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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운동의 성서적 근거가 궁금해요
박도웅  |  동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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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8월 23일 (화) 11:42:40
최종편집 : 2022년 08월 27일 (토) 00:56:01 [조회수 :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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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시리즈 “길을 찾다”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고민과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기 위해 감리회목회자 모임 <새물결>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이 작업이 목회자와 평신도의 균형 잡히고 건강한 믿음의 바탕을 마련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발걸음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여덟 번째 연재를 이어갑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서적 근거가 궁금해요

 

박도웅 목사 (동인교회)

<질문> 요즈음 한국교회 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관한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공산주의를 옹호하며 개신교회의 교세가 줄어드는 원인이라고 하면서 NCCK 탈퇴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한쪽에서는 교회연합운동을 주도하는 중요한 단체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WCC와 NCCK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비성서적인 것인가요? 두 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에큐메니칼운동의 성서적인 근거가 궁금합니다. 또한 두 단체의 차별금지법과 종교다원주의, 동성애와 타종교에 대한 입장과 그 입장에 대한 성서적인 근거가 궁금합니다.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질문자와 같은 염려와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함께 국제적인 연합단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한국의 대표적인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바라보는 시선이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교회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를 그렇게 바라보게 된 이유도 이해는 갑니다. 그 때문에, 질문해주신 것처럼, 두 단체가 실천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성서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단히 논란이 되는 주제들을 성서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지 밝히는 것은 교회의 선교적 차원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제한된 지면이지만 최선을 다해 답해보겠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 이차세계대전 직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범하였습니다. 인간의 잘못된 욕망이 가져온 참혹한 현장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를 기도했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창립부터 참여하였고, 그 전에 열린 예루살렘 선교협의회(1928년)에 신흥우, 양주삼, 김활란, 노블 선교사를 대표로 파견한 바 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창립총회에서 “세계교회협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구세주로 인정하는 교회들로 구성된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였고, 이는 지금도 분명한 신앙고백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지향하는 교회의 일치는 하나의 거대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있는 교회들이 같은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성경적 근거로 삼아 교회의 분열을 치유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전 세계 110개국의 349교회(교단)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미국연합감리교회, 영국감리교회, 캐나다장로교회, 호주장로교회 등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회원이 되려면 기존의 회원교회의 추천과 동의가 있어야 하기에 이단이 가입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 인구의 절반이 넘는 네 개의 회원교회가 협력하며 공동의 선교와 교육, 봉사를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협력을 기초로 1918년 조직된 조선예수교 장감연합회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1924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로 발전하여 감리교회와 장로교회의 범주를 넘어 한국기독교 대부분의 교회와 연합기구들이 참여하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1946년 한국기독교연합회로 재건되었고, 197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 개명하면서 헌장 개정을 통하여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고백을 담았습니다. “본회는 성서에서 가르친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이에 응답하려고 하는 한국에 있는 교회들이 모여 친교와 연구, 협의를 나누는 단체”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현재 기독교대한감리회를 포함하여 대한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한국루터회, 대한성공회, 예수교장로회 통합측,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구세군, 한국정교회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1959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발표한 “에큐메니칼 운동 선언”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의와 의의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에큐메니칼 운동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한 것으로 신조와 직제 그리고 교회정치를 달리하는 세계에 산재한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한 이름 밑에 모여 피차간에 막힌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협동하여 추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둘째,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하여 세계 교회들은 선교와 통일 사업에 대한 증거와 봉사 등의 맡겨진 공동사명을 완수하려고 이제까지의 방법과 노력을 쇄신하기를 힘쓰고 있으며 자신들의 경험을 교환하고 활동의 힘을 규합하여 복음전파의 새로운 분야의 개척을 힘쓰고 있다. 셋째,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하여 세계교회들은 남의 신앙이나 교회제도를 간섭 혹은 비난하지 않고 비복음적인 어떠한 세속적 사상이나 운동과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 넷째,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교회들이 교회의 머리 되시는 한 주님 안에서 피차간에 하나되기를 바라고 있으나 무조건 교회를 합동시키는 단일 교회운동이나 비성서적인 신학사조를 주장하거나 용공운동을 용납하지 않을 뿐더러 공산주의와 로마가톨릭주의 그리고 신앙사상의 혼합주의 등을 절대 배격하고 있다. 다섯째,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국제선교협의회(IMC), 세계기독교연합회(WCC), 세계기독교교육협회 및 주일학교 연합회(WCCE), YMCA와 YWCA의 세계연맹과 기독학생세계연맹(WSCF) 등등으로 이 기관들은 서로 연합하여 그 자체의 맡겨진 사명과 사업을 실천 완수하기 위하여 피차 긴밀하게 상부상조하고 있다.” 이 선언 안에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염려하는 문제들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게 들어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출발하였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최우선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교에 대한 이해와 복음을 전하는 방식에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목적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성서적, 교회사적 근거 

 

  에큐메니칼이라는 말을 낯설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교회와 단체들은 이미 에큐메니칼한 사역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선교와 함께 펼치는 구제와 봉사가 이미 세상을 향한 교회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에큐메니즘”을 교회연합운동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그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에큐메니칼의 어원이 되는 “오이쿠메네”는 원래 희랍어 “오이케오”(oikeo, “살다, 거주하다”), “오이코스”(oikos, “집”)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이 사는 모든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문화적, 정치적으로는 “그리스 문명 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습니다. 이 말에서 하나님의 집의 살림살이의 법칙을 말하는 “경제”라는 Economia라는 말이 나왔고, 하나님의 집의 원리라는 의미에서 Ecologia, 생태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결국 에큐메니칼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식구로 보는 관점입니다. 

