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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의 표절에 관하여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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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8월 06일 (토) 01:20:19 [조회수 : 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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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몇 대중음악인들의 표절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서울음대 작곡가 출신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와 작년 JTBC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유명세를 얻은 무명 출신의 한 가수입니다. 늘 있었던 일이라 어느새 가라앉는 분위기지만 그래서 그런지 잊을 만하면 다시금 문제가 되는 것 같아 이참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 볼까 합니다. 

단언컨대, 대중음악 작곡에 있어서 표절, 저작권법 위반 행위는 범죄입니다. 순수한 음악적인 열정 가운데 부지중에 표절이 일어났다면, 해 아래 새 것이 없기에 자신이 영향을 받고 그를 바탕으로 새롭게 펼쳤던 영감의 원천에 대해서 분명히 밝혔더라면, 적어도 표절 행위가 드러났을 때 겸허히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문학, 음악, 미술, 영화의 영역에서는 오마쥬, 페러디 또는 리메이크가 자주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원작과 그 작품의 작가에 대한 흠모와 존경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상업 음악의 성격이 강한 대중음악 분야에서 교묘하게 표절을 해서 원작자와 대중을 기만하고 그 결과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도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순수 창작 예술에서는 표절이 쉽지 않습니다. 주변에 비평가와 전문가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고 표절이 드러나는 순간 예술가로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조심하고 치밀하게 검증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쇤베르크 이후의 현대음악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악(音樂)의 ‘악’자가 즐거운 ‘락’이기도 한데 듣기에 전혀 즐겁지 않고 점점 괴상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의 현대적 흐름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대음악의 흐름을 표절을 경계하는 작곡가의 예술가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다른 사람의 음악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으려는 작곡가의 처절한 고민이 현대음악의 파격을 낳은 중요한 이유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물론 대중음악에 그와 같은 엄격한 잣대를 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중음악도 엄연한 음악의 한 장르입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음악가에게는 순수한 열정과 음악가로서의 최소한의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함 없이 진리랍시고 설교가 선포될 때 (언제나 그 희생양은 순진한 성도들이지만)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하듯, 음악도 진실해야합니다. 아무리 유행을 따르고 대중적 인기와 돈벌이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음악 앞에서 만큼은 진실해야 합니다.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이 시대의 예술가요 거장이라고 부르고 싶은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방송 기술과 연출로는 사람들을 속일 수 있어도 언제나 진실함은 드러납니다. 

목사가 되고 나서 가장 아쉬운 점은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에 은혜 받기가 쉽지 않게 된 것입니다.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일수록 속이기 어려운 법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그 가수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질 때,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불렀었습니다. 작년 어느 날 제 아들이 노래를 굉장히 잘 하는 사람이 등장했다면서 그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노래를 들은 저는 그때 솔직한 마음으로 이렇게 반응했었습니다. “노래는 잘 하는데 이 사람은 지금 자기 노래를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덕분에 아들에게 “아빠는 다른 사람에게 너무나 비판적이야”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었지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한 노래로 인기를 이어갔지만 결국 그 노래가 한 일본 밴드의 노래를 표절한 것으로 문제 제기가 되었고 제가 비교해서 들은 바로는 표절 아니, 저작권법 위반 혐의가 매우 농후해 보입니다.  

그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표절이 맞다면 서울대 작곡가 출신의 그 싱어송라이터는 더 깊은 반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대학에서 순수 창작 예술을 공부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그럽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그에 걸맞은 자숙기간을 거치면 다시금 맞아 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사 가운데 가장 표절(?)에 능했던 사람은 제가 가장 흠모하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일 것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다른 작곡가의 유명한 선율과 교회의 찬송가 멜로디가 가득합니다. 또한 이전에 발표했던 자기 작품을 다시 사용한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찬송가 145장 ‘오 거룩하신 주님’은 바흐의 작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곡은 한스 레오 하슬러(Hassler, Hanx Leo.  1564-1612)의 곡입니다. 심지어 하슬러의 원곡은 연인에 대한 사랑에 괴로워 하는 모습을 담아낸 ‘내 마음은 괴롭도다(Mein G’mut ist verwirret)’라는 세속 노래입니다. 바흐는 이 멜로디를 좋아 해서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인 ‘마태 수난곡’에 여러 번 사용합니다. 

물론 그 시대에는 표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바흐와 동시대인들은 모든 음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있는 모든 음악을 소재로 삼아 새 노래를 마음껏 펼쳐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시편 33:3).  

바흐의 삶과 그의 음악을 생각 생각하면 오늘날 대중음악의 표절행태에 화가 납니다. 평생토록 끊임없이 곡을 써 왔고 수 없이 많은 위대한 음악들을 남겼지만 바흐와 그의 가족들은 평생 가난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모차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흐와 모차르트는 귀족이나 교회의 시종 혹은 전문 기술자 정도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음악가들의 지위가 높아진 것은 모차르트 사후에 이르러서입니다. 모차르트가 죽은 후에야 사람들은 천재적인 음악가가 인류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 변화의 최대 수혜자는 베토벤이었습니다. 

음악은 어제나 오늘이나 인간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예술입니다. 물론 저 또한 무명 가수의 설움을 잘 알고 있고 아무나 유명해 질수 없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바뀐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유명가수가 누리는 물질적 부는 바흐나 모차르트, 그들의 위대한 작품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과도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분한 대우마저 표절에 의한 것이라면 더더욱 화가 날 일입니다. 바흐와 모차르트 앞에 모든 음악가들이 감사하고 겸손했으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MY-aowxVX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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