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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 어, 산촌의 교회의 본질과 방향
박순웅  |  동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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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9월 19일 (월) 15:49:05
최종편집 : 2022년 09월 23일 (금) 09:54:52 [조회수 :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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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획시리즈 “길을 찾다”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고민과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기 위해 감리회목회자 모임 <새물결>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이 작업이 목회자와 평신도의 균형 잡히고 건강한 믿음의 바탕을 마련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발걸음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열두 번째 연재를 이어갑니다.

 

농, 어, 산촌의 교회의 본질과 방향

                                                              박순웅 목사 (동면교회)

 

<질문> 농촌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입니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어가고 인구는 감소해 가는 상황에서 농, 어촌 교회의 상황은 점점 열악해져 가기만 합니다. 미래의 농어촌 교회를 준비함에 있어서 농, 어촌교회는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어떠한 구심력과 마을, 지역, 도시교회와의 연대를 위한 어떠한 원심력을 가지고 교회를 꾸려가야 하는지가 궁금하고 대부분의 농, 어촌 교회의 소멸론이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각 개신교의 교단적인 대안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교회 본질에 있어서 큰 축은 하나님 나라 운동일 것입니다. 큰 축인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펼치는 장, 공간이 바로 지역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지역 가운데 일부이며 전체인 농, 어,  산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 운동을 큰 축으로 보면 교회는 참으로 많은 것을 살펴볼 수 있으며 선교적, 교육적 사명과 해야 될 일들이 수없이 주어질 듯합니다. 교회가 전통적방식에 따라 주로 복음을 전하는 것에 치우쳤다면, 이제는 복음을 재해석해내며 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많을 것들을 들여다보고 피드백해야 할 때인 듯합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농, 어, 산촌은 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도시는 꽃이며 열매라고 하죠. 꽃과 열매가 튼실하고, 건강한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잘 내려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뿌리가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야만 오래도록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도시의 교회도 그러하고 농, 어, 산촌의 교회도 기형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교회뿐 아니라 사회도 그러한 듯 합니다. 그런데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사회보다 교회가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니다. 도시의 교회는 커지고 비대해지며 기형적으로 변해가고 더불어 뿌리로서의 농, 어, 산촌의 교회는 약해지고, 잘려 나가고, 소외되며,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모든 교회의 모습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잘하고 있는 교회들, 지체들이 있지만, 교회들이 보여주고 있는 전반적이고 일반적인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농촌교회 목회를 하면서 생산적인 농사를 30년 지어보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서로 유기적이라는 것, 서로의 관계망으로 서로를 이어주고 순환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만 땅도 열매도 생산자도 소비자도 만족하고 건강해진다는 사실이죠. 이러한 유기, 순환, 관계 농사를 빗대어 살펴보면 과연 우리의 교회는 어떤 상황일까요?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농, 어, 산촌교회의 가장 큰 문제 또는 어려움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가지 짚어볼 내용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유기적인가? 관계망이 튼실한가? 선 순환적으로 움직여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적으로 행동한다면 답이 주어지지는 않을까요? 

 한 해의 농사를 위해서는 퇴비라는 밑거름을 잘 넣어주게 됩니다. 퇴비, 거름은 사실 열매를 위해서 4-6개월간 미리 뿌려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농사가 잘 될 수도, 혹은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업은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거기’를 튼실하게 해주는 작업입니다. 거기서부터 유기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신뢰하며 관계를 맺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농부는 그것을 알기에 묵묵히 일꾼이 되어 성실하게 퇴비를 주는 작업을 해내는 것이죠. 농부는 이 작업이 손해 보는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묵묵히 수행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행여나 어떤 농부가 이러한 작업을 게을리한다면 그것은 무지에 의한 게으름이 아니고 의식을 따르는 행동이 수반되지 않기 때문일 거고 그래서 어려움이 발생하는 걸 겁니다. 
  과연 오늘의 우리 교회가 도시의 지역교회와 농, 어, 산촌의 교회가 그렇게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 과감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 나라 운동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도 그렇게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와는 다른 터무니 없어보이는 하늘의 씨앗을 밑거름으로 뿌리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사람과 민초들의 관계망이 유기적으로 맺어진 것입니다.