우리는 구약성서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근거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가 강조하는 계약의 보편성과 제의의 일치라는 관점은 현대 에큐메니즘과 연결됩니다. 창세기의 창조사건과 그 뒤에 이어지는 민족들의 족보는 보편적 세계사의 구조 안에서 하나님의 계약 백성을 취급하고 있습니다(참조. 창 1, 2, 5, 10장). 아브라함의 계약은 이스라엘 민족과의 배타적인 계약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창 12:1-3; 17:1-8). 모세와 맺은 시내산 계약 역시 구원론적 배타주의보다는 보편적 제사장식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습니다(출19:5, 6). 왕조시대에 들어와 다윗은 전세계적 사명에 대한 의식이 더욱 커졌고(참조. 시9:11; 18:49; 57:9), 솔로몬은 성전을 세운 후, 그 성전이 모든 민족이 야훼를 예배하는 곳이 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왕상 8:41-53). 예언서 역시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함으로 이스라엘의 신앙구조 안에 자리한 보편주의를 보여줍니다(참조. 암 1:3~2:3; 사 13장~28장; 렘 46:51).

신약성서에는 오이쿠메네라는 단어가 15번 나오고, 70인역은 세계, 흙, 혹은 대지를 뜻하는 다양한 히브리어 단어들을 자주 오이쿠메네로 번역하였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오이쿠메네는 대체로 “온 세상”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문화적, 정치적 의미를 갖지 않았으나(행17,31; 마 24,14), 제국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본문들은 있습니다(누가 2,1; 사도행전 17,6). 주후 2세기 경 등장한 초대교회 교부들(이레네우스, 오이세비우스, 오리게네스)은 교회의 활동 영역, 혹은 전체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오이쿠메네를 사용하였고, 서방교회 교부들(예컨대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등)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기도를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7:21).

교회사의 관점에서,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이 출발한 구체적인 이유는 교회의 분열이었습니다. 교회의 분열이 없었다면 세계교회협의회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다섯 번의 큰 분열이 있었습니다. 첫째 분열은,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분열이었습니다. 신앙과 행위에 완전한 일치를 이루었던 사도행전 2장의 교회는 교회내외적인 이유들로 분열되었고, 곧이어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분열은, 5세기 칼세돈 회의로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 하나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현재 중동과 아프리카에 주로 퍼져있는) 오리엔탈정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 양성론을 믿는 (동유럽에 퍼져있는) 동방정교회의 분열입니다. 이 동방교회의 두 가족은 분열된 지 1,500년 만에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함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세 번째 큰 분열은, 동방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인 서방교회의 분열입니다. 이 분열은 교권 때문에 일어났고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16세기 종교개혁운동으로 일어난 분열인데 이는 교회갱신운동 때문에 일어난 원치 않는 분열입니다. 이 분열 역시 오늘까지 개신교와 가톨릭교회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열성적인 선교운동으로 교회들이 핵분열을 일으킨 19세기 이후의 상황입니다. 이것은 분열이라기보다 교단중심주의에서 출발한 선교경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분열은 “저희가 다 하나가 되어... 세상으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 기도하신 주님의 비전과 반대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분열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회개운동으로 출발하였고, 지금도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차별금지법,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타종교를 어떻게 보는가?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적 기구인 세계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성서적, 역사적 근거를 살폈습니다. 올해 창립 74년과 98년을 맞는 세계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그동안 다양한 논의와 실천을 펼쳐 왔습니다. 지난 백 년 동안 세계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교회의 사역과 교회를 향한 세상의 시선도 이전 세기와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교회 안팎에서 선교의 위기를 말하고 있고, 그 위기의 원인 중 하나도 세계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같은 에큐메니칼 연합체를 지목합니다. 그러한 진단은 잘못된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에큐메니칼 운동은 성서적이고 신앙고백적인 교회의 실천이고, 신앙공동체가 세상을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안에 다양한 의견과 실천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세계 349개 회원 교단 가운데 일부 교단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 우려하는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등의 문제를 놓고 세계교회협의회가 이를 허용하는 결정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공산주의를 비롯한 특정한 정치노선과 종교적 다원주의와 혼합주의에 대하여 분명한 반대 입장을 천명하였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안에는 정교회를 비롯하여 오순절 계통 교회 등 보수적인 교회들이 다수 회원으로 있고, 그들의 영향력이 적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소수인 지역에서 종교간 대화는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식일 수 있습니다. 종교간 대화는 인류의 공동의 목표인 평화를 위한 논의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인류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협력하고 기여하는 표현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입장도 성서의 가르침에 기초합니다. 다만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인권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일부 신학자들이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는 이유는 동등한 인권과 인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성서와 기독교 신학의 원칙에 따른 것입니다.  

