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김명섭 목사의 말씀학교
“무엇이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드나?” 요한계시록 9장 7절~18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2년 09월 06일 (화) 14:48:47 [조회수 : 1354]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무엇이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드나?” 요한계시록 9장 7절~18절

 

 

1.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

 

① (7절~10절)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또 철홍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 무저갱에서 올라 온 황충의 정체는 무엇인가? 황충의 모양을 자세히 기록하면서 동시에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일부 신학자들은 황충을 문자 그대로 메뚜기 재앙이나 상징적으로 이슬람 군대, 이단 세력 등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문맥을 살피면 기괴한 황충의 모양이 아니라 황충의 원인과 목적에 주목해야 한다. 황충은 하나의 특정한 존재가 아니라 시공을 넘어 패역한 인류를 향해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도구를 가리키는 ‘은유(隱喩, metaphor)’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황충은 인간의 지나친 탐욕과 무분별한 오만에 의해 야기된 정확히 알 수 없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미증유의 존재를 통칭한다. 마치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전대미문의 재앙을 가리키는 은유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은유적인 표현이 금이 곧 시간이라는 말이 아니라 ‘시간이 소중하다’는 뜻이듯, 코로나 바이러스가 곧 황충이라는 말이 아니라 황충이 인간의 지나친 탐욕과 무분별한 오만으로 야기된 코로나와 같은 미증유의 재앙을 가리킨다는 의미다. 일명 코로나 바이러스의 ‘코로나(corona)’는 라틴어로 ‘왕관(crown)’이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바이러스의 형상이 마치 왕관의 모양을 한 돌기의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 대유행은 불안과 공포의 왕관을 쓰고 온 세상과 온 인류를 다스렸다. 중요한 사실은 알 수 없는 황충의 정체를 추측하기보다 황충과 같은 기괴한 재앙의 의미를 깨닫고 탐욕과 오만으로 치달았던 삶의 방식을 돌이켜 회개하는데 핵심이 있다.

 

② (11절)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 황충들의 우두머리가 무엇인지 이름을 적시한다. 히브리로 ‘아바돈’은 파괴, 멸망이고 헬라어로 ‘아볼루온’은 파괴자, 살인자다. 한마디로 황충들의 우두머리는 대적자 사단(Satan)이다. 예수를 판 가롯유다만 손가락질하기보다 그를 주장하는 사단을 봐야 한다.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요 13:27)” 현상만 보지 말고 본질을 봐야 한다. 재난과 재앙의 이면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류를 고통에 빠지게 하는 영적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탄소중립을 실현하지 못해서 지구의 평균온도가 3도까지 상승하면 지구는 생지옥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무저갱은 지옥의 별칭이다. ‘무엇이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드나?’ 인간의 지나친 탐욕과 무분별한 오만이다. 감염병의 대유행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에 대한 대자연의 역습이다.(김양중.『자연의 역습, 감염병』, 미래아이, 2020) 코로나만 바라보지 말고 코로나를 일으킨 인간의 탐욕과 오만을 볼 수 있는 통찰이 요구된다. 코로나와 싸울 게 아니라 코로나를 일으킨 인간의 탐욕과 오만과 맞서 싸워야 한다. 코앞에 닥친 극심한 기후 재앙의 원인도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의 극복이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는가?’ 지금 우리는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왕 노릇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교만과 거짓의 왕 사단으로 인해 파괴와 멸망의 대위기를 맞이했다. 이제라도 ‘진리와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회복될 때 세상은 생명과 평화로 구원받게 될 것이다. 생지옥 같은 세상에서 다시 사는 길은 기괴한 재앙의 의미를 깨닫고 탐욕과 오만으로 치달았던 삶의 방식을 돌이켜 회개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18~20)”

 

③ (12절)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 황충들로 인한 재앙의 목적은 ‘괴롭게 하는 고통’, 곧 고난이다. 고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의를 위한 핍박과 죄로 인한 징계다. 의를 위한 핍박은 믿음으로 인내해야 하지만 죄로 인한 징계의 고난은 자성과 성찰을 통한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19의 전대미문의 재난은 의를 위한 핍박이 아니라 죄로 인한 고난이다. 안타깝게도 재난이 속히 지나가길 하염없이 기다릴 뿐 일말의 자성과 성찰, 회개는 없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도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계 9:20~21)” 이런 이유에서 코로나19의 전염병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재난의 시작이다. 불행하게도 제2 제3의 재앙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재앙(재난)이 계속되는 이유는 회개치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또다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코로나 대유행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다. 창조 질서를 거역하던 오만한 인류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를 원하신다.

