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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장마에 효농(孝農)이 있을까?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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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8월 24일 (수) 22:35:13 [조회수 : 2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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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장마가 멎어 가는가. 그렇다면 기분 좋은 일이다. 핸드폰의 일기 예보를 살피면 중간 중간 빗방울 표시가 있지만 그래도 지난주까지의 일기 예보에 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예보다. 누구는 비가 좋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듣고 빗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고 한다. 또 그런 날은 일부러라도 도시 외곽으로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고 온다고 한다. 나와는 전혀 다른 정서다. 오늘 아침에도 문을 열었더니 땅이 젖어 있었다. 간밤에 안녕하셨냐며 반갑게 바라보는 한라에게 “한라야, 또 비가 오네. 이젠 그만 와도 되는데. 그렇지?”라고 말하자 한라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습관적 반응인지 힘차게 꼬리를 흔들고 네발을 구르며 나의 말에 답을 하였다. 주인에게 충성의 자세를 보이는 한라와는 달리 오로지 자신들의 배고픔만 생각하며 어서어서 밥을 달라고 졸라대는 냥이들은 정말 얄밉다. 수년에 걸쳐 냥이들에게 “나는 너희들의 주인이야.”라고 아무리 교육하고 훈련을 시켜도 녀석들은 코방귀만 뀔 뿐이다. 요즘은 지난 4월에 태어난 자묘들이 이전의 자묘들과는 다르게 더욱 설쳐대는 바람에 하루에도 서너 번은 쓸데없는 실랑이가 오고 간다. 

장마가 길어지는 가운데도 절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8월 초에 입추가 있었고, 엊그제는 처서였다. 가을에 들어서는 입추를 맞고는 정말 신기하게도 그 종일 뜨거웠던 열기가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게 바뀌었다. 한증막 같은 방안에서 선풍기와 씨름을 하던 때가 분명 어제 오늘이었는데, 그 밤에 공기는 달라졌다. 물론 집안 기온은 여전히 30도를 기준으로 오르락내리락 하였지만 입추 전의 30도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런 것을 두고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보인다 하는 것일까? 역시 무엇이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지만, 깨달음이란 매번 상황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니 철이 들려면 아직도 멀었다. 

이주 전 장대비가 쏟아진다는 소식에 부지런히 참깨를 베었다. 꽤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말리려고 세워놓으니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살짝 실망이 들었다. 게다가 열매가 보이는 만큼 굵지도 않았고 잘 여물지도 않았다. 윗부분은 열매가 여물다 멈춰버려 노랗게 말라갔다. 완전 쭉정이인 셈이다. 매년 밑부분의 꼬투리가 벌어지면 참깨를 베다가 흙에 흘리는 것이 다반사라 이번에는 열매도 실해 보이고 비도 오고 또 이웃 전문 농부들도 일찍 수확하길래 3주 정도 일찍 베었더니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비는 쉬지않고 내려 참깨대가 마를 리 만무했다. 거무죽죽하게 변해가는 줄기와 잎과 열매꼬투리를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혹여나 냥이들이 용변을 보지 않았는지, 수탉이 떨어진 참깨만 골라먹고 가지는 않았는지 연신 들여다보곤 하였지만 상한 마음은 쉬이 돌이켜지지 않았다. 어제도 참깨를 한참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리며 속상한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이 기나긴 장마에 농사가 어찌 내 맘대로 될 수 있겠는가, 하늘의 이치가 여기까지라 여기고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이웃의 복숭아 재배를 하는 권사님이 마지막 복숭아라며 몇 알 건네주셨다. 이유인즉슨 이번의 기나긴 장마로 낙과가 너무 많아 더 이상 거둘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내 마음이 심히 속상한데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속은 얼마나 타 들어갈까? 더군다나 권사님네는 친환경 유기재배로 하는 것이라 날씨가 좋으면 새와 벌레들의 공격으로, 비가 오면 낙과는 물론 당도가 떨어져 맛이 덜하니 이중삼중으로 고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권사님 내외는 씩씩하다. 속은 문드러질지언정 하늘의 이치에 화를 내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요. 하늘이 하는 것을 내가 어찌 할 수 있나요.”라며 순복하고 마음을 추스린다. 권사님 내외뿐이랴, 이 땅의 흙을 만지는 농부들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런 연유로 설렁설렁 농사짓는 내가 어떻게 하늘을 향해 욕을 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들처럼 묵묵히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오래간만에 콩밭으로 발을 돌렸다. 내려도 너무 내리는 비에 콩은 잘 자랐다. 콩꼬투리도 잘 맺혔다. 그런 콩들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잘 견뎌준 것에 고생한다고, 고맙다고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빌지 않았다. 내가 기대를 한다고 하여 콩들이 내 기대만큼 자라줄 것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시면 주시는대로, 거두면 거두는대로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나긴 장마에 효농(孝農)이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하는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않는 농부들의 거룩한 가르침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철을 좀 들어보련다.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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