 되어버린 오늘날 교회의 모습, 교인들의 가슴이 정말 정상적인가에 대한 도전적인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대형교회들 속에서 벌어지는 유명목회자들의 수많은 비리들이 증거와 함께 법정에서까지 공개되고 법적으로 전과자로까지 드러나고 있는데도 그 전과자 목회자는 여전히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축복기도하고 있는 참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직에 잘 길들여진 직분자들은 "그것은 사회법이고..." 하면서 "주의 종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최면 또는 담임목사무죄설" 을 주장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서 그런 예배가 진짜인줄 알면서 설교자의 횡령과 간통을 합리화하는 비극적인 장면들을 우리들은 목격하고 있다.

수많은 작은 교회도 예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초신자가 교회에 등록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조직에 밀어 넣어서, 성경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서리집사, 성가대, 구역장, 교사를 시키는 것은 예사이고, 무엇보다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잘 내고, 목회자에게 철저하게 순종하는(길들여지는) 교인들로 만들까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해도 오직 조직과 목사에게만 충성하고 돈만 열심히 내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동적으로 서리집사->안수집사->장로가 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장면들도 목격하고 있다.  

부교역자들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담임목사나 당회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조직의 쓴 맛을 반드시 당한다" 는 두려움 때문에 싫어도 좋다고 해야 하며, 울고 싶은데도 웃어야 하는 비극적인 광대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습들도 목격하게 된다.

어떻게 해서라도 목사 안수를 받거나, 단독목회지에 나가지 전에는 사람들에게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알이 뒤틀려도 눈물을 머금고 박봉에 시달리면서 조직에 순종하면서, 새벽마다 땅을 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기도 아닌 신세 타령의 탄식을 하는 부교역자들도 흔하지 않다.

2. 우리는 평가에 미쳐있지 않는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의 입방에 늘 올라져 있다. 태어나서 그저 귀염만 받아도 살아나기 힘든 세상인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부모들이 버려버리거나 아니면 고아원에 던지거나, 아니면 평생 장애자라고 손가락직 받으면서 사는 일도 있다.

한 때는 단지 여자아이로 태어났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면서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구박을 당하고,  자라서는 얼굴이 못생겼다고 구박받고, 일류대학에 가지 못한다고 구박받고, 키가 작다고 구박받고, 살이찌다고 구박받고, 돈이 없다고 구박받고........ 평생 열등의식과 수치감이라는 감옥소에 넣어 놓고서 기족들, 친구들, 심지어 교회에 가서도 별볼일이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를 우리들은 겪었으며 지금도 겪고 있다.

이민자의 사회를 보면 정말 웃기는 일이 많다. 불과 얼마전까지는 주눅이 들려서 지독한 열등감 속에서 살던 사람이 갑자기 돈이 벌어서 벤츠를 타고 다니면서, 골프장에서 가서 큰 소리치면서 오늘은 내간 쏜다라고 큰 소리 치고, 교회에 와서도 한 자리라도 받으면, 마치 빨갱이가 완장차고 죽창들고 설치는 맹신교도의 일을 벌이고, 회사에 가서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고용한 스패니시들을 동물 취급하고, 밤에는 사업을 핑계로 룸살롬에 가서 딸 나이나 되는 아이들과 희희덕거리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 상식이하의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목회자들의 세계는 어떠한가? 아무리 나쁜 짓을 하여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큰 교회당이라고 짓게 되면 비복음, 비윤리, 비도덕적인 모든 죄들이 전부 면죄부를 받게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이 모든 희한하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보면 그 속에 바로 사람들의 평가에 미쳐 있는 세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 이중, 삼중의 인격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왜 세상의 눈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는가? 왜 그렇게도 철저하게 자신을 속이면서 남을 의식하는가?

교회에 가서는 너무나 거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데, 기가 막히게 표정과, 언어와, 몸짓을 관리하면서도 정작 가정과 사회에 돌아와서는 미친 짓을 왜 예사로 해버리는가?