 농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도시교회 역시 농, 어, 산촌교회를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도시교회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70-80년대 산업개발로 인해서 농촌의 농업인이 대거 도시로 몰려오면서부터 도시교회는 성장했다고, 그래서 언제나 농, 어, 산촌교회에는 빚 진자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과연 그러하다면 도시교회는 자신들의 뿌리인 농, 어, 산촌교회와의 유기적이고, 순환적인 관계망을 즉각적으로 펼쳐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도시 교회도 되살아나고, 성장 너머 부흥이라는 복음의 본질을 이 땅에 회복시키게 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농, 어, 산촌교회의 부단한 인내와 끈기 그리고 흙과 같은 품성을 지니는 맑고, 밝으며, 고요한 수도원의 정신이 한 축으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거룩한 도시교회와는 또 다른 복음의 본질이 분명 농, 어, 산촌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적색은총뿐 아니라 녹색은총의 복음이 농, 어, 산촌교회에 확실하게 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본질인 여러 축 중 하나인 녹색의 은총을, 혹은 유기적이고 순환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농, 어, 산촌교회가 내쳐지거나 잊혀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농, 어, 산촌교회에서는 자연의 생태적, 녹색은총을 충분하게 회복해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농, 어, 산촌교회의 가장 큰 구심력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자산 위에서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 나라 운동을 도시교회와 유기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농사를 짓다 보면 토양의 밑거름을 충분히 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두 번째 농, 어, 산촌교회의 자발적 수고로움이라는 구심력입니다. 바로 ‘돌봄’이라는 것이죠. 아마도 이것은 어느 곳에서라도 제일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밑거름처럼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구심력을 잃게 될 것이고 뿌리가 튼튼할 수 없습니다. 농, 어, 산촌교회가 이 일, 즉 자발적 수고로움에 기반한 돌봄을 잘 해낼 수만 있다면 지역에서의 교회로서 좋은 모델이 될 듯싶습니다. 

 그 작은 예가 여수에 있는 갈릴리교회입니다. 여수 갈릴리 교회의 김순현 목사는 숲속 비밀의 정원을 해마다 가꾸고 있죠. 거기에는 목회자의 수많은 땀과 정성, 돌봄, 수고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 남단 아랫동네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갈릴리교회를 찾아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숨 한번 크게 내쉬어 자신의 일상을 회복하는 장소가 되었죠. 바로 거기에는 애씀과 돌봄, 땀 흘림의 구심력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 교회는 작은 숫자의 교우들로 꾸려져 있지만 이 소수의 교우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복음의 본질과 함께하려는 수많은 이웃과 타지의 교우들과의 관계망을 통해 자부심을 갖는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구심력과 원심력을 잘 이해하는 사례일 것입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구심력으로 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쉼’이죠. 한 해 동안 거름 주고, 땀 흘리며, 돌봄 뒤에 추수를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빈 들녘이 눈에 들어옵니다. 비어 있는 밭과 논은 길게 5개월, 짧으면 3-4개월을 쉬게 되죠. 눈도 맞고, 때로는 비도 맞으며, 세찬 바람도 맞기도 합니다. 그러한 날들보다 잔잔하고 편안한 날들이 더 많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쉰다’ 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긴 쉼이 있고 나서야 다시금 생명을 싹 틔웁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람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농, 어, 산촌교회는 이 ‘쉼’의 것을 잘 이해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잘 쉴 수 있게끔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농, 어, 산촌교회는 도시교회의 피곤함과 고단함을 잘 쉬게 해줄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긴 겨울로 표현을 했으나, 사실은 봄부터 이듬해의 봄까지 어느 절기이든 ‘숨 쉼’을 해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농, 어, 산촌교회의 구심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교회 일각에서 수행되고 있는 ‘피정’이라는 구심력을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를 농, 어, 산촌교회는 고민해 보면 좋을 듯 싶습니다. 

