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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밭 서리의 주범이 발견되다.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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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7월 28일 (목) 01:50:01 [조회수 : 2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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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그쳤다.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은 매우 맑은 상태다. 그리고 맑은 하늘 사이로 보이는 태양은 이글이글 타오른다. 장마 이전으로 돌아간 듯 뜨거운 열기가 한낮 대지를 덥힌다. 그래도 나은 점이 있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당분간은 한낮은 뜨겁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할 것이라 본다. 덕분에 뜨거운 지붕 아래의 집도 견딜만하다. 약간 덥다 싶어 선풍기를 틀면 금새 닭살이 올라 이불을 가지고 와서 깔고 덮는다. 그래도 이만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안그랬다면 한증막 세례로 밤새 뒤척이며 애를 썼을 것이다. 

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한동안 토끼와 씨름을 했다. 지난번 썼듯이 밭에 나타난 토끼를 쫓느라 여러번 망을 봤다. 움직이는 하얀 물체가 나타나면 냅따 달려가서 돌을 던졌다. 풀숲으로 달아난 토끼를 향해 던진 돌은 허공을 지나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이웃 밭에 떨어지면 툭, 시멘트 도랑에 떨어지면 텅, 풀숲에 걸리면 스스슥 하며 떨어진다. 무수히 던진 돌은 토끼를 피해 어딘가에 떨어진 것이다. 녀석도 불안한지 요즘엔 훈련원 원장님 댁의 뒷마당에서 유유자적 노닐고 있다. 4월에 봤을 때는 내 손바닥만큼 작았는데 지금은 닥치는대로 먹어 비만 토끼로 변해있었다. 

무럭무럭 자라는 콩은 한쪽 귀퉁이가 휑하다. 근 500평 이상에서 3분의 1 정도 포탄을 맞은 자리처럼 비어있으니 솔직히 속상하다. 아래에서 볼 때는 풍성한데 위에서 보면 휑한 자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러다가 밭 전체가 소실될까 살짝 겁이 났다. 그래서 밭을 볼 때마다 지금까지 토끼가 주범이라 여겨 토끼를 향해 돌뿐 아니라 마음의 미움 화살도 많이 쏘았다. 딴에는 토끼를 잡으려는 목적으로 한동안 풀숲이었던 곳을 훤하게, 토끼가 토끼고 숨을 수 있는 장소가 없도록 예초를 했다. 보이기만 하면 이번에는 꼭 잡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 것이다. 그렇게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며칠 전 콩밭 사이를 걸으며 콩들을 살폈다. 아작난 두둑 사이를 오르고 내리면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동그랗고 까만 똥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발견했다. 똥을 유심히 살폈다. 모양과 크기, 색으로 봐서는 토기 똥이기도 하고 또 고라니 똥이기도 했다. 요즘 후각이 제로 상태라 냄새는 맡지 못했다. 그런 다음 콩을 봤다. 완전히 소실되지 않은 것을 봐서는 토끼라기 보다는 고라니에 가까운 흔적이었다. 만약 토끼가 아니라 고라니였다면, 고라니는 어디에 있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오래전, 우리 집 고양이 헤라가 나를 따라 밭에 왔다가 한 곳을 계속 응시하고 있어, 뭐가 있어? 라고 묻자마자 헤라가 응시한 곳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그곳에서 뭔가 펄쩍 뛰어오르며 원장님 댁 뒷산 쪽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바로 고라니였다.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눈에 들어온 한곳을 바라봤다. 그렇다. 내가 토끼를 잡을 요량으로 콩밭 옆 풀숲을 예초하였는데, 그 이튿날 이웃집도 나의 콩밭과 이웃하고 있었던 그의 밭을 깨끗이 예초를 한 것이다. 그 덕분에 풀숲이 사라지면서 시야가 환하게 확보가 된 것이다. 풀숲이 사라지니 그곳에 기거하고 있었을 고라니도 하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와 이웃의 예초로 풀숲이 재개발이 되었으니 고라니 입장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거하려 했던 삶의 터전을 잃은거나 진배없었던 것이다. 고라니에겐 안된 일이지만, 나로서는 콩밭을 지키려는 일이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미운 화살을 쏘았던 토끼에게 잠깐 미안했다. 그렇지만 토끼든 고라니든 경계는 늦추지 않으련다.   

하루에 두 번 콩밭을 살핀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콩밭 서리의 주범을 발견했지만 그래도 혹시 밤사이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둘러보는 것이다. 다행히 그 며칠 사이 콩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휑했던 자리에도 뒤늦게 콩순이 올라오고 있으며, 어떤 것은 작지만 벌써 하얀 콩꽃을 피우고 있다. 콩꽃이 피기 전, 순도 한번 질러주었다. 풀을 베면서 콩과 함께 올라오는 잡초들도 잡아주었다. 무럭무럭 파랗게 자라는 콩잎 사이로 콩꽃이 하얗게 올라오고 있다. 콩꽃이 이렇게 이뻤던가 할 정도로 말이다. 휑한 자리의 콩들도 잘 견디어 무럭무럭 자라주길 기도하며 가볍게 발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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