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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표음식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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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9월 13일 (화) 23:58:40 [조회수 : 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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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목사로서 살아가고 있기에 존 웨슬리 목사의 나라인 영국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다. 그래서 영국의 대표적인 영화 007시리즈도 재미있게 보았고, 아직은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웨슬리가 전도여행을 했던 그 여정을 한번 여행해보고 싶은 소망도 가지고 있다. 웨슬리의 나라 영국의 음식은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얇은 책은 독일의 유머책과 영국의 요리책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전부터 유럽에서는 영국 요리에 대한 악명이 높았다. “미국작가 마거릿 홀시는 “영국인들이 맛있는 음식이 있는 지역들을 차지하다가 대영제국이 세워졌다”는 유머를 남길 만큼 영국요리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

영국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나라임에도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다. 대구, 청어, 굴 정도를 제외하면 영국인들의 해산물 요리 수요는 거의 없었고 인기가 없으니 발전도 안되었다. 이유가 있었다. 영국이 위치한 북해가 굉장히 거칠고 자연재해가 잦은 해역이기에 앵글로색슨족과 노르만족은 바다를 죽음의 공간으로 간주했고, 그곳에 사는 생물들도 괴물이라 하여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요리는 육식, 그 중에서도 쇠고기 요리가 발전했다. 영국인들은 유럽에서 쇠고기를 가장 좋아하는 민족이었다. 그들의 켈트족 선조들은 기원전부터 이미 영국 섬들에 소 사육 문화를 구축했으며, 로마인들도 43년에 영국을 침략하면서 소 떼를 이끌고 왔기에 소 사육 문화가 영국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영국의 봉건 군주들과 지주 계급의 쇠고기 탐식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심지어 빅토리아 시대(1837-1901) 후기까지도 귀족과 상류층 계급은 화려하게 차려진 고기 만찬을 즐겼다. 물론 부자들만 그렇게 쇠고기를 먹었고 가난한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육류, 소고기를 좋아했지만 해산물요리는 발달하지 않은 독특한 섬나라, 요리에 대한 악명이 높은 영국에서 지금도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영국의 대표음식으로 전 세계에 퍼진 음식이 있는데 바로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이다. 피시앤칩스는 흰살생선튀김에 두껍게 썬 감자 튀김을 곁들여 식초를 뿌려 먹는 아주 간단한 요리이다.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음식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대단했다.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에는 조금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다. 이 음식을 구성하는 ‘튀김’모두가 영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어온 요리이기 때문이다. 생선튀김의 경우엔 17세기 경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건너온 유대인들이 영국에 전파하기 시작했는데 사순절과 매주 금요일마다 육식을 금하는 기독교전통을 벗어나고자 약간의 꼼수를 사용하여 물고기를 튀겨 만든 요리에서 비롯되었다. 

1500년대 초반이 되면 스페인 포르투갈에 식초를 뿌린 생선튀김 요리가 여럿 있었다. 이를 포를투갈 선교사들이 일본에 가져가 탄생한 것이 일본의 튀김 덴푸라이고 유대인들이 영국에 가져간 것이 바로 피시앤칩스라고 한다. 1492년 알함브라 칙령(Alhambra Decree)으로 인해 스페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개종하든가 떠나든가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이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이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들이 스페인에서 먹던 ‘생선튀김 요리’도 같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영국에선 이 생선튀김 요리가 유대인들과 관련된 음식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또한 감자 역시 프랑스인들이 만든 튀긴 감자, 즉 프렌치프라이 요리가 영국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이 튀긴 감자를 좋아하게 시작했다. 

1860년 동유럽에서 이민을 온 유대인 조셉 말린(Joseph Malin 1922-2015)이 이 두 튀김을 함께 가난한 공장 노동자들에게 팔았던 것이 바로 피시 앤 칩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조셉말린에 의해서 런던 최초의 피시앤칩스 가게가 탄생한 것이다. 저렴하고 단백질이 풍부한 대구와 당시 유럽에서 보편적인 식재료가 된 감자를 튀긴 고열량 식품인 피시앤칩스는 가난한 영국 노동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영국의 습하고 좋지 않은 날씨 때문에 맥주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고소한 기름으로 튀긴 생선요리는 당연히 인기가 있었다. 빨리 소화도 되지 않고 칼로리가 높으니 노동자들에게 딱 맞는 음식이었다. 주로 길거리 가판대에서 판매되었던 피시앤칩스는 번듯한 포장 용기 없이 그냥 신문지에 둘둘 싸서 판매되었고 이를 받아든 사람은 길가나 공원 벤치에 앉아 손으로 집어 먹었다. 

이후 기존의 어선에 비해 속도가 훨씬 빠른 증기어선의 등장으로 좀 더 먼 바다까지 나가 생선을 잡아올 수 있게 되며 또한 철도가 항구와 도시 곳곳을 연결하여 신선한 생선공급이 가능해짐으로써 피시앤칩스는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제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피시앤칩스는 영국인들이 끔찍한 전쟁 기간을 견디게 해주는 ‘위로의 음식’이 되었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대부분의 식료품이 ‘배급제’로 바뀐 상황에서 생선과 감자는 이 배급제에서 제외된 몇 안 되는 식품이었다. 즉 배급된 음식을 제외하고 영국인들이 허기를 달랠 수 있던 것이 바로 피시앤칩스였던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처칠은 피시앤칩스를 ‘훌륭한 동반자’로 칭했는데 즉 전쟁을 견딜수 있었던 것,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다 피시앤칩스 덕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피시앤칩스는 모든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영국의 대표 요리로 자리잡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영국의 해외 식민지로까지 전해졌다. 캐나다와 호주는 말할 것도 없고,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에서도 피시앤칩스는 영국계 이민자들이 주로 찾는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에서 매년 약 3억 개 이상 판매될 정도로 영국인들의 ‘소울푸드’가 된 피시앤칩스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식재료 가격이 오르면서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주재료인 대구는 40% 이상이 러시아 해역에서 생산되는데 수입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대러제재 조치로 35%의 관세까지 부과돼 가격이 올랐고 우크라이나산 해바리기씨유가 전쟁 여파로 수입되지 않으면서 가격이 84%나 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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