 실례로 강원도 고성에 있는 오봉교회와 장석근 목사는 그렇게 ‘숨 쉼’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옥으로 지어진 교회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쉼’이 그리고 피정의 시간을 가지게 되죠. 단아한 9평짜리 목사님의 사택만 보아도 그냥 ‘그래, 저렇게 살수도 있는데’ 라며 자신과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바로 쉼이고 피정이 아닐까요? 우리나라 다섯 지역의 한옥마을 가운데 하나인 왕곡마을의 오봉교회는 그야말로 쉼의 교회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농, 어, 산촌교회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지역에서 어떻게 쉼을 구현해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으로 함께 하고 소통하는 구심력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도시교회는 도시교회로서의 쉼터가 필요하죠. 그러니 농, 어, 산촌교회와 연대하는 쉼이라면 더 좋을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농사를 짓다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구심력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때인 ‘절기’입니다. 24절기는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 중요한 대목입니다. 24절기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이 절기를 농사에 대입해보니 참으로 귀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미 고인 되신 북산 최완택 목사는 민들레 주보를 통해 절기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많이 전해왔죠. 절기에 관심이 많은 저는 그 절기에 관련된 민들레 주보를 3-4번씩은 읽은 듯합니다. 농, 어, 산촌교회의 목회자들과 교우들은 절기를 공부하는 것으로 구심력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것이 농, 어, 산촌교회에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단체인 새물결에서도 교회력을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교회력과 절기를 잘 익혀 놓으면 농, 어, 산촌교회는 엄청난 자산을 갖는 것이며, 이 유기적인 관계가 우리의 교회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도시교회에 가뭄에 물줄기를 이어주는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 박순웅 목사

 저희 홍천 동면교회는 4-5년 전부터 교회학교에서 24절기와 교회력을 가지고 운영합니다. 교사들과 함께 공부하고 연구한 24절기와 교회력을 교회학교에서 운영하죠. 한 달에 두 번인 절기를 통해 그때 그때마다 절기를 음미하고 교회력에 따른 말씀과도 연계해서 교육 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나도 좋아하고 일반의 아이들도 함께 어울리면서 신앙도 갖게 되는 일석이조의 기쁨을 맛보기도 합니다. 절기에 관련된 사진, 예술 활동, 절기 시와 문학, 절기 음식, 절기 놀이 등등 아주 단순하고도 재미있는, 어렵지 않고 쉽게 함께 하면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아하, 이렇게 하면 신앙생활도 깊어질 수 있겠구나’를 느끼곤 하죠. 교회력에서도 이러한 유익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절기별의 비유라든가, 시편을 통한 내용을 음미하는 것이 좋은 사례일 것입니다.

 이렇게 지역의 교회들은 각각의 지역마다 지역 고유의 구심력을 가지고 복음의 본질을 다양하게 나누고 함께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농사를 짓다 보면 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뭄에콩 나듯 잘 되는 때가 잇기도 하구요.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야기처럼 부한 곳에나 가난한 곳에 처할 줄을 알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주어지는 상황이 하나님의 은총이며 은혜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은 언제나 지나고 난 이후에 알게 되는 아쉬움이 있으나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문득 알게 되는 ‘폭로된 비밀’이기도 합니다. 

  농, 어, 산촌교회의 구심력은 각각의 지역 특징들을 잘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농토의 지역이면 자연의 조건과 먹을거리의 연대 그것도 친환경적인 먹을거리와의 연대, 환경적인 요소,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인 것까지도 잘 연구하고 표현 할수 있으면 그러한 내용들은 귀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어촌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수와 바다, 그리고 천연자원 등의 요소를 만끽할 수 있도록 여러 요소들을 연계해서 복음의 본질로 승화시킨다면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을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연계된 지역의 자연에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경험하기 위하여 찾아가고 쉬며 새로운 힘을 얻을 것입니다.