그런데, 평생을 거짓된 표정과 거짓된 언어와 거짓된 인격을 가지고 위장전술을 쓰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순수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순수하게 교회를 섬기고, 순수하게 사람들을 섬기려는 사람들이 도리어 의심을 받는 희한한 세상이 되어 있다.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가 가짜가 되는 기묘한 세상을 우리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모든 산상수훈을 마치는 마지막 장면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을 더하시리라" 고 결론을 내리셨다.

백성들 뒤에서 예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엳듣고 있었던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열심히 성전에 와서 고르반(헌금)해라. 그리하면 너희들의 의식주문제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것이다" 라고 하였을지 모른다고 하면서 예수님도 제법 옮은 말을 하구나 하고 말할지 모른다.

지금 우리들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머리로는 전부 알고 있다. 그런데 과연 가슴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 가는 장면과 상황들이 교회 안에서 너무나 많이 벌어지고 있다.

왜 교회를 그렇게 크게 화려하게 높게 짓는데 미쳐 있는가? 사람을 채우는 정도라면 그냥 대학교의 대형 강의실이나 체육관이나 강당식으로 지으면 대단히 실용적이다. 그런데 비싼 돌로 건물바닥과 겉과 벽에 떡칠을 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하는 것처럼 이미지를 꾸미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건물이 진짜 성전인양, 수만명의 교인들 마음과 호주머니를 전부 털게 해 놓고서는 아들에게 세습하고, 횡령, 불륜, 왕노릇을 예사로 벌이는 파렴치한 동물수준의 의식을 가진 목회자들도 있다. 자기가 목회하는 교인들을 위해서 매일 새벽시간에 한명도 단 1분도 기도하지 못하는 목회자를 정상적인 목회자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아닐 것이다.

정말 이 시대를 보면 "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이리와 같은 삯군들이 있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신자들이 교회에 와서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의 말씀과 인격과 구원받은 자로서의 고백적인 삶을 나누고 전하는 성령의 사람들로써 인도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해서라도 "내말만 잘 들으면서도 살찌고 둔한 양새끼들" 로 만들어서 "결국에는 잡아 먹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는지 우려스러운 일들이 너무나 많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목회성공, 성장지상주의" 라는 몬스터이데올로기와 사람들의 평가에 미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지 모른다.  

물론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받는가는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 대단히 중요하다.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여도 문제가 일어나는 일들이 많을지 모른다. 더구나 일부러 나쁜 이미지를 일부러 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들이 어떻게 평가를 받을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으로 철이 든 사람들은 한 번 정도는 돌이켜 보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볼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방탄밴츠를 타고 다니고, 몸종들과 같이 굽신거리는 수행비서들과 경호원들과 부교역자들을 대동하고 다니는 당회장, 일반 성도들이 목사 만나기가 대통령을 만나는 것보다 힘든 당회장을 과연 돈없는 자, 학대받는 자, 병든 자,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만날 수나 있을지 궁금하다. 나중에 천국에 가면 알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아이구, 그 유명목사, 나도 만나기가 정말 힘이 들었다" 고 말씀하실지 모른다.


3. 우리는 돈에 미쳐 있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이구 동성으로 "이 세상에서 돈없이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 는 말에 전부 동의할 것이다. 틀림이 없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돈을 찍어 내고 유통시키고 있지만, 거꾸로 사람람들이 돈의 종이 되어 있다고 극단적으로 표현하여도 될 정도의 상황이 벌어져 있다.