근래 들어 한국교회가 민감하게 느끼는 차별금지법의 문제도 동일한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차별금지법을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차별금지법이라는 용어 자체가 주는 모호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차별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성별과 연령, 국적, 종교에 따라 부당한 대우와 억압을 받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불의합니다. 그러나 차별금지라는 명목으로 신앙교육을 금지하거나 기독교 학교에서 다른 종교를 가르치도록 강제하는 것 역시 정당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차별금지법의 경우는 원칙과 세부 사항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20년 8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질의에 대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의 답변에 그러한 기준이 담겨 있습니다. 

“... 차별금지법 제정의 문제는 이미 교회협의 범주를 넘어서서 국회와 국민의 손에 그 결정이 맡겨졌습니다. 지금 이후 교회협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찬반 여부나 제정 여부에 관심하기 보다는, 국민으로서 교인들의 찬반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는 안전한 시공을 마련하고, 한국교회가 현실적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교인의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소수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목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연구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의 평등법 제안과 정의당의 차별금지법 국회 발의로 인해 야기된 한국교회의 분열을 치유하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화의 과정을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협은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의제들에 대한 공동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신학, 정의·평화, 여성, 일치 등의 관점이 총체적으로 조명되는 협의회적 대화의 과정을 진행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협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에큐메니칼 협의회의 특성 상, 획일화된 입장을 강제하거나 이를 집단적으로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회원 교단과 기관에 속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의사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소수 의견을 존중하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상호이해를 증진시켜 나가는 대화의 과정을 보고서로 만들어 한국교회와 사회에 공유할 것입니다.”

우리의 원칙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이 사회에 전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동안 세계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세계 곳곳에서, 한국 사회 안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에서 상이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께 인도해야 하는 목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에서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은 오늘의 교회가 행하는 사역의 내용입니다.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의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13장 34-35절).  

감리교회를 세운 존 웨슬리는 개인의 영혼에 대한 사랑과 함께 사회적 성화와 구원을 위하여 평생을 노력했습니다. 웨슬리는 신앙적 개방성, 신학적 포용성, 사회적 책임성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균형잡힌 사역을 통하여 영국사회를 변화시켰습니다. 웨슬리 신학의 교리적 특징은 교파주의나 종교적 배타주의를 극복하고, 세계 인류의 평화와 구원에 공헌하는 에큐메니즘이었습니다. “생각이나 발걸음이 조금씩 다를 찌라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존 웨슬리, “보편적 정신”)고 외쳤던 웨슬리의 에큐메니칼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복음적 에큐메니즘”이 될 것입니다. 

올해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 제11차 총회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당하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밝히며, 화해와 일치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을 통하여 이 세상을 회복하고 치유하기를 기도하는 총회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의 사명을 확인하고 감당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박도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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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8-24 06:08:36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카톨릭은 공의휘에서 천명했다. 이것이 개신교가 가톨릭을 배척하는 큰 이유중 하나이다. 잘못된 것인가?
-성경에 율법을 모르는 자는 양심이 그 기준이 된다했으니 율법을 모르고 예수를 몰라도 성경을 몰라도 양심대로 살면 그에게도 구원이 주어진다고 봐야한다. 이 구절을 율법을 몰라도 예수는 아는 자, 율법을 몰라도 성경은 알고 믿는자로 해석하면 안된다. 율법을 모른 다는 것은 기독교의 모든 체계를 모르는 것이라고 봐야한다. 율법대신에 보편타당한 양심을 기준으로 했다는 것은 양심을 가진 모든 사람 즉 기독교를 예수를 성경을 모르는 사람 그리고 타종교를 믿는 사람 내지는 아무것도 안믿는 사람도 양심을 기준으로 구원이 가능하다고 봐야한다.이 주장이 아니라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조선에 가톨릭과 개신교가 들어오기전에는 이 조선땅에는 여호와의 섭리가 없다고 봐야하는가? 가톨릭이 들어오는 순간, 미국선교사가 인천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리는 순간 부터 여호와의 권능이 우리에게 펼쳐지는 것인가? 여호와의 권능은 화랑도 정신등으로 이미 역사하고 있었다는 유동식, 윤성범교수 견해에 동의한다. 즉 기독교라는 종교형태가 전래되기전에도 여호와는 여러 형태로 섭리하고 있었다는 것이 타당한 견해다.양심도 그 섭리중 하나라고 본다.
-위의 견해는 기독교의 관점에 맞춰서 생각해본 것이고 기독교 자체에 대한 내 평가는 뭔가 전지전능한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수준에 필요한 낮은 단계의 신앙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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