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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데올로기를 하나님보다 우선이 되게 했는가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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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9월 19일 (월) 15:42:18
최종편집 : 2022년 09월 30일 (금) 02:32:07 [조회수 : 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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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정말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밀어내고 이데올로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는 기독교와 그 신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라와 국민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태생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나라의 허리를 잘라 둘로 만들었습니다. 국토도 국민도 양분해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집계된 공식 통계에 의하면 이 과정에서 137만 여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수도 적지 않을 것이니 그 수는 보다 더 많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민족 최대의 비극이었습니다.

남과 북은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도 북에 의해 수많은 남의 민간인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단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남에 의해 희생된 남의 민간인들도 결코 그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민족상잔이 빚은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휴전선이 그어지고 분단이 고착되자 남과 북은 서로가 오갈 수 없는 가장 먼 지역, 따라서 가장 먼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본을 가리켜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들 합니다만, 나라를 침탈하여 36년간이나 무자비하게 짓밟은 그 일본보다 더 증오하는 사이가 되어 더 먼 지역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다가 그것은 아예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남과 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로 인한 남과 남, 그러니까 남남갈등은 갈수로 심해지고 있는데, 진보와 보수의 양대 진영 간 갈등이 그것입니다. 진보는 보수를 향해 수구꼴통이라 조롱하고, 보수는 진보를 보고 종북좌파, 또는 좌빨이라 헐뜯습니다. 물론 6.25의 가슴 아픈 산물입니다.

전쟁 발발 전 북의 공산 치하 학정에 못 이겨서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온 사람이 많았고, 전쟁이 시작되자 피난하여 남하한 사람 또한 많았는데, 그 중에는 토지를 몰수당한 지주 계층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떻든 이들 모두는 북의 공산정권에 치를 떨었던 사람들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당한 고초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기야 이는 남하한 북의 사람들에만 한한 것이 아니지요. 전쟁 중의 남에서도 공산군이 지나가거나 공산당이 머문 곳 사람들, 그 중에서도 기독교인들은 그들이라면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러니 남이 북을 향해 이를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한 남남갈등은 전혀 당연하지 않습니다. 남의 좌파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구의 그것처럼 나라를 위한 좌파이지 이 땅의 우파가 말하는 것처럼 종북도 좌빨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 우파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남 대한민국은 진즉에 공산화되었어야 맞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처럼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요. 진영 간의 갈등은 진영논리를 배태했는데, 그것이 옳고 그름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탓입니다. 자신이 속한 진영이 하는 일은 다 옳고 상대방 진영이 하는 일은 모두 그른 것이 되었습니다.

기독교라고, 크리스천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다른 면에서는 신앙을 곧잘 지키는 것 같다가도 진영에 연관된 일에는 신앙이고 무엇이고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소용없습니다. 자기 진영이 하는 일이면 다 선이고, 상대 진영이 하는 일이면 모두 악입니다. 좌파도 우파도, 진보도 보수도 다 그렇습니다. 그런 토양이 목사 아닌 목사 전광훈 같은 사람을 있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의 공작원이 개입하여 벌어진 폭동이라 해도 맞다 합니다. 친일파의 다른 이름 토착왜구라는 말만 나와도 이성은 남의 것이 됩니다. 진보 쪽도 다르지 않습니다. 보수 쪽에서 하는 일이라면 묻지도 않고 따져보지도 않은 채 반사적으로 수구꼴통들이 하는 짓이니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 치부해 버리고 맙니다.

기독교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하나님을 믿는 종교 아닙니까. 예수를 구주, 구원의 주로 믿어 구원에 이르는 종교 아닙니까. 그리고 그 믿음이 낳은 삶이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綱領; 근본이 되는 큰 줄기)이니라.>(마22:37-40)

이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에서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랑의 중심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마25:40), 곧 사회적 약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이, 교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진영논리 앞에서는 발바닥의 때만도 못하게 됩니다. 사랑을 미움으로 대체합니다. 자기 진영과 다른 입장을 취한 사람을 보면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발끈하는 것을 넘어 저주성 비난도 서슴지 않습니다. 수구꼴통이나 종북좌파라는 말은 점잔한 편에 속할 정도가 됩니다.

진영논리, 패망의 지름길이요 나라를 베는 칼날입니다. 신앙은 이로 인해 이미 빈사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 되게 한 원흉은 6.25입니다. 그 원죄는 한국전쟁에 있습니다.

아니지요. 아닙니다. 원죄는 일제(일본제국주의)에 있습니다. 우리가 겪은 일제 36년에 있습니다. 그 36년은 우리에게 치욕과 극한의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들이닥친 소련과 미국은 우리 한반도를 두 동강으로 잘라놓았습니다. 국론도 찬탁, 반탁으로 갈라놓았습니다. 북은 소련의 사주를 받은 찬탁이 득세하여 김일성 정권이 들어섰고, 남은 반탁의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8.15 광복은 진정한 광복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찾은 빛으로 인해 우리민족이 누린 기쁨은 찰나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외세에 의해 얻은 광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그래서 국토도 국민도 두 동강이가 나 남과 북의 대립뿐 아니라 남남간의 갈등이 생겨 진영논리라는 망국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또 하나 고질(痼疾)이 되어 뿌리가 완전히는 뽑히지 않은 병폐가 있는데, 외세에 의존하는 사대적(事大的) 의식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70여 년 동안이나 견디며 민족의 우수성을 끄집어내는 데에 성공하여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선진열강에 들게 된, 자타가 공인하는 어엿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일전에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에미상을 수상하여 총 6관왕의 영예를 안은 <오징어게임>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냥 어쩌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생충> <미나리> 등과 이어진 우리민족의 우수한 예술 혼 발로의 한 단면입니다.

그런 우리를 일제는 열등하기 그지없는 민족이라며 짓밟았습니다. 자기네는 아무리해도 우리말을 잘할 수 없는데, 우리는 자기네 말을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게 잘하는 것을 보고 식민지 재배를 받기에 알맞은 민족이라 했습니다. 그러며 민족정신, 민족혼까지 말살하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3.1운동입니다. 자주와 독립을 열망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는 염원으로 일어난 것이 3.1운동입니다. 비록 우리의 힘만으로 얻은 광복은 아니지만, 그래서 분단의 아픔을 이제껏 격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도 이제 명실공히 자주와 독립을 오롯이 되찾아 누릴 때가 되었습니다.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협력할 것은 서로 협력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하며 우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남도 북도 다르지 않습니다. 크리스천도, 논-크리스천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도 야도, 좌와 우도, 진보와 보수도 같습니다.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좌라고, 그리고 우라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같은 진영보다 상대 진영과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개인적인 차까지도 진영논리는 블랙홀이 되게 합니다.

진영논리는 블랙홀입니다. 나라를 패망케 하고 하나님까지도 외면케 하는 블랙홀입니다. 그런데 특히 우리 크리스천은 그래선 안 됩니다. 우리가, 특히 크리스천이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나라는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고, 크리스천은 구원을 허사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영혼의 구원을 무위로 돌릴 뿐 아니라, 육적으로도 나라의 쇠퇴를 부르게 됩니다.

아직 늦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깨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 그리고 평등을 만드는 상위 개념 아닙니까. 그러면 됩니다. 진영논리 위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면 됩니다. 방법은 달리 없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자 어디 있나. 믿는 자여, 어이할꼬.> —찬송가515(통256)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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