범죄의 90% 이상은 돈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한국 땅에서 돈 없이는 아이들이 바보가 된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 모두가 영어학원, 피아노학권, 미술학원은 기본이고, 각종 학원과 과외에 아이들을 보내야 하는데 돈없이 보낼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결국 아버지가 세무공무원이라면 아이들을 위해서 뒷돈을 받아야 할 것이고, 아버지가 대기업과장이라면 하청업자들이 찔러주는 돈을 거부할 수가 없고, 경찰이라면 조직깡패들이 조금 봐달라고 찔러주는 돈들을 거부하기 힘들게 된다. 아내가 돈벌어오지 않는다고 맨날 아파트 큰 평수로 이사가야 한다고 바가지 긁고, 아이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일류대학에 가야한다고 바가지 긁고, 교회에 가면 교회 건물을 크게 지어야 한다고 목사가 바가지 긁고 있는데 돈벌이 하는 사람들은 사기를 치고, 탈세를 하고, 뇌물을 받아서라도 집에다가 교회에가 갖다 바쳐야 하는 매우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돈 때문에 미쳐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온 국민들이 아파트대란과 경제적인 실정으로 대통령과 정치력에 대해서 손가락질 하고 있다. 아파트 큰 평수에 이사 가서, 거대한 플랫TV와 외제가구와 외제옷과 외제침대와 수천만원이 넘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돈있는 것을 자랑이나 하고 잘난 척이나 하는 사람들은 과연 대통령에게 손가라질 할 자격이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서울은 세계에서도 대중교통수단이 대단히 발달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죽어라 큰차와 큰집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부부만 사는 고령인구들이 점점 늘어가면 당연히 일본과 같이 작은 아파들의 선호도가 높아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큰 아파트들만을 찾고 있으니 업자들이 같은 시간이라면 작은 아파트보다 비싸고 큰 아파트를 지으려고 할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설쳐도 국민들이 큰 것을 원하는데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과 대만과 홍콩과 싱가폴은 지금 경기가 좋아서 웃고 있는데 한국만 울고 있다고 한다. 당연하지 않는가? 온 국민들이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품위유지" 에 미쳐있다가 갑자기 돈이 떨어지니 세상이 무너진 것과 같은 삶을 살면서 대통령 욕이나 실컷 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비그리스도인들로 가득찬 세상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과연 교회는 돈에서 자유한가? 오늘날 중대형교회들 가운데 교인들이 6개월만 돈을 내지 않으면 완전히 파산할 수밖에 없는 교회들이 대부분일지 모른다. 은행에 빚을 얻어서 교회건물을 지어 놓고서는 그 부채 때문에 옴짝 달싹도 하지 못하는 교회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1%기금조성의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한 변호사가 중대형이민교회의 목회자들을 만나서 1%기금조성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더니 모두가 "저희들이 그동안 교회건물을 열심히 짓느라고 힘이 너무 빠져 기금조성에 동참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라는 말을 들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교회헌금이 들어오지 않는 교육부예산, 나가기만 하여야 하는 구제, 표시도 나지 않는 선교예산은 늘 뒷전에 밀려서, 빚갚고, 교역자사례비, 온갖 프로그램(솔직히, 그냥 모여서 소리나 듣고 자기 만족이나 주는 것이 대부분임) 운영비, 건물관리비에 "하나님의 돈" 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돈" 을 전부 끊어버리면 누가 가장 괴롭고 누가 가장 힘들고 가장 슬퍼하고, 당장 길바닥에 나가 앉아야 할 판이 될까?  1%의 구제헌금도 함께 할 수 없는 교회에 "하나님의 돈" 이라는 수입이 6개월동안 완전히 끊어져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을 해보야 할 것이다. 아주 어려운 문제인 것 같은데 모든 성도들은 그 해답을 잘 알 것이다.

오늘날 상당수의 교회들이 교인들이 열심히 일해서 헌금으로 바쳐진 돈들이 "교회건물과 조직운영과 목회자들의 성취욕과 야망을 위한 품위유지비" 로 점점 전락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조직과 돈 없이 돌아가는 세상" 이 도래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돈 없이, 목회자없이, 교회건물 없이, 신학교 없이, 조직없이 정말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일가? 교회사는 정반대의 일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교회는 조직과 돈이 없이도 돌아갈 수 있다" 는 실제들을 보여주신 적이 있다. 그것은 초대교회도 아니다. 초대교회도 엄밀히 말하면 사도들이 중심이 된 조직과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바치는 헌금이라는 제도 속에서 교회가 운영되었다. 특히 아나니아와 삿비라와 같인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전부 바치지 않다가 죽는 일까이 벌어질 정도였다. 그렇다면 언제인가?

