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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공동체 안에서의 직분은 서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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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8월 08일 (월) 22:35:55
최종편집 : 2022년 08월 12일 (금) 22:26:22 [조회수 :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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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시리즈 “길을 찾다”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고민과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기 위해 감리회목회자 모임 <새물결>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이 작업이 목회자와 평신도의 균형 잡히고 건강한 믿음의 바탕을 마련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발걸음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여섯 번 째 연재를 이어갑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직분은 서열인가요?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질문> 교회생활을 하면서 직분제도라는 것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의 직분에 관하여 성서는 섬김과 봉사의 기능을 말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교회내의 계급구조로 인식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실제적으로는 여성의 비율이 높은데도 남성들이 주요한 직분(장로 등)과 교회내 의사결정구조에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직분이 서열로 인식이 된다면 굳이 이러한 직분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직분의 의미와 변화

교회의 직분은 사도 교회 시대부터 요구되고 상속되어 온 교회의 제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직분은 하나의 조직으로서의 교회를 운영하는 데 핵심을 이룰 뿐만 아니라 교인들은 직분을 통해 교회에 대한 헌신과 충성을 다짐함으로써 소명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또한 현실 교회에서는 직분자를 선출하고 세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게 돼서 교회 조직이 역동성을 갖고 성장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하고요. 반대로 이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게 되고 심지어는 교회 조직 자체가 붕괴될 만큼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따라서 직분을 바로 이해하고 잘 운영하는 것이 교회가 건강해지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본래 성경에서 직분은 ‘은사’로 이해됩니다. 은사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과 같은 것으로 모든 은사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양한 은사들 가운데 교회 조직을 이끌어가기 위해 제도화된 것이 직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능력 행함, 병 고침,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각종 방언 말하는 것이 모두 은사인데 그 중에 교회 운영을 위해 직분이 제도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보기를 들어서 집사는 원래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봉사의 직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전파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중요한 역할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오늘날 집사의 역할은 예배를 위해 또는 교회 운영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위치가 변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에서는 장로들이 리더십을 가지고 은사로서의 사역을 감당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제도화 되면서 다스리는 자로서 교권적인 성격이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회 규모가 커지고 조직이 전문화되면서 권력의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사 결정권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상당수의 평신도들은 교회의 정책 결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재정 지원도 평신도들이 제공하지만 재정의 사용은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결정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조사했던 내용에서는, 교회에서 중요 안건을 결정하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봤는데요. 가장 많은 40%가 “중직자들과 담임목회자가 의논하여 결정한다”고 응답하였고, 다음으로 27%가 “담임 목회자의 의견을 가장 크게 고려하여 결정한다”고 응답하여 전체의 3분의 2가 전체 교인들의 의견보다는 담임 목회자나 중직자들의 의견이 크게 고려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교회 규모가 클수록 이러한 응답이 더 많아서 교회 규모가 커짐에 따라 보다 많은 성도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직분

오늘날 한국 교회는 직분과 관련하여 많은 갈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직분자를 세우는 일에서부터 직분자들 사이의 역할 분담, 그리고 직분자들 사이의 의견 조정과 관련하여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에서는 극단적으로 직분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고, 무용론까지는 아니라도 직분을 최소화 할 것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일부 교회에서 직분은 하나의 신분이나 계급적인 위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사에서 권사(장로교에서 남성은 안수집사)로 승진하고, 그 다음에 장로로 승진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교회의 ‘평신도’를 일반기업의 평사원과 비슷한 의미로 오해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일반 기업에서의 평사원은 부장, 과장과 같은 특별한 직위가 없이 가장 낮은 직급에 해당하는 일반 사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서도 평신도를 장로나 집사의 직분이 없는 일반 신도를 가리키는 말로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직분이 없는 사람들을 부를 때에는 ‘성도님’이라고 부르며 괜히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신도라는 말은 성직자와 구분해서 쓰는 말이고 목회자가 아니라면 모두 평신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성직자 개념은 종교 개혁 이전에 쓰였던 말이기 때문에 오늘날 개신교 전통에서 성직자와 평신도 구분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할 필요 없이 모두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말 역시 평신도를 대신 할 단어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로를 해야 죽더라도 묘비명에 ‘아무개 교회 장로’라고 새겨질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교인들에게 직분은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가 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하고, 선거철이 되면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장로 선출이 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본래 장로 직분이 없었던 감리교회에도 장로 직분이 도입되었고, 마찬가지로 회중 교회의 전통을 유지해 온 침례교회에는 얼마 전까지도 장로 직분이 없었으나 교단에서 ‘호칭 장로’를 둘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호칭 장로란 말 그대로 직제상으로는 집사이지만, 호칭으로만 ‘장로’라고 부르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제도가 생긴 연유는 다른 교단의 장로들과 연석 회의를 하는 경우에 침례교의 집사는 장로교의 장로 직분과 비슷한 직위라고 할 수 있으나 명칭이 집사이기 때문에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하고요. 심지어는 무시를 당하는 경우까지 빈번하게 발생하자 침례교 안에서도 장로라는 호칭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교의 장로와 달리 의결권은 없고, 주요 안건에 대해 미리 의견을 조율하는 정도로, 한 침례교 장로는 이를 “국회로 비유하자면 상임위원회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호칭 장로 제도가 생기기 전에도 이미 장로교 출신 장로를 침례교에서도 장로라고 ‘불러주며’ 심지어는 침례교 집사 명함에 괄호를 치고 ‘장로교의 장로에 해당함’이라는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침례교의 경우 집사는 모두 장로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직위가 달라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장로라고 불리게 된 이후 더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직분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부장식 교회 구조

