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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 길을 걸으며, 불굴의 정신을!
노종해  |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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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8월 05일 (금) 19:20:06
최종편집 : 2022년 08월 10일 (수) 05:54:19 [조회수 :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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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 길을 걸으며, 불굴의 정신을!

 

   
▲ 호숫가 아파트에서 나서며!

입추를 이틀 앞둔 날(8.5.), 장마가 끝나고 온 몸을 후끈 달구는 무더운 날들이  밤 잠도 설치고 몹시도 짜증나게 하는 날들이다.

나는 아침 8시 집을 나서서 호숫가를 걸었고, 호숫가  걷는 길에는 무궁화 꽃 길로 펼쳐저  반겨주고 있다.

하얀꽃 붉은꽃 분홍색 무궁화꽃이 살며시 웃고 있음에  찌푸둥한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무더위에 시달린 찌푸둥한 몸을 일으켜 무궁화꽃 길을 걸으며, 한서 남궁억 선생님의 불굴의 정신과 신앙을 기억하며 상념에 젖어  들었다.

   
 


한서 남궁억 선생과 무궁화!

   
▲ 홍천 모곡학교 창립13주년 및 남궁억 선생 칠순 기념(1932.11.1.)-이후 체포 되셨다!

 한서 남궁억 선생(1863-1939)은 나라를 잃고, 황실의 관리로 충군의 사명을 못 다했음을 통회하였으며, 일제에 빌붙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 수 없었다. 결국 망명이나 부일협력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문중 고향인 홍천 산골로 낙향하였다. 이곳에서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고, 동사략, 조선이야기 등을 저술하고,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무궁화 보급운동”을 하였다. 교회와 학교는 무궁화 모판을 만들고 전국 교회와 학교에 무궁화를 보급운동을 펼친 것이다. 

   
▲ 배화학당 학생들의 한반도 무궁화 지도-교사:남궁억!

    무궁화는 나라와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민족의 얼이 담겨 있다. 일제는 사꾸라(벚꼿)을 권장하였으나, 선생은 한민족의 무궁화를 보급한 것이다. 

   선생은 직접 영어와 한글, 특히 한국사를 강의하였다. 나라와 민족의 꽃, 무궁화를 심었고, 무궁화 묘판을 만들고 전국의 교회와 학교에 무궁화를 보급하는 운동을 하였다. 

    한서 남궁억 선생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불렀으며, 교회와 학교 뒷 편 유리산을 걸어 오르시고, 유리봉에서 애통하는 눈물의 기도하셨다. 산에서 내려오시며, 전도하셨고, 주택의 사랑방은 전도와 교육의 장소였다. 

1933년 춘천에서 열린 연회 때, 춘천 여자관(春川 女子館) 비밀실에서 유자훈(劉子勳) 목사가 사회하며, 남천후(南天佑), 김복동(金福童)  등 목회자들이 중심으로 결성한 비밀결사 십자가당을 조직하고 이상적 농촌운동을 전개하다 체포 되어 치안법으로 기소되었다. 

 

   
▲ 남궁억 선생 칠순 때 체포, 일경 취조실!

    십자가당은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 보급운동에 참여하였고, 이를 포착한 일경이 절호의 기회로 여겨, 십자가당을 체포하며, 칠순인 남궁억 선생도 역어서 체포하여(1933.11.4.), 갖은 고문과 심문 받았다. 1934년 3월 72세 나이에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으로 선고 받고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 되었다.(東亞日報 1933.12.7, 1934.8.4,) 

​    선생이 체포 되며 모곡교회와 학교는 폐교 되어 보통학교와 합병 되었고, 무궁화는 뽑혀 불태웠으며, 전국에 무궁화를 뽑고 일본 국화인 사쿠라(벚꽃)을 심도록 하였다. “무궁화”란 말도 못하게 하고, 이름도 “근화“(槿花)라 부르게 하였다. 무궁화는 "피고 또 피어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선생의 “무궁화 예찬시”를 보면 벚꽃과 비교하여, 무궁화는 자랑스런 나라와 민족의 번성과 영화를 찬양한다고 했다.

 

   
▲ 홍천의 남궁억 선생 기념관 앞 무궁화!

