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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강한 추석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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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9월 14일 (수) 23:36:54 [조회수 : 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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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은 호강을 누렸다. 나 딴에는 호강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음식을 하여 동생을 찾으러 가곤 하였다. 그래서 이것저것 명절 음식을 하느라 하루 이틀 파김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뀌었다. 본래 연휴 내내 옆집으로 이삿짐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려 하여 음식도 안하고 동생을 만나러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추석 전날 동생이 식사 한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빈손으로 가게 되었다. 무엇을 먹을 것인지 딴에는 걱정했는데, 동생은 내게 상추와 쌈장만 가지고 오면 된다고 하였다. 점심시간 맞춰서 갔더니 동생이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송이밥과 물김치, 그리고 선물로 들어온 고기를 구워 주었다. 난 상추를 씻고, 파 겉절이를 무쳤다. 그리고 이웃의 사모님이 주신 약간의 전을 내놨다. 동생에게 처음으로 받아본 밥상이었지만 누나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밥상이었다. 그 미안함이 커서인지 밥을 먹는데 자꾸 목이 메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두 개의 명절 음식은 해가지고 왔어야 했는데 말이다. 미안함도 컸고 또 고마운 마음도 컸다. 두 마음이 교차한 가운데 간만에 배가 부르도록 밥을 먹었다. 숟가락을 놓으며 “내가 너 덕분에 호강한 추석 밥상을 얻어먹었다.”며 슬며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갈수록 귀찮음이 커진다. 특히 음식에 있어서는 더 그런다. 혼자 지내는 횟수가 길어지고 나이 오십을 넘으면서 스스로 밥을 챙겨먹는 일이 뜸해졌다. 시골이라 외식하는 일은 별로 없다. 식사 시간을 건너뛰거나 아니면 밥보다는 면 위주로 간단하게 끼니를 채우려고 한다. 그리고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다 보니 식사를 한다기보다 끼니를 때운다는 식이 커졌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순간 엄마가 생각났다. 돌이켜보니 엄마의 식사도 혼자 드실 땐 매번 간단했다. 밥맛이 없으시다며 물에 밥을 말아 드신다든지 아니면 간장이나 짠지 하나로 대충 끼니를 챙기셨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는 밥그릇에 타서 드시는 것을 종종 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무엇을 먹든지 이쁜 그릇에 담아 드시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너도 내 나이 되면 안다고 하셨다. 엄마의 그 모습이 싫어 나는 안그러겠노라 하였는데, 어느새 나도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 뭐, 꼭 엄마를 닮아가는 것만은 아니리라. 내 주위에 혼자 사시는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 그분들도 거의 나와 비슷하게 드신단다. 요즘 아무리 혼밥족이 많다고 하고, 나도 이젠 어디가서 혼밥을 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느끼는 것이 밥은 역시 둘 이상이서 먹어야 제 맛이라는 것이다. 혼자서는 귀찮음이 발동하기 쉬워 설렁설렁 넘어가려 한다. 그러나 만약 내가 다른 누군가와 식사를 한다고 하면 좀 격식을 차려 밥상을 차릴 것이다. 국도 끓일 것이고, 밥도 갓 지은 밥을 상 위에 올릴 것이다. 그리고 반찬도 두서 가지의 나물류로 정성을 담아 내놓을 것이다. 아, 갑자기 따뜻한 밥과 국이 먹고 싶구나. 

이번 추석엔 또 열심히 짐들을 날랐다. 허리가 휠 정도로 말이다. 지난번 글을 쓸 때 지금의 집이나 이사를 가는 집이나 도찐개찐이라 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연휴 내내 이집에서 저집으로 짐들을 날라 정리를 하면서 지금의 집도 그렇거니와 새로 갈 집도 모두 나에겐 과분한 집임을 깨닫고 있다. 어제 큰 짐이라 할 수 있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옮겼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뺀 자리가 어찌나 넓어 보이던지, 그리고 새로운 둥지에는 어찌나 잘 맞든지. 한쪽은 비워지고, 한쪽은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참 많은 짐들과 씨름하면서 살아왔음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비우고 버리는 것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그동안 많은 짐들과 더불어 살아온 것이다. 좁은 시골농가에 방과 주방과 마루에 짐들을 쌓다쌓다 나중에는 내가 지나가기 벅찰 정도가 되기도 했다. 지금 그 많은 짐들을 정리하고 버리고 있다. 냉장고 청소를 하면서는 그나마 이사를 하니까 냉장고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음을 보았다. 작은 것들이지만 저절로 감사의 마음이 생겨났다. 혼자서 조금씩 옮기는 중이라 아직 어수선하긴 하지만 그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은 망치와 드릴과 집 주위에 널려있는 것들로 목수일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배수로를 파고, 어느 날은 지붕 차양막을 만들며, 어떤 날은 도장을 한다. 전문가의 손길은 아니지만 나의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을 하나씩 그려내고 있다. 마치 내 속에 숨겨져 있던 재능을 발견하고 꺼내는 재미랄까.

그래서 이번 추석은 호강한 시간이었다. 동생에게 받은 추석 밥상도 그렇고, 짐을 정리하고 옮기면서 깨닫는 수많은 생각들 그리고 내 손으로 집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보는 것 등 작은 것들이지만 나에겐 의미가 있는 순간이었다. 집이 다 정리되면 그때는 내가 누군가에게 호강을 맛보게 해주리라.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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