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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단상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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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8월 10일 (수) 21:07:06
최종편집 : 2022년 08월 10일 (수) 21:22:37 [조회수 : 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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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울진에 다녀왔다. 여름이면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은 꼭 다녀오는 곳이다. 신학교 시절 만나 여러모로 교제를 나누었던 목사님인데, 그 인연이 오늘에까지 닿아 내내 연락없이 지내다가도 여름 한 철 한 번 얼굴을 뵙는 것만으로도 마치 365일 만난 것처럼 반갑고 가깝게 느껴지는 분이다. 쉬지 않고 달리며 가는 길이 3시간 정도 걸리고 중간 휴게소라도 들르면 거의 4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지만 가는 길이 피곤치 않음은 목적지에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부담없이 쉴 거처가 있기 때문이고, 하루 내내 아무일 하지 않고 그간의 얘기만 나눠도 될 즐거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울진은 지금 내가 사는 음성에 비한다면 더없는 농촌이다. 산세가 험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울진이 농촌이라고 하나 음성에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근처에 바다가 있다는 것이다. 평해와 포항과 인접해 있는 지역이라 차로 30~40분 정도 나가면 푸른 망망대해를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는 꽤 괜찮은 곳이다. 목사님 댁에 가기 전 바다 옆 도로를 지나가는데 잔잔한 파도일 때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를, 거센 파도가 일렁일 때는 검푸른 바다를 볼 때마다 때론 경쾌하기도 하고 때론 무겁고 숙연해지는 느낌이다. 가끔 보는 사람이 이런데 저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마주하고 사는 바닷가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하는 궁금함도 생긴다. 

사실 난 물을 무서워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제천에 큰 물난리가 났는데 그때 지대가 낮았던 우리 동네 집들이 거의 물에 잠겼다. 어른의 무릎까지 차 올라왔던 흙탕물은 부엌을 삼키면서 아궁이와 부엌 세간살이를 모조리 휩쓸어 갔다. 비가 그친 뒤 물 빠진 부엌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냄새는 보수 수리를 마치기 전까지 구역질을 내게 했다. 불도 무섭지만 물도 무섭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경험했다. 또 그때도 초등학교 나이였는데 여름 방학을 맞아 가족 전체가 용석리에 있는 강가로 피서를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잠수를 한다고 물안경을 끼고 강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언가에 쓸리듯 강 밑으로 쑤욱 빠져 들어갔는데 강바닥에서 거대한 –지금이야 작은 바위겠지만- 바위와 마주하였다.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감이 찾아왔다. 바위가 마치 상어처럼 보였다.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의 무서운 죠스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일 게다. 그 공포심은 실제건 이미지건 영상이건 깊은 물을 만나면 어쩔 줄 몰라 하는 트라우마로 남아 험한 산은 오를지언정 물가엔 가지 않는 것이 몇 해 전까지였다. 아직도 계곡이나 강 그리고 바다에 서면 알 수 없는 물깊이에 오금이 저리긴 한다. 엊그제 서울 강남의 물난리는 어린 시절 수해를 다시 기억하게 하였다. 

한밤중 서울에 사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울 강남은 홍수로 난리라 하는데 음성은 괜찮냐는 안부 전화였다. 마침 울진에서 유유자적 띵가띵가 하며 망중한을 보내고 있었던 터에 친구의 연락은 비워놓은 집이 걱정되게 하였다. 아침에 나올 때 한라와 고양이들에게 일찍 올테니 집 잘 지키고 있으라고 했지만 밤은 깊고 나눌 보따리는 많아 하룻밤 묵고 가려고 허리춤을 풀어놓고 있었던 참이었다. 이리저리 하여 음성은 쾌청(?)한 날씨라고 들었지만, 텔레비전의 서울과 경기 인천은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 그 모습이 남일 같지 않음은 어릴적 겪었던 수해도 있었고, 재작년에 농사짓고 있는 땅이 무너졌던 기억이 여전하였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집을 비웠을 때는 음성엔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돌아온 화요일 밤에는 음성도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졌다. 밤새도록 그 빗소리를 들으며 재작년처럼 밭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고 기도하며 보냈다. 아침에 밭으로 가보니 발을 내딜 때마다 땅은 물침대처럼 출렁거리고 흔들거려 두어 발짝 이상 나갈 수 없었다. 마음이 심란해졌다.  

여름 장마 때는 밭이 무너질까 걱정, 밭작물이 상할까 걱정하며 보내는 것이 농부의 마음이다. 지난 6월 말부터 시작한 비가 8월 중순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내리고 있으며, 다음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10년의 농촌살이 동안 처음 맞는 일이다. 매번 말했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면 제대로 된 농사가 가능한지 모를 일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여러 기후 조건이 맞아야 하는데 어떤 때는 햇볕만 내리쬐고, 어떤 때는 비만 내리고, 어떤 때는 구름만 가득하며, 어떤 때는 기온이 들쑥날쑥이다. 밭의 콩은 계속되는 비에 키만 멀대같이 자라고 있다. 꽃이 피고 꽃이 지면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햇볕 없이 바람 없이 비만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곧 추석이다. 그러나 이런 기후에 추석 농산물이 얼마나 나올까 궁금하다. 또 얼마나 맛을 보장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누구는 그러겠지? 우리 것이 없으면 수입산으로 대체하면 될 것이라고.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면 차선도 언 발에 오줌 누기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리는 기후 위기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해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지구의 몸살이 가져다주는 결과가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뛰어넘고 있음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농업과 밥상의 부재로 어떤 삶을 맞이하게 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그나저나 아랫지방은 비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비야! 이제는 비가 필요한 남부로 내려가서 그곳 농부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려무나. 여긴 햇볕이 필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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