바로 무신론 공산정권 치하였다. 찬란한 기독교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제정러시아는 국교였던 수 많은 러시아정교회들이나 신학교는 무신론 공산당의 학습장소나 창고로 사용되었으며, 공산주의자들은 무신론 공산주의를 러시아에서만 이룬 것이 아니라 인근 국가들을 침공하여 무신론국가로 만들었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피를 흘리면서 교회를 세웠던 아프리카에까지 수출되어 반 이상을 무신론 공산주의국가로 만들었다.

중국은 어떠하였는가? 샹하이에 400명이상의 선교사들과 많은 신학교와 선교센터와 병원들이 있었지만 모택동공산정권이 전부 추방하고 폐쇠하였으며, 중국인 목회자들은 전원 감옥소에 넣어서 강제노동을 시켰다.

콘스탄틴대제가 로마제국을 하루 아침에 기독교 국가로 선포한 이래 1600년동안 신학자들과 성직자들은 "교회를 구원의 어머니" 라고 하였으며 왕도 교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왕이 될 수 있었던 세상 위의 교회가 군림할 정도로 강력한 교회의 모습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교회 없이는 구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너무 강한 정치성을 가진 교회에 대항하여 일어섰던 프로테스탄트교회들 마저도 교회조직을 강조하고 교회조직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무교회주의자들을 이단시하면서 교회조직으로 들어와야 구원이 있는 것처럼 가르쳤으며, 또한 그 교회의 치리자로서 세움받은 사람들로이 바로 목회자이며, 교회의 위임통치대리자라고 교단법에 명시하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이 그 모든 교회의 조직과 신학교와 직분을 깡그리 없애버리면서 누구도 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만약 들키면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여야 하는 처지를 면치 못하였다.

그렇다면 콘스탄틴대제 이후 공산정권이 시작되기전 1600년동안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이 만든 교리에 의하면 공산치하에 있었던 교회는 교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지난 1700년동안 가장 거룩하고, 계시록의 빌라델비아교회나 서머나교회와 같은 모습을 찾아라고 하면 우리 모두는 공산치하 속에서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그 신앙을 지키면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강제수용소에서, 지하에서, 눈물로 찬양하고, 침묵의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 종일 묵상하면서 침묵의 예배를 드렸던 성도들로 모여진 그 교회를 가리킬 것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1700년동안 교권주의자들이 성경을 덮어버리고, 가감하고, 비틀고, 왜곡시키는 그 상황을 오랫동안 지켜 보신 후 (심지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던 죄로 틴데일은 종교재판을 받아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결국 그 모든 교회들과 성직자들과 신학교를 없애버리는 무신론 공산주의 치하 속에서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만을 남겨 놓고서 어두운 골방에서 가장 거룩한 예배를 받으셨던 것이다.

공산정권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섰던 1920년대~1980년대 시대에 전세계는 성경이 가장 많이 보급되었으며, 자유주의국가의 교회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교인들이 떠나기 시작하였고, 프랑스, 독일, 영국은 이제 결혼식, 장례식, 크리스마스 정도만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되는 비참한 영적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공산정권들이 전부 무너져 공산 소련과 위성국가들의 문이 열리고 실용주의를 내걸었던 중공(중국)이 문을 열었을 때,  별과 같이 빛나는 성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신론이론으로 무장된 공산당최고간부였던 옐친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당장에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다.  