 산촌은 더 말할 것이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오라 우리가 하나님의 산에 오르자’ 라고 하기도 했죠. 예수께서도 쉼과 위로가 필요하고 그래서 기도하기를 원하실 때는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산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우리가 모르는 신비함이 있는 것이니까요. 산촌교회는 언제나 도시교회에 맑은 물줄기를 대줄 수 있는 그야말로 오아시스이며 생명력 있는 수도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준비를 한다면 산촌교회는 영원히 도시교회에 그리움으로 남는, 추억이 있어 찾고 싶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농, 어, 산촌교회가 전통적인 복음의 본질을 혹은 교회력을 잘 준비하면서 동시에 도시교회와의 연대를 통한 위의 것들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농, 어, 산촌교회의 구심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것도 해야 하지만 여러 어려운 조건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가장 주요한 것은 물질적인 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농, 어, 산촌교회는 위와 같은 좋은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서 도시교회와 논의하고 의뢰하기도 하고 요청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생의 자리를 위한 논의는 도시교회와 농,어,산촌교회가 진정한 형제교회이며 자매교회로 나아가는 기반이 죌 것입니다. 도시교회는 더욱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서 더 좋은 방향을 모색하고 함께 한다면 서로 복음안에서 상생하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더더욱 튼실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의 기반은 복음의 본질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하는 사랑이기만 한다면 충분과 필요의 조건이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도시교회의 물질적인 지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적인 것만큼 중요한 것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는 교류입니다. 농, 어, 산촌교회의 구심력이 하나하나 자리매김함과 이로인해 나타나는 내적, 외적 성장, 그리고 이로 인해 더욱 견고해지는 도시교회와의 연대, 협력, 협동은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힘은 지역을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창조질서의 회복과 보존을 위해서도 서로가 맘을 모으며 재정적 나눔도 자발성을 가지고 실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작은 단위의 교류부터 연합 예배의 교류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좀 더 알아가는 것에서부터도 희망은 싹이 틀 것입니다.

 실제로 농, 어, 산촌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교회는 더 말할 것이 없고요. 가장 큰 위기는 역시 사람, 인구가 줄어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왜 우리는 사람만을 생각하면서 걱정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어차피 지역 인구 소멸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요. 더 많이 모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어떻게 주님의 복음의 본질에 성숙하게 충실할 수 있을까에 마음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교회가, 신앙인인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이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역 인구의 소멸은 어차피 농촌, 어촌, 산촌에서 속도감있게 진행이 되어 도시지역의 소멸로 이어지는 전국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농, 어, 산촌이 더 빨리, 심화될 것이니 이를 우려하는 것은 이해됩니다. 그러니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희망, 평화, 사랑을 지역에서 찾고, 적용하며 활성화시키는 일을 해내고 그 가치를 나누고 함께하며, 지키고 공유해야 하는 일이 농,어,산촌교회가 해야 할 일일겁니다.

 이러한 일들을 작지만 성실하게 감당해가는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경상북도의 의성이라는 작은 인구 소멸 도시에서 역사적 가치를 찾아 지역의 향토를 공부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면서 프리마켓을 통해 사람과의 만남을 교류하며 복음의 본질을 함께하려는 이혁목사와 교우들입니다.

 같은 지역의 영주라는 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농촌 마을의 교회도 있습니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 폐교된 학교를 인수해 교회를 세우고 젊은이들과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이희진 목회자가 거기에서 일을 하고 있죠. 특히 이곳은 다양한 지역의 협동조합 간의 교류와 교회 자체 내의 여러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아주 훌륭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농사를 짓기도 하고, 꽃과 나무도 키우며 카페도 운영하고요, 도시의 아이들을 위한 농촌 유학 센터도 운영합니다. 이 모든 것의 본질은 복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운동인 것입니다.

 지역의 인구 소멸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러한 것을 전제로 한다면 지역에서 어떠한 일들을 가지고 복음과 연대 할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무엇인가 줄기를 찾고 씨름한다면 그것이 잘 복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시교회는 적극적으로 함께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농, 어, 산촌교회가 모두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각각의 지역에 맞게 어떤 고민을 할 것이며, 어떻게 풀어낼 것이고 어떻게 정성을 모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농, 어, 산촌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은 너무나도 많다고 봅니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은총과 은혜의 선물인데 기존의 질서를 따라서 소극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의 자원에 담겨져 있는 의미가 주님의 복음과 함께 새롭게 읽혀지고 그렇게 복음이 담지된 지역의 자원들이 지역교회의 구심점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전통적이냐, 진보적이냐 하는 논의를 넘어설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도시의 교회도 좀 더 폭 넓게 농, 어, 산촌교회들을 살펴보고 감싸 안아보면 어떨까요?

 

농, 어, 산촌교회와 도시교회에 중용 23장을 소개해 봅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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