한국 교회에서 직분 제도를 위계서열로 이해하는 이유는 유교 문화의 영향이라고 봅니다. 유교식 서열의식의 영향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 또는 교회 안의 직분을 위계식 서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농공상의 직업관과 가부장식 가족 제도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원형을 가족으로 보는 가족주의 관념은 사회관계조차도 가족 관계의 확장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생각도 은사 공동체라기보다는 가부장에 해당하는 담임 목회자를 정점으로 하는 상하 서열의 수직 관계의 구조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또한 체면을 의식하는 문화에서 감투를 중시하여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름보다도 그 사람의 지위를 드러내는 직책이나 직분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을 ‘아저씨’나 ‘아주머니’로 부르는 것은 큰 결례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다른 교인을 부를 때 아무개 씨라고 이름을 부르는 일은 거의 없고 심지어 자신의 아들에게조차 아무개 집사, 아무개 장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목사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지요. 중직자들에 대해서는 직분을 혼동하지 않도록 잘 기억하려고 하고 특히 새로 중직자가 된 경우에는 그분들을 부를 때 실수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게 됩니다.

유교적 사고나 관습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때로는 성경의 전통이나 가르침보다도 유교 전통을 더 중시해서 발생하는 갈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 안에 자리잡고 있는 유교 습속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가부장제는 교회가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가부장제는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이나 지배방식을 말합니다. 가부장제는 유교 문화만은 아니고 성경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흔히 여성을 남성에 비해 부수적이거나 남성에 종속적인 위치로 보는 관점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당시의 문화가 준 영향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교단에서 여성 목사나 여성 장로를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여성 장로의 비율은 매우 적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6대4 정도로 여성 신자의 비율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주방 봉사에 치중되어 있고 기획위원회나 장로회 같은 중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교회에서 중직자는 장로와 권사(또는 안수 집사)를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대개 50대 이상의 남성들입니다. 또한 청년들의 참여 역시 제도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단에서 장로의 자격은 40세 적어도 35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년들은 장로의 자격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청년이나 여성은 장로회에 속하지 않으니 총회에 참석하여 발언할 자격도 없습니다.

 