종교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된 타이완이나 홍콩 인구의 1%도 예수를 믿지 않지만, 철저한 핍박속에 중공(중국)은 놀랍게도 13억의 인구 가운데 7천만~1억명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무섭도록 핍박하였던 공산주의가 없었더라면 과연 7천만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섭리의 오묘함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한국교회가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웠던 때는 일제말기와 6.25전쟁이후라고 교회사가들은 말하고 있다. 모두가 가난하고,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고생하던 시절이었다. 목회자들도 가난하였고 성도들도 가난하였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심방하였을 때 "밥을 먹지 않았다" 고 하면 상을 차릴까봐 심방가기 전에 미리 냉수한잔을 벌컥벌컥 마신 후 "식사를 하고 왔다" 고 대답하면서 가난한 성도들의 한 끼 식사라도 축내지 않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면서 심방예배를 드렸던 거룩한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담임목사님 납신다고 하면 온 구역이 들썩거리고 온 가족이 총동원이 되고 심지어는 일류요리사까지 동원하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뉴욕의 롱아일랜드 입구에 있는 어떤 중형교회의 담임목회자는 팩케이지사례(연봉)로 18만달러가 넘는 대우를 받고 있는데도  "나는 스시맨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고,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다" 라는 분노에 서린 말을 교인들 앞에서 내뱉음으로 교회안팍을 떠들석 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한국교회사 또는 한국선교역사를 단 한 장이라도 정확하게 읽은 적이 있다면 그 발언은 천지개벽할 정도의 발언이며, 목회자의 입술에서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돈, 돈, 돈, 돈이 도대체 무엇인데, 교회와 목회자들과 사람들을 이렇게도 비굴하며, 저급하게 만들고 있는가? 돈이 도대체 무엇인데 그 돈으로 생명이 없는 비싼 차를 타고 다니고, 생명이 없는 큰 집에 살고, 생명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비싼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해서 자신들의 신앙인격과 품성과 생명의 가치까지도 올라간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들을 정직하게 우리 자신들을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정말 예수안에서, 말씀안에서 우리들은 진정으로 자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러한 말씀을 가지고 또 다시 비틀어서 예수를 믿는 것과 술마시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자유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궤변에 가득찬 어둠의 자식들처럼 옛사람, 옛습관으로 돌아가 술판이나 벌이는 사람들은 정말 구원의 가망성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거룩하게 살게 되어 있는 것이지,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눈에 너무나 예쁘게 생기고, 얼굴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고 목소리만 들어도 천사처럼 여겨지는 애인을  둔 총각이 창녀촌에 뻔질나게 출입한다면 그 총각은 중증의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으며 빨리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목회자가 십자가의 복음을 만나 복음증거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복음보다 조직과 품위유지와 돈에 몰입해 있다면 빨리 목회를 접거나 빨리 세상에 나가서 회사를 차리고서 정당하게 일해서 사장이 되어서 돈벌이나 하면서 품위유지하는데 신경을 써는 것이 훨씬 낫다.  

똑 같은 일이지만, 성도가 십자가의 복음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세상적인 술집냄새와 술냄새와 담배냄새와 음담패설이 싫어지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나누고 증거하고 찬양하는 것이 즐거워지게 되어 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교회에 가서 도리어 목회자의 사상적인 암시와 허용 속에서 "술은 술집에서 마시지 않아도 된다. 가정에서 친구들끼리 오붓하게 한잔씩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면서 자유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다른 복음을 교인들에게 던지게 되면, 어린 영혼들은 구역이나 목장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술판과 음담패설로 광란의 도가니에 빠져서 밤을 지새우는 일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예수를 정말로 만난 체험이 있는 목회자, 예수를 정말 만난 체험이 있는 교인들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들이 만약 조직과 사람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서 비굴한 삶을 살고 있다면 회개하고 울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만약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품위유지와 인기와 이미지관리에 미쳐서 정작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금식하고 통회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만약 돈에 미쳐서, 인격도 버리고, 신앙도 버리고, 하나님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면, 더구나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기나 치고, 도둑질하고 거짓말 하면서 말씀을 배반하면서 살았던 그 모든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당당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2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