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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리모델링 중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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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7월 24일 (일) 01:40:49 [조회수 : 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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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럽의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린다던 뉴스를 보고 한증막 같은 열기를 상상했는데, 대기를 차분히 식히고 있는 단비가 반가웠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3번 고속도로로 올라가는 내내 비가 내렸다. 너른 평원 덕분에 더욱 넓게 펼친 하늘에서 내리는 밤비는 무척 정연하고 단정하였다. 썸머타임이 유효한 열 시의 밤하늘은 아직 짙은 푸른빛이었다. 

  역시 독일의 가장 큰 재산은 나무와 숲이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나선 산책은 비 갠 후에 청명함이 느껴졌다. 복흠 슈타트파크(Stadtpark)는 아주 고요하였다. 도시 한복판의 공원이지만 인기척이 별로 없었다. 아름드리 나무들은 옛 광산도시의 정체성을 잊게 만든다. 지난 6월, 700주년을 기념했다는 복흠시의 생일보다 더 깊은 연륜을 자랑하는 푸르름이었다. 큰 눈이 내린 겨울날, 공원의 비탈에서 아이들과 눈썰매를 타던 추억을 불러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평소 기분전환용으로 걷던 도심으로 향한 코툼(Kotum)길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화려한 시내는 화장기 있는 얼굴이 바래졌고, 눈에 띌 정도로 활기를 잃었다. 코로나19의 영향 탓인지 문을 닫은 상가가 많았다. 더 큰 원인은 인터넷 쇼핑 때문이라고 한다. 한동안 독일에서 환대를 받았던 시리아 난민 덕분일까, 시리아 음식점들이 터키와 그리스 레스토랑과 어깨를 겨루고 있었다. 평일 오후 거리의 풍경을 바꾼 것은 부쩍 늘어난 외국인들의 모습이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낡은 건물의 재생 과정이었다. 옛 거리에 불쑥 새로운 건축물이 출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다만 고색창연한 건물 틈 사이, 신축보다 더 복잡한 재생의 과정을 밟고 있는 건물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숙소에서 내려다 본 아우구스타 병원의 병동들과 주차장은 회색빛에서 파스텔톤으로 환하게 거듭났다. 리모델링은 도시의 생기를 느끼게 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예외도 있었다. 복흠 프로축구팀(vfl Bochum)의 분데스리가 1부리그 승격은 십수 년 만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모두들 “다시는 2부로 내려가지 말자”고 다짐한다. 

  시내로 통하는 길목에서 동네의 랜드마크 구실을 하던 마리엔교회는 음악당으로 바뀌었다. 높은 종탑에 붙여 지은 새 건물 벽에는 복흠심포니오케스트라로 주인이 달라졌음을 알리고 있다. 맞은편 연극회관과 함께 복흠 시의 문화구역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한때 멜랑히톤교회와 마리엔교회는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를 대표하여 에큐메니칼 협력을 하였다. 동네 초등학교 입학식도 번갈아 열고, 신구교 여성들이 모여 세계여성기도일 한국의 날 준비도 함께 하였다. 

  멜랑히톤교회도 리모델링 중이었다. 마치 독일교회가 수십 년 진행해온 전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한인교회가 사용해온 교회별관은 완벽한 재건축 과정을 거쳐 임자가 바뀌었다. 한인들이 가족예배를 드리고, 번번이 잔치를 벌였던 2층 에마잘(Emasaal)은 시립 유치원이 들어섰다. 교회 사무실은 본당 건물로 옮겨가고, 지하에 있던 한인들의 추억의 공간도 옛 주인을 잃었다. 예전의 낡은 상태로도 좋았는데, 바뀐 새로운 시설은 잠시 이용만 하도록 허용되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기념물과 생활공간은 천천히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것은 기억의 몸살처럼 느껴졌다. 한인사회는 독일사회의 피로감보다 더 빠른 변화를 겪고 있었다. 더 이상 현직에서 일하는 사람은 없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은 문을 닫은 오펠(Opel) 자동차회사처럼 기둥 같던 장년들이었다. 사춘기와 대학생들이었던 청년들은 대부분 집을 떠나, 저마다 가정을 차리거나, 독립한 지 오래다.

  여럿이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보존할 지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복흠교회 25주년에 만들어 오래도록 함께 불렀던 하가다 찬송들에 대한 익숙한 기억부터, 지난 50여 년 동안 쌓인 기록, 자료, 사진, 추억들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교회는 물론 한글학교, 민중문화모임, 광산 동기들과 간호학교 동창들의 역사이다. 게다가 평생 모아둔 간호사의 월급 명세서, 1970년대부터 한국의 가족에게 다달이 송금했던 우체국 전표들은 유물로 남았다.  

  독일에 사는 한인들의 삶도 리모델링이 가능할까? 회색빛 추억들도 환한 파스텔톤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나중에 은퇴하면 1년 중 절반은 한국에 가서 살자던 이들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비록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재독한인들은 자부심과 자긍심만큼은 잃지 않고 산다. 그래서 더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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