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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과 작별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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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8월 13일 (토) 23:21:58 [조회수 : 2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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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은 참 힘들다. 누구나 많든 적든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사람에게 정이 많다고 하지만 사람 나름이듯, 독일인의 경우도 정이 풍성하다. 인정이든 공감이든 사람 사이의 정서는 친밀감에 비례하지만, 심성의 바탕에는 정이 작용한다. 다정(多情)이냐 박정(薄情)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 차이도 별리(別離)에 있어서는 공통적일 듯하다.

  이영빈 목사님과 김순환 사모님 내외 분과 처음 관계를 맺은 것은 꼭 30년 전 일이다. 1992년 처음 해외여행을 하면서 독일에서 이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는 1955년 독일 유학 이래 한국사회에서 잊혀진 사람이었으나, 한국현실에서 무시해도 좋을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자서전 <경계선>(1997)과, 그보다 먼저 출간된 <통일과 기독교>(1994)는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해 준다. 남북의 만남과 대화의 역사에서 두 분이 주도한 ‘기통회’(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의 역할이 비로소 재조명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목사님은 2018년 12월 18일에 소천하였다. 만 92세였다. 한 해 전 ‘91세를 맞아 나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2017.7.7.)를 통해 이미 세상에 작별편지를 보냈다. 친척들 가운데 장수한 사람이 없다면서 90세가 넘도록 자신에게 주신 과분한 은혜에 감사하였다. 일생을 회고하며 아내를 비롯해 자신과 관계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문서(‘Mein Dankes Wort’)를 남긴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치하받을 그들은 이미 세상에 없으니, 다만 자기 시대를 돌아볼 공적 문서를 남긴 셈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고(故) 이영빈 목사님의 묘소를 찾아가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골드스타인 발트프리드호프는 평생 목회를 한 파울-게하르트교회에서 멀지 않았다. 문의한 교회 사무실은 친절하였고, 멀리 한국에서 온 지각조문객의 편의를 위해 애썼다. 3년이 지나도록 이 목사님의 묘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으나, 나무 십자가는 주인공의 이름과 생몰연대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조문이라야 십자가 앞에 한반도를 새긴 평화염원십자가를 세우고 기도하는 것으로 끝났으나, 무려 3년 이상의 부담을 해결하는 순간이었다.

  대답이 없는 묘 앞을 떠나는 일은 너무나 간단하였다. 게다가 숙제를 마친 홀가분함 때문에 김순환 선생이 홀로 사시는 바드 조덴 잘뮌스터까지 달리는 고속도로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깊은 노년의 삶을 인내하는 사모님 앞에서 갑자기 막막해졌다. 8월의 달력에는 유일하게 단 하루의 일정만 적혀있었는데 “송병구 목사가 8월 10일 경 독일에 올 예정”(8.10)이란 내용이었다. 용케 두 달 전에 한국에서 드린 전화내용을 기록하신 것이다. 그 아래는 “점심을 싸가지고 온다고 한다”는 어제 연락한 내용을 적었다가 지운 흔적이 남아있었다. 

  들르면 하룻밤 자고 오겠다고 호언하였지만, 그것은 내 켠에서 말한 장담에 불과하였다. 홀로 사시는 노인의 형편은 전혀 달랐다. 그런 때문에 어수선한 방문이 잠시 변죽만 울리고 떠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누구나 홀로 늙는다지만 어언 9순의 중반에 들어선 김 선생님은 당신의 말씀과 달리 건강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하였다. 30년 전 처음 찾아뵌 그 시절은 얼마나 젊고, 하고 싶은 말씀으로 가득했고, 이북식 음식 솜씨가 좋았던지, 모두 옛날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번 독일 여행 중 마지막 일정으로 프라이부르크 방문은 룻츠 드레셔의 초대 덕분이다. 600킬로 먼 길이다. 30년 전 한국에서 일하던 선교동역자로서 겨우 세 사람의 독일교회 방문 일정을 맡아 3주간 동안 동행한 후, 지금까지 동행해 왔다. 서울은 물론이고 베를린, 평양, 심양에서 함께 하였다. 꼬박 이틀 동안의 시간은 지난 30년 만남을 복기하는 기회였다. 슈바르쯔발트 지역에 속한 프라이부르크는 그의 고향이었다. 삼림감독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검은숲에서 자랐고, 공부하였다. 이곳에서 기독교교육과 사회봉사를 공부한 후 떠났다가 47년 만에 돌아왔다. 

  24시간 호흡 보조기를 착용하면서도, 이틀 내내 가이드처럼 밀착 안내를 하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한결같이 우정과 의리를 지켜온 룻츠 형의 진면목이다. 홀로 사는 그의 집에서 작별 행사를 하였다. 형은 뜻밖의 선물을 준비하였다. 청년시절인 1981년 세 번째 인도 방문 중 마더 테레사 공동체에서 봉사하면서 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염색 작품이다. 그와 함께 세계를 유랑하며 함께해 온 것인데, 이제 다른 4점의 십자가들과 함께 내게 건너왔다. 몇 해 전에 받은 그의 할아버지 드레셔 목사님의 유물인 입식십자고상까지 합하면 작은 컬렉션이 될 것이다. 

  이번 독일여행은 나의 30년 벗들과 구체적으로 작별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30년 친구, 1992년 낯선 여행 중 만난 복흠한인교회는 이태 후 내 일터가 되었다. 어쩌면 너무나 젊은 시절이었는데, 마치 시간의 미래를 다 알고 있다는 듯 감쪽같이 목사노릇을 하였을까? 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곳에서 기억하는 자로서 내 구실을 생각해 본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 내일로 향합니다. 주여, 희망을 향한 우리의 순례를 기억하소서”(1999년 복흠교회 하가다 찬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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