무궁화 예찬시 

​금수강산 삼천리에, 각색 초목 번성하다/ 춘하추동 우로상설, 성장성숙 차례로다 

초목 중애 각기 자랑, 여러말로 지꺼린다/ 복사오얏 번화해도, 片時春이네 아닌가 

더군다나 버찌꽃은, 산과들에 번화해도/ 열흘 안에 다 지고서, 열매조차 희소하다 

울밑 황국 자랑스리, 서리 속에 꽃핀다고/ 그러하나 열매 있나, 뿌리로만 싹이난다. 

특별하다 무궁화는, 자랑할 말 하도 많다/여름 가을 지나도록, 무궁무진 꽃이 핀다 

그 씨 번식하는 것이, 씨 심어서 될 뿐더러, 접붙어도 살 수 있고, 꺽꽂이도 성하도다 

오늘 조선 삼천리에, 이 꽃 희소 탄식 마세, 영원번창 우리 꽃은, 삼천리에 무궁화다. 

 

   
▲ 홍천 모곡마을 전경- 유리산과 유리봉!

    그러므로 “영원번창 우리 꽃은, 삼천리에 무궁화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무궁화는 한민족의 얼이며, 무궁화 노래는 곧 일제에 저항이며, 항일투쟁이다. 

    남궁억 선생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 중, 병보석으로 석방 되었으나, 투옥 후유증으로 첫째 딸 개성 집에서, 1939년 4월 5일, 해방을 보지 못하시고 별세하셨다. 

   선생의 무궁화 보급운동은 나라의 독립 투쟁이었으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으로 민족구국의 정신과 신앙을 깨우쳤다. 일제는 전국의 무궁화를 뽑고 불태워 버리고, 전국에 사쿠라(벚꽃)을 심었고, 선생의 “일하러 가세” 찬송을 일제는 금지시켰으며  찬송가에서 삭제했지만, 세계 한인교회와 전국교회, 교인마다,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을 은밀히 꾸준히 이어 불러졌다. 

 

   
▲ 오늘날 홍천의 모곡교회와 기념관!

남궁억 선생의 심문조서 중에서(1933.11-1934.5,) 

   
▲ 남궁억 선생의 심문을 지켜 보는 필자!-기념관 모형!

문-조선역사를 발행한 일과 무궁화를 재배하여 배포하는 일은 어떤가?
답-조선민족은 지금 모두가 깊은 잠이 들어 꿈속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인데, 무궁화 등도 많이 배포하면 조선민족의 정신과 사상을 화기시킨다는 의미에서 조선역사를 발행하여 일반 유지에게 읽게하고, 무궁화를 재배하여 배포하기도 했다..., 무궁화는 조선민족을 표징하는 국화이므로, 자국의 국화를 장려하여 민족사상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1933.12.10. 심문조서 중) 

​문-“무궁화 시”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답-무궁화는 뿌리가 강하고 꽃은 2,3개월 동안 피어 있어서 조선민족을 대표하고 있으니, 조선민족도이 무궁화처럼 영구히 번창하라는 것을 아타내고 있다.(1934.5.29. 심문조서 중) 

​문-“무궁화 동산”이라는 창가는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답-무궁화는 조선민족울 대표한 꽃이고, 꽃 자체가 꽃 중에서 가장 고운 것처럼 조선민족도 번창하라는 것이다. 

문-“무궁화 삼천리”는 어떤가? 
답-“무궁화 삼천리”는 조선민족과 조선의 산야(山野)를 찬미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한 노래이다.(1934.5.29. 심문조서 중) 

한서 남궁억 선생님의 심문조서 몇을 살펴 보면, 불굴의 신앙인으로 불굴의 삶을 산 남궁억 선생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심문조서를 통해, 언제 예수 믿었는지, 왜 낙향했는지, 왜 교회와 학교를 설립했는지, 왜 무궁화 보급운동을 전개 투쟁하였는지, 왜 한일합병을 반대하는지, 왜 불온금지 된 노래와 저술을 발행하고 배포했는지 등등 굽히지 않고 분명히 심문에 답하는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오늘도 홍천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나는 무궁화꽃 길을 걸으며, 불굴의 정신과 신앙을 다짐하며, 호숫가 카페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은퇴 이후에도 출근하는 일상의 삶인 것이다. 

오늘도 불굴의 정신과 신앙으로 건강하게 삶을 펼쳐 나갈 것을 다짐하며, 무궁화 꽃과 숲 길을  걸었다!(rch)

   
 
   
 
   
 
   
 
   
 
   
▲ 충주시에서 우리의 수목으로 도시슾 가꾸기-아카시아 등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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