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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콩을 심다.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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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6월 29일 (수) 21:39:20 [조회수 : 2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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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됐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바빠졌다. 모종판에서 웃자란 콩모종이 아주심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장마가 시작된다니 조급한 마음은 진정되고 몸이 바빠질 준비가 되었다. 지난 수요일 오전에 업무를 몰아 마치고, 오후엔 밭으로 향했다. 냉장고 바지에 어깨까지 올라오는 토시,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얼굴은 썬크림을 잔뜩 발랐다. 모자도 쓰고, 장화도 신고, 장갑도 끼고 콩심을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거의 20센티 이상 자라버린 콩을 밭으로 옮겼다. 두둑 끝자락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가뭄은 심했어도 풀만은 기세좋게 올라와 있었다.

하늘은 비가 올 듯 말 듯 했다.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했다. 두 가지 마음이 콩심는 내내 일어났다. 하늘이 맑아지면 물주지 않고 심는 콩이 시들까 걱정이었고, 하늘이 흐려지면 잘됐다 싶어 안도를 했다. 한달 전 심었던 콩은 긴 가뭄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콩을 심어야 했다. 설령 가뭄을 이겨냈다 해도 겨우 내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였다. 그만큼 올 상반기의 가뭄은 지난 10년 사이 맞이한 가뭄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드문드문 올라온 콩 사이로 웃자란 콩을 심기 시작하여 첫 날은 두둑 8줄에 심었다. 경사진 밭이라 허리를 굽히고 피기를 반복하다 보니 나중엔 허리가 두 동간이 날 정도였다. 또 콩모가 잘 활착이 되라고 흙을 덮느라 경사진 곳을 오르고 내리고 하였더니 이번엔 골반이 틀어지고 무릎이 아작나는 느낌이 왔다. 땀은 얼마나 흐르던가. 썬크림이 땀 범벅이 되면서 썬크림이 짠 것인지, 땀이 짠 것인지 두 배의 짠내를 맛봐야했다. 고된 작업이었다. 아니, 농사 자체가 고된 수업이다. 돈을 주거나 받거나 하여 할 만한 일이 못되었다. 딴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해가 거듭될수록 더 힘들어지는 일이었다. 그래도 콩을 부지런히 심을 수 있었던 힘은 이 힘든 일이 끽해야 2~3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의 체력 한계를 얼추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평생 할 것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일했는데 역시 오십이 넘으니 체력은 내 마음과 의지만큼 따라주지 못함을 갱년기를 맞으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8줄을 심고 돌아오니 저녁 8시 30분. 허기진 배를 달래느라 냉장고를 열었더니 순대가 눈에 띄었다. 서너 개면 족한 순대가 그날은 400그램을 폭풍 흡입하였다. 그것도 고기라고 먹고 나니 힘이 났다.

그 다음날은 본격적으로 비가 온다고 하였다. 새벽 일찍 일어나 콩을 심으려고 전날 스스로 약속을 했지만 몸은 자명종 소리를 멀리했다. 허리와 골반과 무릎의 통증이 자꾸 붙들었다. 그러나 오후 12시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했다. 남아있는 두둑은 19줄이었다. 허리를 굽히고 펴고, 무릎을 접었다 폈다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반정도 심고 나니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슬슬 걱정이 밀려오고,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고 방바닥과 씨름했던 자신을 책했다. 시간을 계산하니 만약 새벽에 일어나 시작했더라면 지금쯤 마칠 만도 했다. 하지만 버스는 이미 지나갔다. 툴툴거릴 입은 접어두어야 했다. 흩뿌리는 비가 금새 폭우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 내리는 비는 맞으면서도 해도 시원했다. 다만 땅이 질어지기 시작하여 발을 디디고 걷는 것이 불편해졌다. 걸을 때마다 발자국이 남았다. 결국은 흙은 덮지 못하고 구멍마다 콩을 심고 대충 비닐 속의 흙으로 콩뿌리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만 덮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비가 어찌나 왔던지 구멍 속에 물이 고이고, 물이 빠진 후에는 하얀 뿌리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어떤 콩은 헤벌쭉하니 드러눕는 것도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점심도 못먹고 이 무슨 일인가. 마지막 두둑을 할 때는 거의 기다시피 하면서 마칠 수 있었다. 천근만근의 몸이었지만 길고 긴 두둑에 심겨진 콩들의 초록 물결이 마음을 기쁘게 했다. 이렇게 하여 올해의 농사 작물 중 큰 산을 하나 넘은 셈이다.

농사는 정말 고된 일이다.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이들은 어떨까? 농사가 90프로를 차지했었던 옛날의 농부들은 어땠을까? 거기다 농기계나 농기구가 변변치 않았던 시절은 어떠했겠는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아직도 우리 마을의 최고 고령자 농부는 정말 새벽에 별을 보고 나갔다가 저녁에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온다. 대단한 분들이다. 농사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농사짓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는 가급적 자녀들에게 농사일을 업으로 잇게 하기를 주저한다. 또한 그의 자녀들도 일찍 타지로 나가 학교를 다니고 그곳에서 정착하며 사는 선택을 한다. 나의 지인은 농사의 농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다.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쉬는 날이면 무조건 밭으로 향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공부를 하고 싶어도 농사로 학창시절을 보내었던 기억으로 농촌도 싫고 농사도 싫다고 했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농사 용역이라면 절레절레 머리를 흔든다고 한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고 고된 일이 농사다. 그런데 이 농사가, 우리의 밥상을 책임지는 생명의 끈이 조만간 끊어질 지경이다. 아마 나도 도시에 살았더라면 우리의 農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살았을까? 비록 허리와 골반과 무릎이 상할 정도로 무식하게 하는 일일지라도 감사한 것은 흙을 밟고 흙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지면 몸과 마음이 즐거워지니 천상 농부는 아닐지라도 농사를 짓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리라. 이런 경험도 그래봤자 2~3년 아니겠는가.

콩을 심고 난 뒤 계속 밭으로 향한다. 밤새 안녕한지 콩을 돌본다. 쓰러진 콩을 일으키고, 죽은 콩엔 다시 새 콩을 넣어주고, 고라니와 새의 침범을 받은 콩은 세워주고 하면서 잘 자라기를 기도하며 콩밭을 한바퀴 돈다. 장마 기간 동안 비를 흠뻑 맞은 콩은 활착이 잘 되어 어느새 새 순이 돋고 있다. 비도 고맙고, 콩도 고맙다. 늦긴 했지만 다음 주는 들깨를 심고 나면 본격적인 한여름으로 들어간다. 아! 풀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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