 

 

2.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

 

① (13절)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 여섯 번째 재앙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기록한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나온 하나님의 음성으로부터 시작된다.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다. ‘큰 강 유브라데’는 하나님을 대적했던 상징적인 공간을 가리킨다.(선악과를 범한 에덴동산, 바벨탑을 쌓은 시날평원) 한마디로 ‘범람한 유브라데 강’은 피조물에 불과한 유한한 인간이 스스로 한계선을 넘어 하나님 같이 되려고 했던 인간의 교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이다.

 

② (14절~15절)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 앞서 살펴본 모든 재앙과 마찬가지로 여섯 번째 나팔의 재앙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자 심판주시다. 하나님은 축복만 아니라 재앙도 내리시고 주관하신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하셨나이다(욥 1:9~10)” 축복의 원인을 사단은 알고 있지만 우리는 모르고 산다. 언제나 칼, 불, 대풍의 재앙이 도사리고 있지만 평안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산울로 지켜주셨기 때문이다. 눈앞에 벌어지는 재앙만 보고 재앙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재앙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심판(재앙)은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사건이며, 우리 편에서 보면 고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고 마침내 구원으로 나가는 과정이다. 결박에서 풀려난 네 천사는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네 천사는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을 수행했던 천사와 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수행하는 심판의 천사다. ‘그 년 월 일 시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들에게 예비하신 준비된 재앙이다. 그 날과 그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알려주지 않은 것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다만 그 날을 이미 확정하셨다는 사실이다.

 

③ (16절~18절)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마병대의 수는 문자적으로 이 억 명의 숫자가 아니라 셀 수 없는 많은 군대를 의미한다. 본문은 마병대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모습이라 무엇인지 그 분명한 정체를 알 수 없다. ‘그 날과 그 시’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듯이 마병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 날에는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라는 말씀을 통해 마병대가 말을 탄 기사들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앞서 6장 일곱 인의 재앙에서 첫째, 둘째, 셋째, 넷째 인을 땔 때 등장한 네 기사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흰 말 탄 기사-전염병, 붉은 말 탄 기사-전쟁, 검은 말 탄 기사-기근, 청황색 말 탄 기사-죽음’과 같은 극심한 재앙을 몰고 오는 존재다.

 

3. 세 가지 무기, 불과 연기와 유황

 

① (18절)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 이 대목을 메시지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들은 이 세 가지 무기, 곧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인류의 삼분의 일을 죽였습니다.” 마병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마병대로 인해 특정한 시점에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음을 당하는 재앙이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과거에는 인류의 삼분의 일을 단번에 죽이는 무기를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인류의 삼분의 일을 단번에 대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바로 ‘핵무기(Nuclear weapon)’다. 핵무기 폭발로 인한 피해는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 섬광과 함께 발생하는 강풍을 동반한 폭풍파로 폭발 반경에 있는 모든 사물들이 일시에 소멸한다. 둘째, 수천만 도에 달하는 열복사선으로 주변의 모든 사물이 순식간에 불살라진다. 셋째, 핵폭발로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방사능 낙진에 의한 사망이다. “미국-러시아 핵전쟁 시 53억 명 사망... 인류 70% 전멸 (2022.08.16. 조선일보)” 최근 미국 럿거스대 연구팀은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전면적인 핵전쟁을 벌이면 핵폭발로 인한 폭발·열·방사능 등에 따른 직접적인 사망자를 넘어 1억 5천만 톤의 연기와 그을음, 먼지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기후 변화(핵겨울)로 3~4년 뒤에는 세계 식량 생산량의 90%가 사라져서 53억 4100만 명에 달하는 인류의 약 70%가 전멸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② (벧후 3:7~13)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요한계시록에서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여섯째 나팔 재앙’은 불과 백년 전만해도 쉽게 해석할 수 없던 말씀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불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에 관한 사도 베드로의 경고가 당장 눈앞에 현실이 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긴박한 핵전쟁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성경이 전하는 종말과 심판의 메시지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모든 성경의 말씀이 그렇듯 우리의 인생과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는 깨어있는 삶을 촉구한다. 내일 주님이 오셔도 부끄럽지 않고 후회 없는 오늘을 만끽하는 사는 참된 삶을 선포한다. ‘주님, 비록 내일 온 세상이 불로 멸망할지라도 오늘 나에게 맡겨진 삶을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김명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