참여를 원하는 MZ 세대

요즘 청년들을 말하는 MZ 세대는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년에 제1야당의 당 대표로 30대 청년이 선출되어 온 나라가 떠들썩했는데요.. 데이비드 캐머런이 38세의 나이로 영국 보수당 당수로 선출됐을 때만 해도 외국이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치부했고, 그후에 유럽이 여러 나라에서 30대 총리나 대통령이 나왔을 때도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난 것입다, 장유유서와 연공서열이 아직도 엄존하는 현실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기에 ‘2030의 반란’으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것은 청년들이 자신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MZ 세대들은 자신들의 소신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작은 참여라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일에 의미를 갖습니다. SNS를 비롯해서 작은 참여를 돕는 플랫폼이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는데, 이들은 이를 통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며 자라왔습니다. 그들은 오염수 방류 결정을 내린 일본에 대해 분노하고,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는 램지어에 대해 항의합니다.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미얀마 군부독재를 반대하고, 홍콩에 대한 중국의 폭력에 대해 숨막혀 합니다. 이들에게 ‘참여’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최근에는 교회에서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되면서 청년들이 온라인 디지털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청년들이 디지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과 참여 가능성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바나 리서치의 보고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들의 온라인 예배 참여도가 예상보다 훨씬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교회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기에 온라인 예배를 선호할 것이라는 보편적인 인식에 크게 어긋나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다양하고 감각적인 컨텐츠를 제공한다고 해도 온라인 시스템을 통한 종교 생활은 일방적으로 설교를 들어야 했던 이전의 신앙생활과 다를 바 없다면 청년들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제는 교회도 청년들을 교회 운영과 사역의 주체로 세워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주체가 되도록 하고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제도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 결정 과정에도 참여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제가 맡고 있는 <21세기교회연구소>와 다른 기관들이 함꼐 실시한 기독 청년에 대한 조사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참여하겠는가에 대해 절반 정도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주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신앙 단계가 4단계인 청년들은 77%가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신앙 수준이 높을수록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직분 제도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일부 교회에서는 직분의 폐해 때문에 직분 제도를 없애기도 합니다. 교단에 속해 있지 않은 일부 교회들은 좀더 자유롭게 직분 제도를 유지할 것인지 폐지할 것인지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교단에 속해 있는데, 이것은 교단의 방침과 어긋나는 일입니다. 또한 직분을 없앴을 때 당장 성도들 서로 간에 부를 수 있는 호칭이 마땅치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직분제를 없앤 교회는 적절한 호칭이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학자들 중에는 직분제는 성경에도 나오는 교회 전통이기 때문에 직분제를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직분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 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나치게 위계서열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직분은 은사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스리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할 기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최근에 젊은이들 중에는 자신을 중직자로 세우면 교회에 안 나가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위계서열 속에 들어가서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중직자로서의 부담을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어우러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공동체는 자신을 위해서만 아니라 더 연약한 지체를 위해서 그리고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청년과 여성들을 포함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021년에 실시한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 변화 추적조사’를 보면, 젊은 세대, 여성을 포함하는 의사결정자 그룹의 범위를 확장시킬 필요성에 대해 개신교인의 81%가 동의했고,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도록 평신도 리더(장로 등)의 연령을 낮출 필요성에 대해서도 3분의 2인 67%가 동의했습니다. 또한 <21세기교회연구소> 등에서 실시한 5060세대 인식조사에서도 전 교인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기구 설치에 대해 88%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당장 청년들을 장로회 회원으로 선출하는 것은 교단법과도 충돌하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일종의 비례대표 식으로 청년과 여성들이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장로 추대가 가능한 여성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의 여성들이 장로로 선출될 수 있도록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쿼터제는 사회에서 수입이나 생산, 고용 등에 대해서 그 수나 양을 제한하거나 할당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필요에 따라 쿼터제를 적용해서 우리 산업을 보호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배제되고 있는 사람들의 발언권을 보장해주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도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제도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쿼터제를 도입해서 보다 온전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청년과 여성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독일복음주의교회협의회(EKD) 총회에서 25세의 여성 청년이 의장에 당선되었고, 연이어 루터교세계연맹총회에서 45세 여성 목사가 사무총장에 선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세계의 많은 교단들이 청년을 총대로 세우고 있고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세계교회의 연합기관들은 총대 선출 시 반드시 여성, 평신도, 청년층에 할당제를 적용해 청년들이 의결권을 가집니다. 미국 교회들에서는 총회 총대와 별도로 선교사, 신학생, 청년, 에큐메니칼 사역자로 이뤄진 자문위원단을 조직하는데, 구성원 대부분이 청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온전한 공동체를 위하여

교회는 공동체를 추구하지만 그 형태는 사회조직의 특성을 나타냅니다.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교회 구성원인 신자들 사이에 일치와 연합, 결속을 강조하지만, 하나의 조직으로서 효율성을 추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회학에서 말하는 1차 집단과 2차 집단의 특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하나의 사회 조직으로서 제도화 되는 경향을 피할 수 없지만, 제도 자체가 우선시되면 제도는 관료제화 되고 본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자체의 생리에 따라 운영됩니다. 따라서 지나치게 제도화되고 형식주의화되는 교회 직분에 대해 본래의 의미를 되찾고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를 공동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공동체인지 대하여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합니다. 이제 단순히 교회가 공동체라고 선언하기보다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똑같이 공동체라고 말하면서도 어떤 이는 상하 서열의 피라미드 구조를 떠올리면서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효율성과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어떤 이는 인격적인 관계를 중시하면서 일보다는 사람 중심으로, 성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면서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것이 공동체의 중요한 차원이라고 생각합다. 공동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지도자의 역할이 달라지고 직분자들을 포함한 구성원의 역할도 현격하게 달라지게 됩니다.

최근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면서 ESG 경영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데 거룩한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는 마땅히 이러한 교회 운영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온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 운영이 공동체 정신에 걸맞게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제 교회 안에도 다양한 의사소통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고 다양한 언로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또는 소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배제되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스스로 돌아보고 다양한 의견을 담아낼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 없이 하나 되는 공동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보다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일 것입니다.

   
▲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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