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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안식과 영혼의 충만한 기쁨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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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9월 16일 (금) 23:20:36 [조회수 : 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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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 명절은 여러모로 순탄치 못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위로부터 올 추석은 그 어느 때보다 명절답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전후하여 명절이 나뉘어 버린 통에 명절의 기분도 쪼개져 버린 듯했고 태풍 이후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그리고 국내 정치 경제의 혼란상은 추석의 풍성함과 넉넉함을 앗아가기에 충분했습니다.

저희 집안 사정도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지난 추석 명절 주일 예배를 마치고 아버지 댁을 찾아뵈었을 때 예기치 못한 복병들을 만났습니다. 어느새 여든을 앞두신 아버지의 몸이 예전 같지 않아지신 것입니다. 명절이면 늘 해오던 나들이 대신 이번 추석에는 아버지의 요청으로 공주의 요양원을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물론 아버지께서 요양원에 들어 가시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판단에 이르렀지만 오고 가는 발걸음도 무거웠고 마음도 편치 않았습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각이 약해지신 아버지는 TV 소리를 크게 틀어 놓으셔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께서 열혈 시청하시는 것은 다름 아닌 종편 방송국의 트로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날은 새벽에 일어나 1부 예배부터 3부 예배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내려와서 추모 공원에서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난 후라 몸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잠 못 재우는 고문이 가장 무섭다 했던가요? 고단한 몸에 잠이 들락 말락 한 상태에서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들려오는 트로트의 향연은 정말이지 저에게 특화된 최악의 고문이었습니다. 

소리 좀 줄여 달라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가도 트로트 삼매경에 빠져서 어린 아이처럼 마냥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노라니 ‘너는 저들의 트로트 노래만큼이나 아버지를 기쁘게 한 적이 몇 번이나 되느냐?’라는 양심의 소리가 들려서 이내 돌아섭니다. 청각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저와 체질이 비슷해서 더위를 많이 타셨는데 이제는 추위에 약해지셨는지 밤에도 온 집안의 창문을 다 닫아버리신 통에 때 늦은 더위와도 씨름해야 했습니다. 2022년 저의 추석 명절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피곤한 몸과 마음, 메마른 영혼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회복의 시간을 갖습니다. 어이 없이 텅 빈 마음에 트로트 노랫소리가 메아리처럼 계속 울립니다. 생기로 부풀어 있어야 할 가슴은 쪼그라들어 있었고 머릿속은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맥박도 어느새 그 심란한 두 박자에 길들여져 몸은 이런저런 욕망에 촉수를 세우고 있고 호흡은 거칠게 들떠있습니다. 비움과 치유와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매뉴얼대로 천천히 핸드폰과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하고 이번에 이사를 하며 큰 맘 먹고 장만한 1인용 소파에 몸을 맡깁니다. 82번과 170번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바리톤 음색 보다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알토의 음색을 따라 170번을 선택합니다. 

바흐의 칸타타 BWV 170번 ‘Vergnügte Ruh, beliebte Seelenlust(참된 안식과 영혼의 충만한 기쁨은)’이 시작됩니다. 8분의 12박자의 전주가 흐릅니다. 자장가와도 같은 목가풍의 음악이기 때문에 오보에가 쓰입니다. 오보에 다모레(Hautbois d'amour)가 주선율을 담당하지만 겹 리드 목관악기의 특성상 날카로울 수 있기에 바흐는 제1 바이올린으로 하여금 같은 음을 내게 하여 그 음색을 포근하게 감싸주게 했습니다. 8분의 12박자는 탁월한 선택입니다. 커다란 4박자가 주는 안정감 속에서 3박자의 흐름이 지속됩니다. 3박자는 인간의 본능적인 박자인 2박자를 해체합니다. 반대로 트로트는 그 본능적인 2박자를 극대화 시키는 음악이지요. 그래서 흔히들 트로트를 뽕짝이라고 일컫습니다. 3박자의 흐름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요람처럼, 아가의 심장 박동과 숨소리에 맞춰 부드럽게 움직이는 엄마의 품처럼 움직입니다. 두박자의 경직은 그 부드럽고 평안한 품격에 힘을 잃고 사그라들다가 이내 녹아내리고 맙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도 느긋하게 이완됩니다. 

바흐 칸타타 170번은 특이하게도 합창이나 다른 성악 파트 없이 여성의 저음 파트인 알토 솔로를 위해 작곡되었는데 같은 음역대인 남성 카운터 테너의 목소리로 더욱 많이 연주됩니다.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총 5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곡은 1726년 삼위일체 주일 후 6번째 주일에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 교회에서 처음으로 연주되었습니다. 여덟 마디의 자장가와도 같은 전주를 지나 알토 솔로의 음색이 자연스럽게 연결 됩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가사 또한 너무나도 평안합니다. 

Vergnügte Ruh, beliebte Seelenlust,
Dich kann man nicht bei Höllensünden,
Wohl aber Himmelseintracht finden;
Du stärkst allein die schwache Brust.
Drum sollen lauter Tugendgaben
In meinem Herzen Wohnung haben.
참된 안식과 영혼의 충만한 기쁨은 
어둠의 죄 가운데에서는 찾지 못하리니
오직 하늘의 조화 가운데서만 누릴 수 있어라;
오직 그 안에서 당신의 약한 마음 강건케 되리니
주께서 주시는 온갖 순전한 미덕이
내 마음에 머물러 가득하리라.

세상의 그 무엇도 침노할 수 없는 참된 안식과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영혼의 기쁨은 세상 가운데서가 아니라 하늘과 인간의 조화, 천국의 하모니(Himmelseintracht)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발견되고 누릴 수 있습니다. 하늘의 조화는 부드럽고 조용해 보이지만 세상 힘에 이리저리 치이며 연약해진 우리의 영혼은 오직 그 안에서 참된 내면의 평화를 누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강인한 삶의 힘으로 발현됩니다. 그 힘을 가지고 삶을 펼쳐나가며 사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하나님이 주시는 순전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lauter Tugendgaben)덧입게 됩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들이 우리 마음에 머물면서(In meinem Herzen Wohnung haben) 우리는 조금 더 하나님 나라와 예수의 마음에 가까워집니다. 

명절은 지났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힘은 세상으로부터, 어떠한 조건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에 세상 탓을 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려 주시고 우리 안에서 발현된 힘을 통해 남은 한 해를 힘차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힘은 극대화된 본성이 아니라 천국의 하모니, 참된 안식과 영혼의 충만한 기쁨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https://youtu.be/E-GM0fUE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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