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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빛깔 십자가의 공동체
손원영  |  sohnw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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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9월 16일 (금) 00:17:11
최종편집 : 2022년 09월 16일 (금) 00:17:41 [조회수 : 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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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의 조지아(옛 그루지야)를 다녀온 한 지인으로부터 포도나무로 만든 아주 인상 깊은 십자가를 선물 받았다. 일명 ‘니노 포도나무 십자가’이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조지아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포도주를 생산한 곳 아닌가? 그리고 4세기 초 조지아에는 여성 선교사 성 니노(St. Nino)가 최초로 복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그래서 니노 포도나무 십자가라고 이름을 붙일 듯하다. 그 모습은 다른 십자가와 달리 두 나무가 겹치는 곳에 여성 선교사의 긴 머리카락을 상징하는 털실로 두 나무를 연결하였고, 또 십자가도 아래로 약간 휘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십자가는 척박한 땅에서도 수십 미터 깊이로 뿌리를 내리고 또 맛난 포도를 만들어내는 포도나무처럼, 마치 조지아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고난 속에서도 결코 흔들림이 없는 깊은 신앙심을 표현해 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십자가는 신앙공동체가 복음의 진리를 자신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기독교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이제는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십자가는 본래 기독교의 상징이 되기 이전에는 로마제국의 형틀이었다. 특히 그것은 국가반란죄와 같은 가장 큰 범죄인들을 고문하고 또 사형시키는 도구였다. 예수도 바로 그 형틀에 달려 로마 당국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형틀이 기독교의 가장 고귀한 진리를 담아내는 상징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주의 상징이 복음의 대표 상징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교회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논쟁이 있었고, 또 수많은 신자들의 종교체험이 그것에 덧입혀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묵묵히 증언하였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시려온다.

십자가가 언제부터 모든 교회의 예배당에 장식되는 기독교의 대표 상징물로 공식화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볼 때, 초대 교회 때에는 ‘십자가’ 뿐만 아니라 ‘물고기’ 모양이라든가 ‘어린양’ 혹은 ‘목자’ 등 다양한 것들이 기독교를 표시하는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기독교가 박해의 시대를 끝낸 주후 4세기 초 로마 당국에 의해 공인되고 예배당을 당당히 건축할 수 있으면서부터 아마도 십자가가 교회의 대표 상징물로 정착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십자가가 초대 교회 때부터 신자들 사이에 복음의 의미를 가장 잘 함축한 상징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앞장서서 설파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사도 바울이다. 그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로마 문화 속에서 살던 당시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무릅쓰고 이렇게 고백하였다.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갈 6:14a) 이런 점에서 보면 사도 바울은 십자가 상징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한국 교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십자가 상징물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십자가가 너무나 ‘낭비’ 되는 현상 때문이다. 예컨대, 교회당이 많이 늘어나면서 한 상가에 여러 교회가 입주해 있고 또 그들 모두가 각자 자신들의 십자가를 세우면서 십자가 공해를 일으켰다. 그리고 신자들은 십자가 문양을 지나치게 우상화하거나 심지어 ‘부적’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재수 좋은 일이 생기기를 비는 마음으로 십자가 목걸이나 십자가 반지를 몸에 지니고, 또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십자가를 차에 달고 다닌다. 말하자면 십자가 부적인 셈이다. 십자가의 색깔도 예수의 ‘보혈’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붉은색’ 십자가만을 거의 획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 교회의 부패를 반성하는 분위기나 환경운동 등의 영향으로 붉은색 십자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늘어나면서 십자가 사용에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참 다행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주변을 둘러보면, 십자가의 색깔도 녹색이나 흰색이 많이 보이고, 심지어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 흥미롭다. 

그렇다면 십자가 부적을 넘어선 십자가 상징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에 ‘예수의 흔적’ 곧 십자가를 새기는 일이 아닐까? 마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마음 판에 율법을 새기라”(렘 31:33)라고 말한 것이나, 또 사도 바울이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갈 6:17)라고 선언한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그 말의 의미는 예레미야와 바울이 각각 실제로 자신의 몸에 율법 문신이나 십자가 문신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속에 율법과 십자가의 의미를 새겼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막 8:34)라는 예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정성껏 실천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덧붙여 앞서 언급한 십자가의 ‘상징’(symbol)과 관련하여 한 가지 논의를 좀 더 부언하자면, 기독교 복음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십자가의 상징은 어느 하나의 의미로 축소될 수 없다는 점이다. 상징이 어느 하나의 의미만을 가진 ‘기호’(sign)로 축소될 때, 상징은 그 풍부한 상징의 지위를 잃고 부적으로 추락한다. 마치 교통신호등의 빨간불 신호가 우리의 안전을 위해 ‘멈추라’(stop)라는 하나의 뜻만을 품듯이 말이다. 하지만 십자가는 결코 ‘기복’(祈福)이라는 하나의 기호로 축소될 수 없다. 십자가 상징은 그 이상이다. 그래서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인간의 죄와 심판, 그리고 온 인류를 하나 되게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비와 희망 등 다양한 의미가 풍성하게 내재되어 있다.

몇 년 전 필자는 십자가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송병구 목사가 기획한 십자가 전시회에 가본 적이 있다. 그 전시회에는 송 목사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수집한 수 많은 십자가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전시회의 제목은 “십자가-168개의 상징 찾아가기”였다. 십자가에는 적어도 168개의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필자가 거기에서 본 인상적인 십자가는 물두멍 십자가, 녹색 십자가, 춤추는 십자가, 무지개 십자가, 여성교회 십자가, 바하 십자가, 연꽃 십자가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말하자면 세계 교회는 십자가에 대한 다양한 신앙고백과 신학적 해석으로 그렇게 많은 십자가의 모양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 교회의 십자가는 대부분 교파를 불문하고 얼마나 획일적이고 단순하고 밋밋한가? 심지어 어떤 감흥도 베어있지 않은 메탈의 재질로 특정 모양만 고집하고 있다.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한국 교회 신학의 빈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한국 교회는 더이상 획일화된 십자가가 아니라 각 교회 마다 자신의 신학적 해석과 신앙고백을 담아낼 자신만의 고유한 십자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마치 조지아의 니노 포도나무 십자가처럼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 그 십자가의 의미를 묵묵히 실천하는 진정한 십자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꿈꾸는 교회는 ‘부적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기꺼이 살아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로 그걸 당당하게 표현하는 ‘자기 빛깔 십자가’의 공동체이다. 

손원영 (서울기독대학교 교수)

 

* 이글은 손원영 저 <내가 꿈꾸는 교회>(모시는사람들, 2021)에 실린 글을 수정하여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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