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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의 저장소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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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7월 08일 (금) 00:23:33 [조회수 : 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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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랍비인 나오미가 <아인슈타인과 랍비>라는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70대 중반에 이른 외할아버지께 갑자기 우울증이 찾아왔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사람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실 뿐 아무 일에도 의욕을 보이질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평생을 함께 했고, 아들딸과 손자손녀들로 대가족을 이루고 있었고, 사업 또한 번창했고, 건강 또한 좋았다. 우울증에 빠질 이유가 없다고 느낀 엄마가 외할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잠자코 계시던 외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이제 아무도 없다!” 그리고 “키비츠(kibbitz) 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결핍된 키비츠란 무엇일까? 

‘키비츠’는 이디쉬어로 친구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모든 것을 두루 일컫는 단어이다. 몰려다니며, 농담하고, 수다를 떨고, 놀리고, 이야기하고, 마음의 짐을 풀어놓고, 귀 기울여 들어주고, 킬킬거리는 등의 일들 말이다. 하찮고 사소해 보이지만 키비츠의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목적지향적인 삶과 의미 추구의 무거움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삶은 의미와 무의미, 당위와 현실, 경쟁과 협동, 역할과 노릇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힘든 노동을 한 후에 몸에 쌓인 피로물질을 적절히 풀어내야 하듯이, 우리 정신에 알게 모르게 누적된 무거움을 풀어놓아야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268명의 하버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 연구 프로젝트인 ‘그랜트 연구’는 1938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80년 이상을 이어가고 있다. 실험 참가자들의 성격, 지성, 건강, 습관, 관계 등이 풍요로운 삶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였다. 30년 이상 그 연구를 이끈 베일런트 박사는 그랜트 연구 결과로 얻은 교훈이 뭐냐는 질문에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라고 대답했다. 친밀한 관계가 돈이나 명예보다 중요했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자발없는 삶으로 하강하지 않도록 지켜주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쇠약해지는 속도를 늦추더라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맞아들일 여백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흉허물없이 이웃을 맞아들이기도 했던 집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변했고, 모처럼 벗들을 만나도 설면하기 이를 데 없다. 직접 대면보다 익숙한 것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한 간접적 만남이다. 그 공간에서는 상대방의 글에 ‘좋아요’ ‘힘내요’ ‘슬퍼요’ 등으로 공감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의 현실에 깊이 연루되지는 않는다. 안전한 거리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할 때 주어지는 선물이다. 

아브라함 헤셸은 우리가 “절망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목적이 되는 게 아니라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통 받는 타자들의 삶에 연루되기를 꺼리지 않을 때 우리 삶은 확장되는 동시에 상승한다. 상승이란 욕망 주변을 맴돌던 삶에서 벗어나 더 큰 존재의 지평 속에서 세상을 바라봄을 의미한다. 욕망이 삶의 중심이 될 때 우리는 고립을 면하기 어렵다. 부푼 욕망에는 타자를 위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적 거리두기가 아닌 고립은 타자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적대감에 사로잡히는 순간 세상은 전쟁터로 바뀌게 마련이다.
낯선 이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의 필요에 응답할 때 자기 속으로 구부러진 마음은 비로소 바루어진다. 공동체에서 벗어나 홀로 자족하는 신앙인보다는 어떤 동기에서든 공동체 예배에 참여하는 무신론자가 망가진 세상을 고치고, 시련 속에 처한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사람들을 보편적 신뢰의 장으로 초대함으로 낯섦을 넘어 상호 소통하도록 할 때 종교는 사회적 자본의 저장소가 된다. 

종교는 주류 담론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서의 역할을 할 때 건강하다. 소유의 풍부함이 행복을 위한 유일한 길인 것처럼 우리를 현혹하는 시대정신에 맞서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우지 않는다면 그 종교는 죽은 종교일 뿐이다. 이익 사회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만나 상호 이해를 도모하고, 함께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고립을 넘어 연대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삶이 든든해진다. 부조리와 허무에 대항할 힘이 생긴다.

(* 경향신문 2022년 7월 2일자 컬럼 '사유와 성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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